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오닐이 쓴 희곡을 미리 읽거나 앞서 동명의 연극을 본 적이 없지만 창작집단 에이프(Ape)은 작품과 싱크로율이 일치하는 극단답게 ''표현주의 작품인가 아닌가''를 두고 논쟁이 있었던 희곡을 충실하게 반영한다. 원숭이와 인간 사이, 철창은 경계이자 구분이며 룰이자 틀인데 에이프는 쇠 각목으로 짜 실제 사냥이나 포획이 쓰일 만한 철창을 여러 개 무대에 놓고 상황에 맞게 밀고 옮기고 세우고 두드리며 변주한다.

무대 소도구 활용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배 밑바닥 지옥 같은 엔진룸에서 왕이나 다름없는 양크를 중심으로 무대에서 그가 세상에서 부딪히며 겪는 모든 상황에서 변형된 것이든 아니든 철창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꽤 상징적이다. 푸른색 철창 외에 이렇다 할 소품이 없는 무대는 그 자체로 동물원 원숭이 우리이기도 하다. 티브이 드라마 타잔 옆을 졸졸 따라다니는 침팬지 치타도 그렇고, 동물원 우리를 사이에 둔 유인원이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악력이 130Kg로 성인 남자의 두 배가 넘고 40km로 달릴 수 있는 신체 능력에 집단을 이루어 원숭이를 사냥하거나 다른 집단 유인원과 벌이는 전투를 보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무대 위의 앙크를 비롯해 그 일당은 ''순수 약''에 가까운 유인원처럼 꽤나 거칠고 위험해 보이지만 계급, 자본, 인종 등등 그 경계를 넘지 못하고 경찰서 철창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린치를 당한 채 비극을 맞이한다. 노부인 역할을 분장을 하고 등장하는 등 오로지 젊은 배우들이 끌어가는 작품은 시대에 맞게 조율이나 해석을 했는가 이전에 캐릭터에 맞게 동물적인 본성을 혈기 넘치게 드러내는 한편으로 동선, 조명, 배치를 조율해 조명, 음향을 보면 오히려 섬세하게 다가온다.

젊은 연극인들이 기존 극단 혹은 질서에 순응하는 대신 새로운 출사표를 보여주려는 출발로 ''털북숭이 원숭이''는 잘 어울리는 선택이다. 연극을 한다는 자체로 폭풍에 흔들리는 배를 모는 일처럼 고난의 연속이겠지만 출항을 옆에서 본 관객으로 응원하고 박수를 보낸다.*

유진 오닐 원작도 훌륭하고 연출도 멋지고 열정적 배우들의 연기도 최고인 강추공연을 소극장 나온씨어터에서 보다니... 정말 나온씨어터의 작품 보는 안목은 최고다. 큰 극장이며 유명극보다 이런 수작을 만나니 소극장 공연을 사랑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얼굴에 검정칠 하고 옷도 인부들의 초라한 행색에도 번득이는 눈과 멋진 모습으로 온갖 역할을 쉴새없이 땀흘리며 연기하는 배우들과 멋진 연출, 깊이있는 인간을 표현하기 위한 온갖 시도들... 대단해서 감탄했고 박수치고 싶다.

20세기 초반에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이다. 노동자 계급의 자아 찾기 및 당시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어찌 보면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던 부조리극 형태 또한 엿볼 수 있다.

사실 고전에 가까운 작품이니만큼 교과서적인 대화에서 나오는 지루함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현대 시류에 맞게 잘 각색한데다가 배우들의 연기 또한 기대 이상이었기에 90분간 제대로 집중해서 본 듯 하다.

당시 극의 주인공격인 양크가 품었던 회의와 소외 의식은 지금 세상에도 여전히 유효하기에 이 작품 또한 분명 그 의미를 가진다. 세상은 왜 그리도 끈질기게 이분화, 계급화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