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연 : 연극 억울한 여자
일 시 : 2008년 9월 11일
장 소 :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캐스팅 : 이지하(유코) / 박윤희(다카다) / 한성식(아베) / 이선주(우에노) / 김문식(니무라) / 조영규(고니시) / 김주령(사이키) / 이지영(마루야마) / 김원석(요코야마)

연극을 보고 나서며 그저 더할 나위 없이 산뜻하고 경쾌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공연을 볼 때는 표면의 웃음거리를 쫓느라 미처 몰랐던 묵직한 감동과 여운이, 공연장 문을 나서며 그제서야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 오래도록 남는 작품이 있다. 연극 <억울한 여자>는 후자에 속한다.

<억울한 여자>가 ‘잘 만든 연극’이라 불릴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로 망설임 없이 배우들의 호연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저런 수작에서 자신의 독특한 색깔로 작품 속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 낸 배우들이 눈에 띈다. 특히 유코 역의 이지하씨와 다카다 역의 박윤희씨는 능청스러울 정도로 작품에 녹아 들어 있어, 정신을 차리지 않는 순간 순간, 내가 지금 공연장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카페 한 모퉁이에서 타인의 대화를 엿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배우가 연기를 잘 하는 것이야 어찌 보면 당연할 듯도 싶은데, 역할과 상황에 맞춤으로 딱 맞아 떨어지는 연기를 보고 있자면, 거듭 실수하고 교정하고 또 반복하는 배우의 땀방울도 함께 느껴지는 듯 하여, 가슴이 벅차 오르기까지 한다. 사실 이지하씨는 다른 모습의 유코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도 덜도 없이 딱 ‘유코 다운’ 유코를 연기했다.

“….아, 왠지 억울해. 씨…왜 이러지? 가끔씩 너무 억울해서 속상한 때가 있어. 왜 이렇게 억울한지 모르겠어. 그런데 억울해. 너무 너무 억울해.”
유코의 대사다. 연극의 중반을 훌쩍 지나서야 이 연극의 제목이 왜 ‘억울한 여자’인지에 대한 실마리가 제공된다. 집요하게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끊임없이 확인하고 의심하는 유코의 말장난이 지루하게 이어지면서 남편 다카다씨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 심지어는 관객들 조차도 ‘저 여자 이상하다’라고 생각할 즈음이 되서야, 유코는 자신이 ‘이상한 여자’가 아니라 ‘억울한 여자’라고 토로한다. 그런데 그 열변을 잘 들어 보면 유코씨는 정말 억울하게도 생겼다. 유치원 때 선생님께 인형을 보여드렸더니 “인형 예쁘네, 다음에 또 보여줘” 하길래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매일매일 다시 보여줬더니 어느날 선생님은 화를 낸다. 선생님이 방학 동안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발표하라고 해서 미국여행갔던 얘기를 솔직하게 말했더니 친구들 사이에 공주라는 별명이 붙고 왕따가 되는 식이다.

예쁘고 친절해서 처음에는 누구나 반기고 좋아하는 유코는, 사실 소통부재의 문제를 앓고 있었다. 그녀 자신이 진지해지면 진지해 질수록 주위 사람들은 그녀를 비웃고 이해하지 못한다. “억울하고 속상해”라고 말하는 그녀는 사실 무척 외로워 보인다. 이 작품이 일본 작가 ‘쓰시다 히데오’의 원작이고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연극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 하고, 자신의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는 일본의 성향을 감안한다면, “다음에 또 보여줘” 라는 선생님의 인사 치레 말이나, 솔직을 담보로 남보다 튀어 보이는 유코의 행동은 분명 일본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번번이 버려지고 무시당하면서도 상대에게 자신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그녀가 애처로워 보이기 시작하는 건, 우리가 바로 소통과 공감의 부재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극 <억울한 여자>는 대화와 소통의 부재에 익숙해져 가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하는 지도 모르겠다. ‘소통과 어울림, 대화’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말이다. 이 연극 <억울한 여자>는 아쉽게도 공연 기간이 열흘에 불과하다. “서로 믿어주고 끊임없이 대화하라”는 교훈을 전해 주고 싶은 지난 달 결혼한 친구 부부. 배우 이지하씨의 똑 소리 나는 연기를 꼭 보라고 권하고 싶은 <침향>을 함께 본 친구. <강철왕>에서 불 같은 매력을 발산하던 배우 조영규씨의 또 다른 매력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 그렇고 그런, 비슷비슷한 뮤지컬들 중에서 그럴싸한 연극 한편 고르기 어려워하는 숱한 관객들. 이들 모두에게 권하고 추천해 이 연극을 보게 하기에 열흘이라는 공연 기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다듬어지고 더욱 촘촘해져서 조금 더 길고 여유롭게 무대에 다시 오르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여자들끼리라면, 무대 배경을 닮은 예쁜 커피숍에 앉아 두어 시간은 넉근히 수다의 소재로 삼을 만한 연극이다. 혹시 남자가 끼어 있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자의 ‘입심’에 진저리를 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벼운 웃음 뒤에 숨어 있는 씁쓰름한 공감이 매력적인 연극. 누구와 함께든 공감하고 즐길만한 연극으로 추천할 만하다.

관람일자 : 2008. 9. 6.(토) 오후 7시30분

이미 낭독회에서 본공연에 대한 기대와 끌림이 있었던지라 다시 찾았다.
내용과 흐름을 알기에 혹여 따분함이 있지는 않을까 약간의 우려도 하면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고 낭독회와는 다른 더 나은 느낌과 극에 대한 더 많은 이해로 몰입할 수 있어 훨씬 괜찮은 작품으로 생각되었다.

주위와 타인에 대한 의식을 늘 안고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에 불안해 하는 경우가 많다.
안으로 감추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반면에 타인의 솔직함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익숙하지 않다.
다름이란 것을 자신도 타인도 인정하려 드는 것에 인색하다.

유코는 그들과 조금(보는 이에 따라 어쩜 좀 많이) 다를 뿐이다.
그들이 그냥 지나치는 떨매미의 존재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찾고자 행동으로 옮기며 나섰을 뿐인데,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고 이상한 존재가 돼 버린다.
유코는 호기심 뿐만 아니라 궁금한 것이나 의구심이 드는 것에 대해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반드시 상대에게 확인하고자 한다.
이런 모습이 속내와 다르더라도 불편함을 덜기위해 약간의 거짓이나 집단에 속하는 것에 익숙한 그들에겐 집요하게만 보여 피곤하고 짜증나며 지치게 하는 일들이다.
결국 이해받지 못하는 다름때문에 이미 세 번의 이혼경험이 있는 유코는, 분명 이해하리라 믿었던 남편 다카다에게서 더는 감당할수 없다는 선언에 네번째 이혼을 맞는다.

소풍때 유코와 친해지길 원하며 다가섰던 많은 친구들이 소풍이 끝날 즈음엔 곁을 다 떠나고,
삼촌이 남극에서 보낸 돌을 친구들에게 보여줬더니 다른 돌을 더 보여달라 해서 이것밖에는 없다고 사실대로 말했는데도 거짓말쟁이라고 손가락질 당하고, 유치원시절 곰인형을 유치원에 가져갔는데 유치원 선생님이 예쁘다면서 내일 또 보여달라고 해서 다음날 가져갔고, 선생님은 계속 예쁘다며 웃어주셔서 한 달을 가져가 보여줬더니 한 달째 선생님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무섭게 화를 냈고, 내게 문제가 있나싶어 병원에 갔으나 정상이라고 하는데 그 의사의 말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고 얘기하며 억울하다고 말하는 유코...
신은 있는 거냐며, 그저 평범하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싶을 뿐인데…라며 자조섞인 말을 내뱉는 유코에게서 나는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관객들은 유코의 억울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웃기 시작했다.
관객의 웃음이 꼭 잘못되었거나 인정할 수 없는 상황도 아닌데 조금은 그들이 야속했다.
유코의 사연에 정말 조금이라도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건가?
관객들 누구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유코처럼 남들과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으로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받고 억울했던 일이 하나도 없었단 말인가?
유코의 마음이 되어 가슴이 아팠고 안타까움에 눈물이 그렁거리기까지 했다.

매번 느끼지만 제대로 소통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듯 하다.
유코는 소통의 방법이 달랐을 뿐이고, 주변의 그들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을 분만아니라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그저 이상하게 내몰았다.
우리는 다르다는 것에 불편해하고 불편함때문에 차라리 좀 더 쉬운 공통점, 비슷한 점에 큰 의미를 두는지도 모르겠다.

공연이 끝나고 일본 원작자 쓰시다 히데오씨와의 시간이 주어졌다.
쓰시다 히데오씨와 관객들의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감하고 이해하며 가슴이 아픈 나 자신일지도 모르는 유코지만, 거꾸로 지나치게 솔직하고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그녀 때문에 함께 한 사람들이 상처받지는 않았을까?
오히려 그녀의 다름이 자신도 모르게 주변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들의 배려가 되려 그들에게 상처와 억울함으로 되돌아 간 건 아니었는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며,
유코는 그런 반복되는 과정에서 조금씩 발전할 것이라고 말하는 쓰시다 히데오씨 얘기에, 나 역시 어쩔수 없는 부족하고 미숙한 반복속에서 그냥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으리라 또 앞으로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연기 좋고, 시선한 작품

...아, 왠지 억울해, 씨...
뭐?
왜 이러지? 가끔씩 너무 억울해서 속상한 때가 있어.
억울하다니 왜?
모르겠어. 왜 이렇게 억울하지? 그런데 억울해. 너무 너무 억울해.
-극중에서

유코는 억울하다. 타인과의 소통을 시도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이상한'사람으로 낙인 찍힌 그녀는 결국 더 이상의 소통을 거부한다. 이제 남은 것은 한 없는 억울함뿐. 그 억울함은 결국 그녀 안에 체화되기 이른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한때는 누군가에게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뜻이야? 지금 이렇게 말한 거야?'를 외쳐대기도 했다. 그러다 그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지친 기색을 보일라 치면, '알겠어. 알겠다고'하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렇게 '진짜'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우리의 이야기는 '진짜'의 주변만 맴돌았다.

연극 속 유코는 억울하다. 다카다 역시 억울하다. 각자의 소통 방식에 따라 만날 수 없는 지점을 달리는 연극 속 그들 모두는 억울하다.

연극은 이 억울한 이야기를 자못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았다. 소통 방식의 차이로 빚어진 유코의 다소 병적인 행동을 보고 있다 보면 웃음 뒤로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씁쓸함이 남는다. 유코와 다나카 역의 두 배우 연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꼭 한번 봐야할 작품이다.

세 번의 결혼 실패 후 그림동화 작가와 네번째 결혼하게 된 요코.....

그녀는 사람들이 늘 자신을 이상하다고 여긴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그런 자신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달래줄 수 있다는 생각에 그와 결혼한다.
그러나, 역시 남다른 그녀의 언행은 사람들에게 당혹스러움과 불쾌감조차 주게 되고
소중히 지키고자 했던 결혼 역시 깨지게 된다.

그녀는 과연 억울한가? 이지하가 무대에서 살려낸 요코의 모습은
늘 자신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전긍긍 신경증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가진 우아함이나 진지함은 사람들에게 집착이나 허세로 보여지며....
결국 사람들은 겉으로는 그녀를 이해한다고 하지만 마침내 그녀를 내치게 되는 것이다.

웃는 듯 우는 듯한 표정으로 요코를 연기한 이지하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극 초반이 다소 늘어지는 듯 지루한 감이 있어서 집중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이해의 문제에 대해 한번 돌아보게 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