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과 이음동의어가 되어버린 셰익스피어, 그의 작품은 심심치 않게 무대에 오른다. 어떠한 이야기인지 번연히 알면서도 많은 관객들이 그의 작품을 관람한다. 수백 년 전의 가치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작품을 고전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가치가 현재까지 미치는, 세대를 넘어서도 여전히 감응을 일으키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메신저의 창!
이와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별반 관람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드라마 재방송쯤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솔직히 고백한다. 연극 <달아 달아>를 관람하기 전, 사료(史料)에 충실한, 하여 한문학 ‘온달전’을 수업 받는 기분으로 지켜봐야 되는 건 아닐까, 지레 지루해졌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배우들의 눈빛은 강렬했다. 소극장에 익숙한 동선(動線)이 아니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비행 신에서 보여준 드넓음이 무대로 옮겨진 듯하다. 연극 무대의 공간적 한계를 춤과 무술 시범으로 서서히 넓혔기에 가능했다. 액션영화의 스피드와 블랙코미디의 해학도 담겨 있다. 그리고 아기자기한 로멘스까지!
어렸을 때 집에 손님이 방문하면 손님의 짐부터 눈으로 확인하곤 했다. 과자선물세트를 발견한 날은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인사했다. 우선 바삭바삭한 스낵을 입에 넣으며 과자 점검에 나서다 초콜릿을 손에 쥐었다. 사르르 녹아드는 꿈결 같은 이 맛. 온달과 평강 공주의 사랑에서도 이런 맛이 감지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만 애달픈 사랑이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각색을 통한 설정이었으나 지극히 짧은 원작을 훼손하진 않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는 충분히 암시할 수 있게 장치하였고 원작을 모태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볼거리가 풍성해졌다. 한 나라의 왕이기 전에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인 평원왕의 안타까움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변할 줄 모르는 부정을 느낄 수 있었고, 며느리를 들이고 싶어 ‘헌팅’을 일러주기도 하는 온달 모의 심정에 동감하기도 했다.
정치를 풍자하는, 권력에 얽매여 있는 대신들은 계략에 씁쓸하기도 했으나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 위한 필요 역할임을, 그래야 온달과 평강 공주의 러브 스토리가 아름다울 수 있음을 받아들이며 악역에 충실한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중간중간에 삽입된 상황극은 시간의 흐름에 유연할 수 있었음과 동시에 관객의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연극 <달아 달아>는 우리 문화의 재생산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묻혀 있어 보석인 줄 모르는 작품들을 광낼 수 있다면 한국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온달과 평강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성차별일 수 있다면 평강과 온달도 좋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