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그날 오후는 추적추적 비가내렸습니다. 저희 부부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태풍에 피해간 곳은 없는지 염려하며 언제 이 비가 그치려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때 걸려온 전화.
딸이었습니다. "엄마, 금요일 저녁에 대구에서 오페라 공연 있는데 시간돼요?" "그래, 뭔데?"
"투란도트라고 푸치니의 유작이래." 푸치니?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하여튼 딸이 보여준다고 하니 우리 부부는 없는 시간도 만들어낼 참이었습니다. 공연당일. 부부는 오랜만에 멋을 냈습니다. 집에서 늘 입던 파자마 차림을 뒤로하고 딸이 언젠가 사주었던 푸른색 자켓과 아이보리 색 블라우스를 입고 공연장으로 향했죠. 얼음공주라 불리우는 투란도트...그녀의 마음은 영원히 얼어붙어 있을 것만 같았는데 저 멀리 남쪽에서 온 칼리프라는 이름을 가진 왕자에 의해 그 얼음은 녹아내립니다. 얼음을 녹아내리게 한 그것은 다름아닌 사랑. 이 한마디를 하기위해 푸치니는 이런저런 장치를 썼지만 결국 사람 사이의 긴장을 녹게하고 평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사람 사이의 정, 혹은 사랑. 또는 희생. 인류사적으로 이름을 남겼던 예술인들은 한가지 주제를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부부간의 맹숭했던 관계도 간만에 보았던 명품공연으로 활기가 돋습니다. 공연에 가기위해 공부도 했고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대구 향토 출신 예술인들로 꾸며진 무대였기에 더욱 뜻깊었지요. 문화란 삶에 있어서 여유가 될때 즐기는 것이 아닌 어려운 때일수록 더더욱 두고 곁에있어야할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