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백 작가님의 작품이라 뜻깊게 보았습니다…

런닝타임이 길어도 가치가 잇는 공연입니다.
긴 런닝타임 만큼 즐기시기 바랍니다.

위로하며 슬퍼해줄 단, 한 사람

만약에 내가 죽으면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사후에 어떠한 평가를 받을까.
착한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아니면 기억되지 않는 사람..내가 이 세상에 없다고 해도, 내가 남긴 사진, 글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한명이라도 내 죽음을 애도한다면 그것으로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대로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의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을까.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쓸쓸하다. 진은 죽은 고든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다. 그녀에게 죽은 고든의 휴대폰은 그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다. 여기서 궁금했던 점은 왜 진은 아무런 관계없는 그날 처음 본 죽은 고든의 죽음에 신경쓰는 것일까 였다. 그것은 진이 고든을 바라보는 연민의 감정이다. 그리고 진과 고든은 외로움으로 가득찬 공통점을 갖는다. 죽은 고든 옆에는 아무도 없다. 진도 옆에 아무도 없다. 진은 고든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채 죽은 고든의 표정을 보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을 착한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진의 마음은 본의아니게 선의의 거짓말을 하게된다. 죽은 고든의 가족은 마음적으로 문을 닫았던 고든으로부터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진은 왜 선의의 거짓말까지 했을까. 진이 생각하는 고든은 착한사람 이어야만 했다. 그것은 그녀가 그린 그림이다.
죽음 앞에서 나를 위로하며 슬퍼해줄 단 한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아는 사람이던 모르는 사람이던..
하늘나라에 가서도 난 후회없이 살았어 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없더라도 휴대폰 벨소리는 여전히 울릴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이, 나는 죽어서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죽은 남자의 휴대폰> 은 미국에서 활약 중인 동시대 여성 극작가 세라 룰의 동명의 희곡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스토리 구성은 기술정보 시대의 변화하는 사랑, 죽음, 기억의 의미를 블랙코미디와 시적 감수성이 어우러진 독특한 여성적 미학으로 승화시킨 수작이다. 2009∼2010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10대 희곡 중 2위를 차지할 만큼 예술성은 물론 대중성도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진 역의 이태리 배우는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의 중심에서 공연을 이끌어 나간다. 착한 콤플렉스로 죽은 고든의 휴대폰을 지키며, 드와이트와의 사랑의 감정, 죽은 고든에 대한 심리적 변화를 잘 표현한다. 과하지 않고 안정적인 연기로 배우들간의 호흡도 잘 맞는다. 고든 역의 서철 배우는 인터미션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등장하는데 능글능글하면서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펼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허미어 역의 정유민 배우는 고든의 와이프로 마음고생하는 연기, 술이 취한 연기 등 감정 연기를 표현한다. 공연 장면이 바뀌는 타이밍에 재즈 음악이 나오는데, 공연과 잘 어울린다.
2시간이 넘는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각색이 잘 되어 있으며, 죽은 남자의 휴대폰을 소재로 신선하고 독창적인 공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