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좋은 연극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봤던 느낌과 달랐어요.
중년의 남자들의 우정과 죽음...
예전엔 배우들의 장난꾸러기 같은 언행에 웃음이 많았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그 이면의 모습에 가슴이 찡했어요.
공연장을 나서는데, 소주 한 잔이 찐하게 생각나더군요.

공공극장 공모연극 치고 재미까지 있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데..재미도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여행''이란 연극에 대한 사전 정보없이 무작정 만난 연극이었다. 어떤 여행이든 떠나는 것에 무조건 열광하는 나는 이 연극의 제목이 주는 묘한 끌림이 좋았다. 내 또래 중년배우들이, 그것도 평범하다 못해 쪼금은 찌질해 보이는 캐릭터들이 유난히 정감이 갔기 때문이다. 연극이 시작되자 꼭꼭 숨기고 싶었던 본래의 내가, 또 이리저리 포장해 왔던 진짜 내 모습이 배우들의 대사에 오버랩되어 무대위에서 허물을 벗고 있었다. 얼마 전, 마흔 아홉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친구의 장례식에 모인 우리 동창들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처음엔 세상을 떠난 이의 연민에서 우리 모두 우울했지만, 장례식장을 빠져 나올 때 우리는 우리들만은 행복하게 살자 다짐했었다. 그리고 금방 잊었다. ''살기에 바빠서...''라는 아주 정당한 이유를 마련해 놓고......,
화장장에서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만져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택시기사 양훈, 귀경하는 관광버스 안에서 마치 홀가분한 여행처럼 광란에 빠진 친구들의 이중성이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슬프기까지 했다. 우리 모두는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가장 아파한다. 힘들게 사는 양훈의 주정이, 넋두리가 절절한 것은 그 자신의 설움 때문이다. 이 가을에는 가슴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눈물을 당당하게 흘려보자. 이 연극은 인생이라는 여행 중에 잊고 지낸 나를 만나게 해 주었다. 비틀거리는 양훈의 취한 연기가 너무나 실감났다. 돈 좀 벌고 있는 싸장님들의 거들먹 연기도 일품이었다. 순간순간마다 너무나 인간적인 ''친구''들의 속마음이 이 가을을 더욱 서늘하게 할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명품 연극이었다.

티격태격 하지만 결국 그밖에 없는 그런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