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그네’라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아니, 현존하는 곳도 몇 군데 있다. 수십 년 전 체인점으로 도시 곳곳에 문을 열었으나 본사가 와해되어 개별 운영되다 도미노처럼 문을 닫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근래 대학가 주변에 남아 있는 겨울 나그네를 발견하고 반가웠던 기억.

어렸을 적 겨울 나그네에 드나들곤 했다, 특별한 날이면. 상호(商號)가 주는 고독감 내지 처연함 때문인지 어원이 궁금했다. 여러 어른을 거친 끝에 영화 ‘겨울 나그네’에서 영화의 원작이었던 최인호의 ‘겨울 나그네.’ 최인호 작가는 왜 하필 이 제목을? 뮐러의 시 ‘겨울 나그네’ 때문에? 아니면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슈베르트의? 그나저나 영화에는 슈베르트의 가곡이 나올까? 이런 두서없는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중학교 음악 시간 덕분에 제목 정도는 외웠던 슈베르트 3대 가곡집. 그 중에 하나인 겨울 나그네를 잠시 건반 위로 복귀한 정명훈의 피아노 반주와 베이스 연광철의 음성으로 공연장에서 처음 만났다. 리차드 용재 오닐 앨범 ‘겨울로의 여행’에 실린 겨울 나그네 덕분에 선율은 다소나마 익숙했지만, 독일가곡집에 빠지지 않는 제5곡‘보리수’는 자연스레 스며들었지만, 피셔 디스카우의 음성으로 제6곡 ‘넘쳐 흐르는 눈물’을 기억해 내 흡족한 미소를 지었지만, 내 귀가 닦이려면 아직 먼 탓에 태반의 곡들은 함박눈을 바라보듯 들을 수밖에 없었다. 미리 좀 닦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남자의 내면은 잎을 모두 잃은 나뭇가지처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린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그는 상실을 음악으로 치유하며 평온을 얻는다. 무언가를 잃어야만 또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삶처럼.

뮐러의 입장에서 보면 슈베르트는 은인이다. 자기의 시를 이렇게 널리 알렸잖은가. 슈베르트 입장에선 뮐러가 은인이다. 자기의 대표 작품이 된 곡에 뿌리를 마련해 주었으니. 두 거장도 마찬가지다. 피아노 선율은 음성으로, 음성은 피아노 선율로 한층 빛나게 하는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