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간간이 메스컴에서 소재로 삼고 있는 동성애.
여자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너더러 여자를 사랑하라고 하면 할수 있겠어? 똑같은 거야. 저들에겐 그게 그거야"

연극이 중반을 훨씬 넘어서고, 가즈야가 말한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후지오였어. 내가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후지오 한명 뿐이었다고. 하지만 난 이걸 가슴 속 깊이 꾹꾹 담고 죽을거야"
...... 동성애자들의 사랑은 결국 가슴 속 깊이 꾹꾹 담을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내가 이 연극을 관람한 것은 2010년 10월 11일이었고, 소극장 중에서도 유독 규모가 작았고 무대셋팅도 참 간소했다. 이윽고 한명 두명 등장한 총 네 명의 주인공남들.
다들 너무 훈남이셨고 연기도 좋으셨고, 특히 (감히 말하자면) 가즈야 역 배우의 연기가 유독 좋았다. 그가 테잎에 녹음된 후지오의 음성을 들으며 슬퍼하는 장면에선 그냥 눈물이 찔끔했다.

같이 관람하신 울어마마마는 그다지 취향이 아니셨던지라 조금 지나니 몸을 조금 꼬신 걸 볼 때, 그다지 어르신들 취향은 아닌 것 같다^^; 노골적인 몇몇 단어들 때문에 뻘쭘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 좋았다. 극의 내용을 모르고 봐서인지 스토리전개가 흥미로왔고, 조금 민망한 감도 있지만 네 남자의 칠퍼덕대는 삶과 이야기들이 볼 만했다.

추운 겨울날, 때양볕과 제일 잘 어울리는 선인장.
가시로써 외부를 단단히 방어하고 있지만, 그 선인장이 겨울의 한복판에 놓여진다면 어떻게 버텨야할지. 가시가 있어서 방어하게 되었는지, 방어코자 가시를 갖게 되었는지. 그 가시 때문에 접근을 못하는 것인지, 접근하지 말라고 가시를 가진 것인지, 혹은 가시를 갖고 싶지 않았는데 가져버린 것인지. 왜 제목이 '겨울 선인장'일까,를 생각하니 주절주절 뱉어진다.

－ 파란하늘로 날아오른 흰 공
이 선명한 이미지는 희망이고 자유다.

－ '용기와 희망과 약간의 돈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여기에 하나를 더할게. '용기와 희망과 약간의 돈, 그리고 사랑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면,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부자다.

몇년만에 대학로 연극을 보러갔다가, 간만에 멋진 연극을 본것 같네요.

연극에 대해 지식도 경험도 별로 없는 저이지만,, 저같은 평범한 사람이 일상속에서 간만에 기분전환 하기에도 좋은 연극 같네요.


극중에서 원하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현실과 일종의 타협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꼭 동성애에만 국한된 내용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원하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이유로 현실과 타협하면서 살아가니까요. 그것을 반드시 나쁘다고 만은 할 수 없기에 한편으로 뭉클해지더군요.

하지만 또 크게 웃을 수 있는 장면들도 많아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배우분들도 너무 연기 잘하셔서 좋았어요.

멋진 작품 또 기대하겠습니다.

찰리 채플린 영화 [라임라이트]에서 나왔다던 그 대사, 그 영화를 본 5명의 소년들의 가슴을 따듯하게 채워주었던 그 대사, "용기와 희망과 그리고 약간의 돈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던 후지오의 대사 - 1차 공연 때 내 마음을 울렸던 바로 그 대사가 생각납니다. "용기와 희망과 약간의 돈과 그리고 사랑만 있으면 살 수 있다."



인생 참 별 거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별 거 없는 인생이거늘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그리 많은 게 필요치 않음을 깨닫기란 왜그리 어려운 걸까요? 그 소소하고 소박한 몇 가지는 외면한 채 왜 그토록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발버둥치고 집착하는 걸까요? 모든 것을 다 놓으라며 성스러운 삶을 살다 가셨던 고매하신 분들의 본을 따르라 감히 말할 자신도 없고 자격도 없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위의 네 가지라는데 전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말이죠.



1차 공연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이 대사는 제 가슴을 촉촉하고 따뜻하게 어루만져줍니다. 연극 [겨울 선인장]은, 작품 속 등장하는 그 '선인장'은, 그리고 후지오와 가즈야, 하나짱과 베양은 제게 무언의 시선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넌 잘 하고 있어. 잘못된 건 아무 것도 없어. 네가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 사랑도 찾아올 거야."




어쩌면 희망고문일 수도 있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 기약 없는 내일을 갖고 잘 될거라 말하며 마약처럼 달콤한 유혹으로 지금의 헛헛함을 무마시키는 립서비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또 어떠하겠습니까? 어차피 사랑은 내가 원한다고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필요하다고 만들 수도 없는 것을요. 그저 언젠가 찾아왔을 때 미련하게 알아채지도 못하고 놓쳐버리는 일 없을 정도의 약간의 센스와 눈치, 그리고 적극적인 용기만 준비되어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요? 그 이상을 바라는 건 과욕이고 감당하기 벅찬 감정일 것입니다. 주체하지도 못할 벅찬 감정을 머리에 이고 사는 건 삶을 더 지리하고 멸렬하게 만들 뿐임을 이젠 압니다. 30년 세월의 요령이랄까요-





후지오와 가즈야, 하나짱과 베양의 캐릭터는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나 자신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과거이자 현재이고 미래인 동시에 사실이면서 환상이기도 합니다. 이번 공연에서 무엇보다 공감했던 것은, 더이상 나아가고 싶지 않았던 그 시점에 모든 것을 정지시킨채 어른으로서의 시간이 유예된 삶을 네 남자의 모습입니다. 그들의 고민과 방황은 나이 서른을 먹고도 대체 어른이란 존재가 뭔지 모르겠고, 스스로 어른이라는 확신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인 까닭입니다. 나이만 먹고 몸만 자랐지 그 때 그 시절과 별반 달라진 건 없는 어른아이- 그게 지금 바로 나의 현 주소임을 너무나도 잘 아는 내게 네 남자의 삶을 지켜보는 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난 내 치부와 마주하는 꼴인 동시에 동병상련의 감정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받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너만 그런 거 아냐, 남들도 다 그래-" 라고 속삭여주는 그 말에 조금은 안도하고 안심하게 되는 그 마음을,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아나요?)



이러한 감정선은 연극 [겨울 선인장]이 주인공들의 특수한(?) 성 정체성을 뛰어넘어 아이와 어른 사이의 경계에서 우왕좌왕 방황하는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그 감정을 느끼고 공유하다 보면 세상이 인정하는 비전과 경력, 그리고 능력을 입증해내기 위해 온갖 스펙 쌓기에 골몰하고 고군분투하느라 여념없던 그들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또 내가 제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되돌아보게 될 겁니다. 신이 내린 직장에 들어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시작하고 예측가능한 라이프 사이클을 따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는 인생을 살면 그 반대급부로 세상은 - 마치 숙제 해가면 선생님이 '참 잘했어요' 도장 찍어주는 초등학교처럼 - 어른 인증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성장은 노력의 결과이지 세월이 감에 따라 자연스레 지나게 되는 단계가 아님을 살면 살수록 뼈저리게 느낍니다. 하지만 당장의 일에 급급해 헐레벌떡하다 보면 자신의 성장에 대해 고민하고 그에 대한 노력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여력이 없어지더군요. 그러다 결국 이렇게 됐습니다. 버나드 쇼가 묘비에 남긴 그 말처럼 "내 우물쭈물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 하게 된 꼴이죠.



분명 이 작품은 사회 내에서 소수자로서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주인공의 바이오그래피에서 비롯된 사건과 갈등구조로서 이 작품의 알파는 될 수 있을 지언정 오메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들의 힘든 처지, 어찌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겪는 괴로움, 끊임없는 고민과 갈등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가 되고도 남지만, 그 외에 또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겁니다.



물론 저 또한 처음부터 이런 관점에서 작품을 고른 건 아닙니다. 주인공이 게이라는 점에 끌린 게 사실이고, 그 안에서 작품의 재미와 즐거움, 또 의미를 찾았던 게 사실입니다. 소가 되새김질 하듯 곱씹고 되씹다 보니 이길 저길 헤매다가 이런 결론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정답이란 확신은 없습니다. 다른 이들도 모두 이같은 결론을 내렸을 거라 자신하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난 그랬고, 그러한 의미부여가 어느 정도는 공감대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볼 뿐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해석을 통해 작품에 더 깊은 애정을 쏟게 되고 애착이 생겨 좋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텍스트가 담고 있는 의미와 가치를 무대 위에서 충분히 구현해내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이러했다, 저것 때문에 저러했다 조목조목 번호달고 각주달아 분석할 능력은 안되지만 텍스트라는 '내용물'을 무대라는 '그릇'이 온전히 담아내진 못했음을 느낍니다. 내용이 너무 벅차 흘러넘친 건지, 아니면 그릇이 작아 미처 다 담지 못한 건지 판단하는 건 앞으로 이 작품을 계속해서 보여줄 제작진, 그리고 관람할 관객의 몫이겠지요. 어쩌면 텍스트에 대한 제 만족과 기대가 너무나 컸기에 무대가 채우지 못한 여백의 더 크게 느껴졌는지도 모르지만, 그에 대한 판단 또한 관객에게 맡겨봅니다.

후기를 처음 남기네요;;
사실 공연에 대해서 제대로 안 알고 간 상태였는데
배우분들 연기도 잘하시고 내용도 웃기도 했다가 생각도 해봤다가
재밌게 보고 나왔네요.

좀 아쉽다면 공연첫날이라 아직까지 우당탕 소리가 살짝 나서
관객분들 몇분은 좀 웃으시더라구요.
저도 아무래도 공연일 하다보니 그런 점이 좀 아쉬웠습니다.
일본 소설이나 청춘드라마 좋아하시는 분들이면 좋아하실 공연같네요.
그리고 배우분들 얼굴들이 다 훈훈하셔서 보는 내내 마음이 훈훈했네요.
감사합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