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사이라는, 가족이라는...어찌보면 상당히 통속적인 소재라고 생각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60여분의 러닝타임동안 굉장히 밀도있는 소재를 담백하게 담아낸 작품이었습니다.

가장 보편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우리 주위에 흔히 존재하는 것 같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전혀 진부하지 않게 멋지게 그려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연기를 멋지게 소화해 낸 배우들과, 이 모든것을 세련되게 만든 작가, 연출 선생님과 모든 스태프분들이 앞으로 더 훌륭한 작품 활동을 하시기를 바래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사이이면서도, 가장 상처주기 쉬운 사이..가족..
그 중에서도 한국 사회에서 모녀지간이란...
가부장적 사회에서 약자들끼리의 연대이면서도,
또 서로가 어렵지 않아서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기에 가장 좋은 사이..
정말 어려운 관계라 생각합니다.

이 연극은 러닝타임이 생각보다 짧고, 중간중간 상징적인 장면들로 행간도 굉장히 넓습니다만,
한국에서 모녀사이로 살아본 사람이라면 그 빈 부분을 충분히 메꾸고도 남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 역할 맡으신 분은 굉장히 젊은 분이시던데..어쩜 그렇게 엄마 말투가 찰떡인지 모르겠고..
딸 역할 맡으신 분의 독특한 목소리 울림은..엄마에 대한 애증이 너무 현실적으로 묻어 있어서
저와 엄마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가슴 찡하게 보았습니다.

사과 한 마디 없이 용서할 수 있는 관계란 어떤 게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가해자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거나
피해자가 가해자를 너무나 사랑하거나
누가 피해자, 가해자라 할 것 없이 상처를 쌍방으로 주고 받았거나...

연희가 엄마를 용서하고
엄마가 시아버지를 용서하고
엄마가 자신을 버린 외할머니를 용서하고

가족은 나에게 너무나 큰 힘을 가진 존재이고,
너무나 사랑하는 존재이고
가족은 부지불식 간에 서로를 치고 받고 하면서도 결국 받아들이게 되는 존재인가 봅니다.

좋은 연극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