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자주 듣는 분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게 있습니다. 리사이틀홀 독주회는 복불복이라고요. 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사막에서 바늘찾기라고도 합니다. 그만큼 귀가 만족하는 호연이 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는 연주자 면면보다는 곡을 중심으로 듣길 좋아하는데요. 연주자들마다 다른 해석을 보는 것도 별미라고 생각해 가리지 않고 들으러 다니려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해가 되더라고요.

베토벤 30, 31, 32번 소나타는 29번 함머클라비어가 장대한 분량이기 때문에 주로 한번에 묶여 무대에 오르거나 또는 앨범에 커플링되곤 하는 베토벤 후기 정수를 담은 훌륭한 피아노 작품입니다. 이런 프로그램이면 중학생 영재가 친다 해도 끌릴 법한데요. 그래서 들으러 왔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등장하고 30번의 딱 30초만 쳤는데 어안이 벙벙하더라고요. 이게 뭐지? 별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곡을 200번 가까이 들었는데 처음 벌어지는 일이었으니까요. 당황도 못 했습니다. 1악장 초입에서 가장 쉬운 한 음씩 하강하는 부분에서 미스터치가 나질 않나, Prestissimo 부분은 답답했습니다. 주제 선율을 강조하면 좋을 때에 낮은 파트를 페달을 끊지 않고 밟아 음이 뭉개지고 의도하는 바를 알 수 없었던 것도 아쉬웠습니다. 특히 투명한 음률을 가진 곡이니까요. 페달링이 끊어져 각 프레이즈 사이 소리가 완전히 비어버리거나 레가토를 하면서 중간 음이 빠지는 경우도 들리곤 했네요.

실수를 하나하나 지적하는 건 청중으로서 좋은 자세는 아닌 것 같지만 30번과 31번은 심했습니다. 31번은 훨씬 나았습니다. 철학적으로 다양하게 사유되기도 하는 32번은 더 힘들 거라 생각했지만 인터미션 이후 나온 피아니스트 분은 30번을 연주하던 그 분이 더 이상 아니었습니다. 32번과 앵콜곡인 21번 3악장은 훌륭하게 선보이셔서 잘 듣고 결국 만족하고 나섰습니다. 인터미션 때 그냥 집에 갈까 생각했는데 놓쳤으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아리에타가 참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