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보고 왔는데, 기대만큼 잼있었어요.

여자분 목소리도 좋고, 선욱현 선생님 "역시.." 했구요.

오랜만에 좋은 공연 잘 봤습니다.

''사랑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아니, 왜 오는 걸까요?'' 관우가 공연의 막을 올리며 던지는 물음은,&nbsp;우리가 자주 듣는 사랑에 대한 통속적인 질문이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물음은, 그 어떤 비슷한 변주의 질문이던 간에 우리의&nbsp;벌걸음을 멈추게 하고, 눈을 잠시 꾹 감게 만들고, 두 손의 깍지를 꽉&nbsp;쥐게 만든다. 그래, 다시 한 번 읊어보자. 그 단어를. 사. 랑. <카모마일과 비빔면>은 쉽게 흘려버리면 그냥 그대로 지나가고 머물러 두자면 한없이 옆구리에 끼고 가슴 먹먹함을 느낄 수&nbsp;있는 공연이다. 사실 어제 ‘카모마일과 비빔면’을 보고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지나간 사랑에 대한 회상 때문에도 다가올 사랑에 대한 시대와 불안에 대한 것도 분명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연극이 던져주는 사랑의 정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아파한 걸까. 내가 조용히 떨어뜨린 약간의 눈물은 슬퍼서 괴로워서 흘리는 눈물이&nbsp;아니었으며, 선욱현작가가 처음에 말한 시간이 흘러도 남는 몸의(마음의)&nbsp;상처를 보며 아파서 흘리는 눈물도 아니었다.&nbsp;나는 그냥 누운 채로 한 방울 그리고 또 한 방울 그렇게&nbsp;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나도 모르게. 그냥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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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욱현 작가의 공연은 총 네 작품 봤다. 의자는 잘못 없다, 피카소 돈년 두보, 영종도 38km 남았다, 그리고 카모마일과 비빔면. 작가님의 배우활동은 지인을 통해 말로만&nbsp;전해 들었고, 이번 기회는 그것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공연을 예매할 때, 작품 내용을 검색해서&nbsp;찾아보았다. 사랑이야기, 였다.&nbsp;지쳐서 당분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그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nbsp;내가 지쳐 그것을 미뤄놓았던&nbsp;그 시간이 생각보다 조금 흘러 있었다. 그러나 마치 몇 년이 지난 듯, 흔적도 보이지 않는 걸 보고 새삼 씁쓸했다. 현재 머물러 있는 사랑도 없고, 잡고 싶은 사랑도 없으니 어떤 상황에서 보다 사랑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랑을 하면 나와 그 사람만의 새로운 세계가 생긴다. 그 세계 밖의 일은 관심이 없어지며, 우리 안의 일들에만 집착적으로 집중한다. 그 안에서 웃음소리를 내고 통곡을 한다. 그러기에 만약 누군가가 지금 내 옆에 있다면,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그 사람을 통해서만 소화할 것이기에 국한된 해석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nbsp;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산이었다. 사랑이란 것은, 누군가가 내 옆에 있든 없든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생각만으로, 내 몸과 마음을 잔뜩 쉐이킹해 놓고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것이었다. 우연히 앉은 관객석 앞자리에서 나는, 술집여주인 미란 역을 하게 됐다. 그래서 전관우역의 선욱현작가와 매우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좋았다. 공연 중에 마신&nbsp;맥주 한모금도. 역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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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요. 밥 주세요.'' ''밥은 없고 , 제가 야식으로 먹는 비빔면이 있어요.'' 유인과 관우의 첫 대사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항상 밥을 먹고 싶었다. 커피나 술, 그것은 어떤 시간이든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지만 밥은, 하루에 세 번의 끼니를 때우는 시간에 맞춰서 만나야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밥을(양식이나 중식은 다르다.)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마음을 열 준비가 되었다는 것 때문일까. 밥 한 숟갈을 먹고 상대를 쳐다보고, 반찬 하나를 골라 젓가락을 가져가 그 사람 밥그릇에 놓고 나도 먹고, 그 순간이 매우 행복했다. 무엇인가 중요한 일을 서로 하는 것 같았다. 함께 앞으로 걸어가는 것 같았다. 유인은 배가 고프다며&nbsp;밥을 주라고&nbsp;한다. 그렇게&nbsp;관우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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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에서 여러 영상들이 나온다. 비빔면을 만드는 영상, 결혼식 영상, 갓난아이가 성장하는 영상, 그리고 졸업식의 영상.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시간이&nbsp;흘러 그 나이가 되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의 순간들. 그러나 그 보편적인 상황을 겪지 못하거나 겪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분명&nbsp;있다.&nbsp;나는 영상을 보며 보편적인 삶, 을 생각했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나에게는 어렵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타인들과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삶, 그 즈음 어딘가에 항상 머물러 있다. 사랑을 보편성에 의거해 생각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을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힘든 시간을 겪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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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면 좋아해요. 맛있어요. 저랑 잘래요?'' 유인은 처음 만난 관우에게 함께 자자고 한다. 누군가에게 이 말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며, 처음 해보는&nbsp;그 순간을 그녀는 무척 슬프게도 재미있어 한다.&nbsp; 유인역의 연극배우 김소영은 작품 시종일관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녀의 눈물이 나의 것 같았다. 고통스럽지만 즐겁게 연기를 해 주었다. 무거운 대사를 가볍게 하지만 경솔하지 않게, 결코 단순하지 않은 문제들을 그녀는 툭.툭. 손톱을 나무테이블에 두드리면 나는 소리처럼&nbsp;쉬워 보이게 해결한다. 그것을 상대에게도 요구한다. 관우는 지나쳐버릴 수 있는 문제도 살을 잔뜩 찌워 무겁게 어깨에 올리는 스타일이다. 그러기에 둘은 사사건건 부딪힌다. 많은 성인 여자들은 상대 남자의 성적인 가벼움에(일부만이 그것을 표현하겠지만), 우리와 다른 그것에 당황스러운 순간들을&nbsp; 경험한다. 첫사랑의 3년간 양다리에 대한 반항을 맞불로 하고 싶었던 유인은 그녀가 뱉은 말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녀는&nbsp;아무하고나 자는 여자가 아니다. 처음만난 관우지만 관우는 그녀에게 ''아무나''가 아닌 것이다. 그것이 운명일까. 아무하고나 자는 여자는 ''나랑 잘래요.'' 라는 말을 하지 않고, 남자를 유인해 그가 먼저 다가오게 만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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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만남 후,, 결혼을 한 유인과 관우. 본인은 거짓말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관우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 그에게 상처를 주는 유인은 고의가 없었다. 하지만 유인은 무려 첫사랑과 새벽 6시까지 술을 마셨고 실수로 키스를 했다는 말을 그에게 하기도 한다.&nbsp;내 주관적인 생각에서 여자는 아픈 진실을 괜히 말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아픈 말은 본인에게도 아프다. 본인도 아픈 그 말을 하고 싶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다. 그 쓰린 진실 안에 나를 살려주라는 고함소리를 들어주기를&nbsp; 그녀는 바랬다. 절대로 관우만을 아프게 하고 싶어서 한 말이 아니다. 유인은 관우가 차마 말하지 못하는 소리를 들어주길 바란다. 나는 그랬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지금 당신에 대한 감정이 사그라지고 있다고, 예전 같지 않다고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고. 그가 아플 것이라는 것은 지나가는 초등학생에게 물어봐도 당연한 상황이었다. 하지만&nbsp;나는 그 순간 솔직했다.&nbsp;그 말을&nbsp;하면서 나도 그만큼 아팠다. 그 말을 한 이유는, 내가 자주 부탁하고 애원했지만 그가 무시했던 일들이 잦아지자 내 감정이 지쳐 그리 된 것이라는 것을 그가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나의 변심에 당황스러워 했고 잘하겠다고 했다. 마음이 변하고 있다는 것은 변했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나도 그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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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는 유인을 자신이 사과를 깎아 먹던 과도를 찌르는 시늉을 두 번 한다. 죽어버리라고 말하며, 유인에게 그 남자 냄새가 난다며 더럽다 한다.&nbsp;관우가 말하는 냄새는 유인에게서가 아니라 관우에게서 나는 냄새이다.&nbsp;유인의 첫사랑 냄새가 아니라&nbsp;(그가 봤을 때&nbsp;쉽게 다가온 ) 유인의 자유로운 생활을 바라볼 때마다&nbsp;관우 코 밑에서 나는 뿌리 깊은 그녀에 대한 불신의 냄새이다. 연인에게 하는 행동과 말들은 지나간 사랑들에게 받은 상처의 투덜거림이 덕지덕지 묻어나 있다. 이는 결코 부드럽지도 않고&nbsp;이해와 관용이 점철된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뾰족 거리고 거칠며 매사에 불만스러움이 붙어난 행동과 말이다. 유인은 아이를 낳기 전까지 첫사랑과 관우를 마음에서 마음으로 오가며 오버랩 사랑을 했다고 생각한다. 첫사랑 오빠에게 받은 배신감에 대한 애도의 기간 없이, 관우를 만나 사랑이라는 것을 서툴게 시작한다. 내가 항상 겪는 혼란스러움 중의 하나는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책의 내용과 저 책을 내용을 섞어서 이해하고 기억하게 된다. 책도 사람도 마찬가지 일까.&nbsp;그래서 유인은 비록 술김이긴 했지만, 관우를 향해 ''오빠''라고 부르는 실수를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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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유인이 가엾다. 인생도 잘 풀리지 않고, 마음관리 몸관리도 그녀에게는 어렵다. 무엇이 건강한 선택인줄 나도 그녀처럼 모르겠다. 위가 쓰리고 마음도 쓰리고 몸은 말라간다. 관우는 유인에게 애인도 양다리를 걸치냐며 보컬선생님과의 술약속을 가는&nbsp;그녀를 바라보며 비꼬는 말을 던진다.&nbsp;그 말을 듣는 나도 아프다. 유인은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 불신이 그 사람의 마음에 팽배해 있는데 무슨 말이든 못 하겠는가. 관우가 믿음으로 조금만 더 조심스럽게 말을 하고 행동을 했다면, 유인은 좀 더 일찍 관우에게로 왔을지 모른다.&nbsp;흘러가는 시간만이 우리를 깨우친다. ''너 나한테 말할 거 없니?'' ''없는데'' 유인은 관우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음을 알고, 그의 고백을 유도한다. 관우는 말하지 않고, 유인은 관우의 술에 농약을 탄다. 현실과 육아에 지친 유인이 관우를 예전보다 더 신경 쓰지 않자, 관우는 외로웠고 다가온 사랑을 놓치지 않았다. 그 뿐이다. 하지만 둘은 결혼한 사이이다. 유인이 희석된 농약을&nbsp;소량만 탔기에 관우는 죽지 않았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한 번씩 죽였다. 그리고 그들은 살았다. 그들은 서로를 놓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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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다른 이를 배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네. 그렇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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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관우가 술집주인 미란역,인 나에게 한 질문이다. 그리고 나의 대답. 우리는 사람이다. 상대를 배신을 할 수 있다. 마음은 변할 수 있다. 변할 수 있지만, 그래도 순간을 진실하다. 결혼한 이후에는 그 지나간 순간을 추억하며&nbsp;살아가야 하나. 나를 바라보는 상대의 흔들리는 눈이 진실을 증명했지만, 그 흔들림이 지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닐지도&nbsp;모른다. 그럼에도 결혼 한 사이라면, 흔들리지 않는 눈을 바라보며 하루 그리고 또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건가. 그 하루하루 속에서 다시 가끔씩 예전의 감정이 생기며 그렇게 사는 것일까. 둘 사이의 불신과 깨어진 믿음에도 둘은 함께 산다. 그들의 사랑은 어디쯤에서 멈춘건지, 희미하게나마 계속 흘러가고 있는건지. 관우는 계속 희곡작가지망생으로 유인은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뮤지컬배우지망생으로 살고 있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유인만이 카페를 관리하며 경제적인 살림을 도맡는다. 그녀는 이제 오디션도 볼 여유도 없다. 유인은 카페 장사가 안 되면 다른 일을 하자고, 이제 그만 희곡도 접으라고 소리 지른다. 관우는, 너 이제 그런 말도 하구나,&nbsp;라며 고개를 숙인다. 결혼을 한 친구들은 가끔 나에게 신랑과의 싸움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nbsp;했다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하지 말아야 할 말과 상대의 건들지 말아야 할 부분. 그것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 사람이 아니기에 객관적인 상대의&nbsp;&nbsp;분석으로만&nbsp;그것을 알 수 있다. 상대의 그 부분들을 건들지 않는다면, 더 이상 가까워지지 못할 경우에도 항상 그 대화는 피해가야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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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한 지인으로부터 결혼을 한 후에는,&nbsp;두 사람이 힘든 일은 다툼 없이 잘 협동하지만 사소한 일에 어긋남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다. 둘의 아이가 아프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관우가 앓았던 같은 병으로 아프다.&nbsp;관우는 딸아이를 위해 직접 산에 가 약초를 캐온다. 유인은 위암확률이 있어서 조직검사를 해놓고 다음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은 평소와 같이 티격태격 말다툼을 한다. 그리고&nbsp;유인은 배가 고프다고 한다.&nbsp;관우는 카모마일을 넣어 부드러워진 비빔면을 먹다가 유인에게 준다. 여자는 맛있게 먹는다.&nbsp;관우는 걱정한다. 비빔면이 위가 아픈 유인에게는 맵지 않을까, 하며. 관우는 유인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그 시선은. 내가 아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었다.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는. 존경스럽고. 안쓰럽고. 뭔가. 마음이. 이상하게 아리는. 그런 시선이었다. 그렇게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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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한 번, 물음을 던져보고 싶다. 과연 사랑이 무엇일까. 특히, 결혼 한 후에 배우자에게 느끼는 사랑은 어떤 감정일까. 결혼 17년차의 부부. 17년이란. 얼마나. 어느 정도로.&nbsp;긴 세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