사실 주제를 처음 봤을 때 신선하고 실험적인 공연들만 있을 줄 알고 많은 기대를 했다. 그러나 그런 공연은 일부였고 대개 올드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올드했고,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던 공연인 ''유기견''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겠다.

올드한 주제, 소재, 스토리. 이 단막극은 주제가 아버지였다. 아버지라는 주제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올드한 주제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주제로 뻗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연출가는 ''아버지의 사랑''을 택했다. 이미 몇 십년 동안 수 천명의 사람들이 써왔을 주제다.
이 주제가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흔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버지''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랑이나 나이가 들어 집안에서 힘을 잃은 가장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주제로 글을 써야 할 때는 저 두 가지를 피해야만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가는 저 두 가지 모두를 사용했다. 정말이지 1차원적이고 납작하기 그지 없는 해석이다. 한 술 더 떠서 이 아버지의 아내는 아들을 낳다가 죽었다. 그리고 홀로 남아 아들을 키워냈으나, 치매에 걸림으로써 아들에게 버림 받는다. 너무 고루해서 이제 이 주제로 글을 쓰려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스토리에 대한 간단한 비판을 마쳤으니 연출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다. 작가/연출가는 ''유기견=아들''에 치환하려는 듯 하다가(웅이라는 이름) 최종적으로 유기견=아버지였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벤치에 나란히 누워 죽어간다. 이 역시 지나치게 간단한 치환에 불과하다. 이미 몇 년 전에 한국현대소설에서 유행처럼 쓰였다. 전체적으로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쓴 글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개에 대한 익숙한 연출이 이게 끝이 아니다. 개를 매달아 두들겨 패고 불을 질렀는데 그 개가 그래도 꼬리를 흔들었다, 라는 이야기. 이걸 듣는 순간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연극에서 본 건지 소설에서 본 건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난다. 어딘가에서 오마주를 따온 건지는 모르겠다.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강렬한 연출은 어금니를 뽑는 장면이었다. 멀쩡한 생니를 니퍼로 추정되는 도구로 뽑아낸다. 이때 아버지는 커다란 거울을 보느라 관객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 조명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새빨간 색을 띤다. 명백한 강조다. 빛은 거울 때문에 아름답게 난반사한다. 이미지 연출은 꽤 훌륭했다. 다만 거기까지였다. 아름답지만, 자기연민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아버지라는 소재를 이렇게 연민에 젖은 스토리로 적을 필요가 있는가.
소설 <달려라 아비> 정도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적어도 소재에서 한 번이라도 꼬아낸 주제, 적어도 그 정도만 돼도 좋을 텐데. 정말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겠다. 문창과 입시에 내면 문장력이 좋더라도 떨어질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