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모순, 순결, 언어, 고요, 휴식. 그것은 우리가 어딘가에 두고 온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 무언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다. 형용된 순간 언어에 포착되어 고착되고 마는 그 무언가들. 찾으려고 애를 쓰면 쓸 수록, 채워질 수 없는 어떤 욕망들이 자리해있다. 그렇기에 비언어적, 혹은 예술적 문학적 요소로 표현된 모든 내용들은 그 무엇보다도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영구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한 상태라는 허상에 대한 모순. 허상을 채우려 하기 보다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이후의 가능성에 대해 표현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문득 어느 시가 떠오른다.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 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경주 / 외계(外界)

팔 없는 화가가 어머니 품 속에 두고 온 것은, 두 팔이 아닌 평범한 사지를 갖춘 일반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일반 시민 자격증을 두고 온 것일수도, 혹은 두 팔로 살 수 있는 모든 자유로움과 편리함을 두고 온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팔 없이 절벽을 기어 올라가, 상처입은 몸통과 함께 혀로 바람의 색을 탐구하며, 입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가 두고 온 것은 사실 두 팔이 아닌, 평범한 삶이 아닐까. 일반적 삶에서는 행할 수 없는 창조적 행위. 비어있는 틈새로부터 생겨나는 수많은 가능성들. 완벽함, 혹은 평범함으로부터의 분리를 통해 피어나는 것들.

이것은 우리가 어딘가에 두 팔 대신 심어 놓은 형체모를 여섯 가지 꽃에 대한 이야기다.

한번 보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상당히 몰입도 높은 구성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또 보러 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