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동물원은 내게 꽤 의미 깊은 이야기다. 내가 미국에 처음 갔을 무렵 온전히 내 힘으로써 처음으로 읽어낸 이야기기 때문에. 그래서 유리동물원의 여러버전을 봐 왔고 이번 한국판은 새로운 느낌일 것 같아 보러 갔다.
아만다 역할의 곽수정 씨는 대사가 길고 빠른 템포임에도 완벽한 전달력과 딕션을 자랑하시더라. 주요 작품이 엄청나게 기시던데 이게 바로 연륜인가 싶고….
이경민 씨는 목이 조금 아프신가, 원래도 허스키한 목소리같으신데 지르는 장면이 많아서인지 목이 좀 상한 느낌을 받았다. 소리칠 때의 압도감, 엄청났고 훌륭한 연기를 하셨으니 오늘 밤은 푹 쉬셨으면.
로라 역할의 허윤지씨 눈물 흘릴 때마다 엄청 처연하게 흘리는데 진짜 몸이 절름발이가 아닌 마음이 절름발이인 그런 느낌이 팍팍 와닿더라. 안 그래도 ‘불을 꺼줘, 로라’ 대사 너무 좋아하는데 눈물 자국 난 얼굴로 불을 하나씩 끌 때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민을 잘 표현한 것 같았음.
그리고 김태웅 씨는 원래 뮤배신가? 발성이랑 딕션이 과장되는 역할 짐이랑 매우 잘 어울리더라. 춤추자고 하는 그 에너지가 소심한 로라를 이끄는 설득력이.

하지만…
각색은 조금 어색했다고 느낀 게, 일단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엄마의 ‘전라도에서 내가~’ 대사가 잘 안 와닿더라. 아무래도 원본이 미국의 남부 여성이란 대목이기 때문에 그럴 텐데 미국에는 그런 스테레오타입의 그림이 있지만, 한국에도 전라도가 그런 느낌이냐면 잘 모르겠네.
그리고 플루로시스(폐렴)이 뭔지 설명하는 대사 하나만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 각색했다면 이왕 하는 김에. 그게 무슨 병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 테니까. 아무래도 블루로즈라는 명칭이 연극 내 고유 명사다 보니 플루로시스라고 계속 얘기할 수밖에 없지만 한 번쯤은 패렴이라고 언급해주면.
음악이 좀 심하게 안 맞는 느낌을 받았고…. (이정현의 바꿔를 무슨 의미로 넣었는진 알겠는데 바꿔 하는 음이 너무 세게 들려서 오히려 이입을 방해했다) 그리고 프린트가 잘못되어 뽑은 안내 책자마저도 실은 극단에 그래픽 디자이너가 없나 싶었으며 기획 의도와 연출 의도의 페이지 퇴고는 하셨나 싶다. 문장이 읽기 힘들고 정말 노란 장판 감성의 ‘….’이 많은 글 .
그래도 총평으론 소극장의 장점을 아주 잘 살린 연극이었고 오히려 소품없이 상황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에 감명받았다. 나로서는 1930의복과 세트가 화려한 극만 보다가, 소시민의 비참함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고 할까. 다만 아만다의 캐릭터와 가족의 상황 때문에 한국식으로 바꾼 게 더 이입이 많이 돼서 고구마 백 개는 먹은 듯한 느낌. 하지만 원래 그런 연극이니까 칭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