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의 영향으로 한파가 가시지 않는 요즘, 이런 날씨에 공연을 올리는 건 고역인데, 오로지 몸을 쓰는 무용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추운 날씨에 휴대폰 배터리도 금방 방전되는 날씨에 무용이 올라간다. 중력을 거스르려는 인간의 의지, 새에 빙의한 무용수들의 몸은 무게를 치거나 근육을 늘리고 가꾸는 방식의 그것과는 다른 영역이다. 일종의 의지로 읽히는데, 찬란한 만큼 한계가 명확하여 전성기가 30대 초반을 넘기기 어렵다고들 한다.

극장 크기가 있다 보니 아마도 온도 관리를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쌀쌀하다. 여느 극장이라면 관객들이 두꺼운 겉옷을 벗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GRAVITY'', 중력에 관한 무용이 올라간다. 무용수들은 반라의 몸으로 무대에 등장한다. 충분히 몸을 풀었겠지만 초반부 열이 오를 때까지 괜히 내가 조바심이 인다. 이 시기에 올라가는 이유는 창작산실 기획이기 때문인데 이는 장단점이 있다.

80분 남짓, 현대무용으로 결코 짧지 않은 여정 가운데 마지막까지 배우들 사이 기대고 올리고 마주하고 깔리고 들고 들리는 몸을 섞는 일련의 과정이 이어진다.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조절한 극장 온도는 무대를 끝까지 끌어가기에 최적의 조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창작 초연인 이상 아르코예술극장 회전 무대나 무대 앞 오케스트라 석을 비롯해 극장 고유의 설정이나 기능을 최대한 극 안에 녹였다.

연극과 달리 대사를 사용하지 않는 공연에서는 소리와 조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연출의 의도가 그 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객석을 울리는 강렬한 불협화음이 이어진다. 거대한 두 물체가 중력에 의해 서로 끌리고 부딪히며 내는 굉음처럼, 하나가 되거나 無가 되거나 배우들은 정형화되지 않은 순간을 보여준다. 뒤에서 쏘는 강렬한 스팟 조명에 무대를 뿌옇게 채운 스모그는 부서지며 쏟아내는 모래 먼지 보이기도, 중력에 방향과 세기가 바뀌는 공기의 흐름처럼 보인다.

오래전, 우연히 류장현을 무대에서 본 기억이 있다. ''드렁큰 루시퍼drUnken lUcifer''(2012) 당시 그는 작지만 미친 원숭이처럼 날뛰었고 ''그가 ‘몸’ 외에 무대를 활용하는 방식이나 오브제를 다루는 다양한 변주에서 익히 공식을 따르거나 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고 감상을 남겼다. 뭘 알고 쓴 것 같지는 않고, 이제 류장현도 무대에 서지 않으나-마지막 인사를 하러 나온다-그의 후배이자 친구들이 그의 의지를 가지고 무대에 섰다. 정돈됐지만 여전히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이 배어 나온다. 멋지다.*

GRAVITY, 중력.

과학적으로도, 인문학적으로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알쏭달쏭하고 복잡미묘하지만 우리와 가장 밀접하게 존재하는 그것. 이것을 ''류장현과 친구들'' 팀은 현대무용을 통해 관객에게 가장 쉽고 단순한 방법으로 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공연은 캄캄한 어둠으로부터 시작되어 지직거리는 불안정한 음악, 그리고 무용수들의 혼란스러운 몸짓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무용수들의 몸짓은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무언가 알 수 없는 생명체의 불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바닥을 기었다가 하늘 위로 튀어 오르기도 하고, 서로 뭉치고 마구 꼬였다가 다시 흩어지기도 하며 마치 세포들이 분열을 이루는 듯 보이기도 하고, 현미경으로 바라본 아메바들의 움직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불규칙하고 불안정한 음악이 점차 안정적인 박자를 잡아갈 때, 무용수들의 움직임도 점점 규칙적이고 정적인 행동으로 바뀌며 안개 속에서 인간의 정상적인 걸음걸이의 모습으로 다시 무대 위로 나타납니다. <GRAVITY>는 단순히 우리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힘인 ''중력''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카오스에서 우주가 탄생하고, 광활하게 넓은 어두운 우주 속에서 지구가 탄생하고, 또 생명이 불완전한 존재로 수억년간 수도 없이 세포분열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균형과 조화를 찾아 하나의 생명체들이 태어나기 시작한 그 순간들. ''중력''이라는 녀석이 만들어낸 감히 셀 수도 없는 수억, 수십억년 간의 반복된 탄생의 순간들을 무용수들의 몸을 통해 표현해냈습니다.

어둠이 바탕이 되는 무대 위 제한된 색감 사용으로, 우리는 무용수들의 몸짓에 100%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그 몸짓들은 마치 음악과 하나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둠 속에서 진행된 공연이었지만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절대 하나의 색깔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로웠습니다. 80분의 공연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이유는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지 않을까.

훌륭한 연출에 뛰어난 무용수들이 더해져 만들어진 탄생의 이야기. 모든 것이 ''0'' 이었던 공허에서 ''1''이 생기는 그 찰나의 순간.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꼭 봤으면 하는 바램이 드는 최고의 공연이었습니다. 이런 훌륭한 공연이 단 3일간만 진행되었다는 것이 정말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그 관람객이 되었다는 것에 큰 행운을 느낍니다. 앞으로 있을 ''류장현과 친구들'' 팀의 다음 공연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며 관람평을 마칩니다.

인간이 겪는 신체적 중력은 물론, 인간 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감정적 무게를 포함해 인간으로 태어나 신체적, 감정적으로 겪는 모든 힘에 대한 중대성을 무용이라는 신체 언어를 통해 흥미롭게 제시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류장현과 친구들의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응원합니다.

80분으로 런타임이 긴편이었는데 중력이라는 주제로 여러가지 소주제를 가진 프레이즈와 다양한 움직임들을 볼 수 있어서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할 수 있었던 공연이었습니다.

12명의 무용수들의 창의적인 예술을 무용으로 온몸을 통해 표현한 감명깊게 본 현대 무용의 진수를 보여준 멋진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