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셰익스피어 고전 [맥베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하이너 밀러의 [셰익스피어 이후의 맥베스]란 작품을 텍스트로 삼아 만든 이 연극은 연출과 배우, 무대와 조명, 그리고 음악과 몸짓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조화를 이룬, 다양한 예술적 요소가 융합된 작품이다. 예술 분야간 장벽을 허문 일종의 컨버젼스 퍼포먼스랄까?

다행스러운 건 이같은 융합과 조화가 텍스트나 내러티브의 약화나 소멸을 동반하지 않았고, 동시에 다른 요소들 또한 내러티브에 압도되어 그 존재가 희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든 요소가 제각기 고유한 색깔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맥베스]란 텍스트를 중심으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모습을 보여준다. 이같은 성공은 다양한 예술 요소간의 통섭을 추구하는 다방면의 예술가들은 물론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관객들에게 더없이 좋은 징조다. 그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관객을 즐겁게 해줄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의미 있으며 오래 기억될만 하다.



2. 연출자 이비짜 불랸은 현대성과 동시대성이라는 확고한 기획의도를 갖고 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소개된 그의 경력을 봐도 그는 줄곧 그 두가지 키워드에서 벗어나지 않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는 연극은 늘 현재, 현 시점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며 동시대인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 또한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예술은 단지 타임캡슐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니 말이다. 고전이 오늘날까지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단지 오래전 유명작가의 저명한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현 시대까지도 통용되는 의미가 여전히 유효한 까닭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다면 제아무리 위대한 고전이라도 지속가능할 수 없다. 역사적 유물로 보존될 수는 있을지언정 현대인들의 마음 속에서 살아 숨쉬는 유기적인 생명체로서 존재할 수는 없다. 연출자는 자신의 그러한 관점을 작품 속에서 구현해내려 애썼으며, 그러한 노력이 관객인 내게도 전달되었다. (다만 그 노력에 깊은 감흥을 느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3. 해외공식초청작이란 지위가 아닌 국내참가작이었다면 아마도 이 작품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다. 지금껏 셰익스피어 원작 [맥베스] 텍스트를 수 차례 읽었고, 다양한 공연을 통해 접한 것 또한 수 차례지만, 이번같은 작품은 없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만큼 원작에 대한 해석이나 표현방법이 적나라하고 파격적이다. 그간 대다수 공연이 맥베스 부부의 권력의지와 욕망, 탐욕에 초점을 맞추어왔는데 극단 미니 시어터는 여기에 성적인 코드를 결합시켰다. 이미 텍스트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욕심, 특히 권력욕을 미니 시어터는 성적인 - 그것도 비유적이거나 은유적이 아닌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몸짓과 움직임을 통해 보여준다. (내가 지금껏 봐왔던 게이 포르노 속 동작들이 총출연했다; )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이같은 부분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지만 대체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스스로 잘 정리도 안됐을 뿐더러, 제법 민감한 부분이라 감히 물어볼 엄두도 안나 차마 질문은 못했는데, 여전히 내겐 의문이 남는 대목이다. 대체 왜 그 두가지 욕망을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연결시켜 보여줬을까?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 문제 앞에서 그저 자문하고 고민해볼 수밖에 없다.



4. 원형극장 구조를 차용한 객석의 배치, 객석 간 통로를 휘젓고 다니는 배우들의 동선, 현지언어의 사용과 이를 통한 관객의 참여 유도를 통해 무대와 객석 사이를 단절시키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허무는 과정 또한 인상적이다. 이런 시도가 전에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극단 미니 시어터는 나로선 전대미문의 방식을 통해 그같은 벽 부수기를 시도한다. 슬로베니아어와 영어로 진행되는 공연 와중에 한국어 표현들이 간간히 등장하고 관객의 입을 열게 하는 시도가 이루어지는 평범한(!) 단계에서부터, 계속되는 움직임으로 땀 범벅이 된 배우들이 관객에게 밀착해 땀내음을 풍기는 것도 모자라 팔을 들어올려 겨드랑이 체취까지 맡게 해주는 것은 물론, 심지어 침까지 뱉는 격한 단계까지! 정말이지 공연 관람하면서 이같은 대접(?) 받아보기는 또 처음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너무나 불쾌하고 모욕적일 수도 있는 제스쳐인데 이같은 관객의 감정적 반응 또한 작품 구성의 일부분임을 감안하고 감수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마음 편히 내 맘대로 불쾌해해야 하는 걸까? 이같은 벽 허물기 과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다른 방식을 찾도록 비판적 조언을 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5.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하이너 뮐러의 [셰익스피어 이후의 맥베스]를 직접 읽고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디렉터의 관점에서 재해석되고 연출되기 이전의 날것 그대로의 텍스트를 본다면 작품 이해에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하이너 뮐러가 셰익스피어 이후 수 세기가 지난 현대를 살아가면서 무엇을 보았는지, 그것을 고전 [맥베스]와 어떻게 결부시켰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고, 동시에 연출자가 텍스트에서 취하고 버린 것을 발견함으로써 그이 관점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는데 유익할 것 같다. (물론 이건 연극을 전공하거나 관련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 우리같은 일반 관객들은 그냥 작품 자체를 즐기면 된다.)



6. 마지막으로 다 벗고 모든 것을 다 보여준 맥베스와 그 동지들에게 박수-

무대를 압도하는 현란한 조명과 음향장치

배우들의 진지하면서 유머러스한 퍼포먼스가 2시간을 짧게 만들었다

"공연 중간에는 정말 퍼포먼스 시간을 가졌는데 현장감있는 설정으로 파티에 온듯한

그들은 먹고. 마시고. 웃으며. 관객을 오히려 배우로 만들었다"

특히 이번 공연은 객석이 사각형지대에 무대를 세워 관객이 관객을 바라보는

구조로 남은 공간조차도 무대화하며 누가 배우이고 누가 관객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끄는데 자연스러운 참여 유도가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멕베스'는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상태로 열연을 한다

그가 보여준 배우로서의 열정이 내가 지금까지 본 어느 연극에서 볼 수 없었던

충격적이고 파격적이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공연이었다

서울연극올림픽 공연은 두번째 관람인데 -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일요일 오후 가치있는 시간을 갖게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