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극단 <작은 신화>의 작품은 연극을 제대로 봤다는 뿌듯함을 남깁니다.
대학로에 갈때마다 보는 문구인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다> 라는 의미처럼
연극 한편이 문제의식을 제시하고 사람들의 의식을 고무시키며 나아가 어떠한 의미로든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문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매우 좋은 연극이었습니다.

<변기>는 보통 <배설>의 의미지로 많이 인용되는데, 개인과 국가의 이기주의, 자본주의의 양면성과
경직되고 나태한 관료주의 등으로 매우 다각적 측면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었습니다.

주제가 탈북인들의 실상과 그 문제점을 다루고 있는 만큼 이야기가 자칫 지루하게 흘러 갈 수 있었으나, 낯익은 배우분들의 능청스런 연기력으로 잠시 웃음으로 쉴 수 있는 휴식도 있었고 전체적으로 그렇게 지루하지 않고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장면이 많아서 그런지 재미있게 관극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사람들이 상복을 입으며 빨간 종이를 내보이며 화장실을 배정받는 장면이었는데,
문지기로 보이는 듯한 노인은 화장실이 급하다는 주인공에게 "자네는 마렵지 않지?" "마렵지 않기 때문에 절박하지 않은 거야"라고 하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주영 박사는 탈북청소년들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토일릿보트>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됩니다.

탈북을 할때 미국이 삐라처럼 보내온 <토일릿보트>를 타고 탈북을 하였으나, 실은 그 <토일릿보트>로 인해 많은 탈북인들은 수장시키고 북한의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음모였다는 얘기를 듣고 부터는 <토일릿보트> 에 대한 진위를 파헤치고 고발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한박사의 <토일릿보트>를 파헤치려는 의지가 오로지 학자주의로 인한 <토일릿보트> 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적 문제의 고발인지!

아니면 정말 탈북청소년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들을 위하는 순수한 마음 그 자체인지를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타인의 문제를 얼마만큼 구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게기가 되었습니다.

<한결>과 같은 사람들이 더이상 같은 문제로 고통을 겪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라어 봅니다.

잘봤습니다

극 중후반 남한산 토일릿을 타고 극속으로 정신없이 빨려들어갔습니다. 별생각없이 왔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 관극경험하고갑니다. 좋은 연극인것같습니다.

소재는 참신하나, 긴 러닝타임과 마치 기사를 복사, 붙여넣기한 듯한 대사가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수영장씬등 억지로 끼워넣은 듯한 개그 요소도 불편했구요(풍자의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극의 흐름을 깼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조금만 다듬으면 더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연극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무대에는 세 명의 탈북청소년이 등장하지만 작품에서 그들을 호명하는 방식은 조금 잔인하다. 세 명 모두 ‘한결’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얼굴도 성별도 성격도 경험도 모두 다른데 같은 이름으로만 호명되는 것이다. 세 명 각자가 각기 다른 무의식적 이야기로 된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들처럼 보이는데도, 누군가 무대에서 ‘한결’이라고 부를 때마다 셋 중 정확히 누구를 부르는지 모르게 된다.


주영은 한결들과 상담을 하고 일권은 그 상담을 토대로 작성된 주영의 보고서를 검토한다. 주영과 한결들의 상담내용, 일권과 주영의 대화가 작품전체를 지탱하는 두 축이다. 상담이 시작된다. 주영은 심리치유라는 명목으로 한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지어보라고 한결에게 요구한다. 한편의 잔혹 동화 같은 한결의 이야기 짓기가 시작되면 마치 그 무의식적인 이야기의 이면에는 이런 것이 있다는 듯 ‘미국에서 온 삐라’로 인해 결심한 탈북경험이 등장한다.


어떻게 600개의 변기로 된 삐라가 미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확신하는지 묻는 주영의 질문에 한결은 거기에 사용설명서가 첨부돼있었다고 대답하는 듯하다. 삐라는 라디오가 아닌 600개의 변기라고 한다. 심지어 변기의 재질은 특수한 소재로서 ‘병아리 재질’이란다. 이쯤 되면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미국 장난감 회사의 선박이 바다 위에 컨테이너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전 세계의 해변가로 고무오리가 떠내려갔고 그 이후로 고무오리는 평화의 상징처럼 여겨지게 되었다던 일화가 떠오른다. 이를 기념해서 한국에서도 2014년 어느 외국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석촌호수에 거대한 러버덕이 전시되었다. 즉 특수한 소재인 병아리 재질로 만들어진 변기 삐라는 평화를 상징하는 매개인 셈이다.


무대가 재현하는 탈북경험은 사실적이라기보다는 거의 우스꽝스러운 가상에 가깝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삐라이자, 변기이자, 병아리 재질은 바퀴달린 스툴의자이다. 스툴의자에 몸을 기대고 바다 한가운데를 연상시키는 음향에 맞춰 배우들은 바다를 건너는 흉내를 낸다. 조명이 4인용 보트를 무대 바닥에 그려 넣는다. 변기로 강을 건너는 것보다 보트로 건너는 편이 훨씬 일이 수월해질 텐데도 탈북을 감행한 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변기를 놓지 않는다. 그 변기로 건너야만 남한에서 탈북을 인정해준다는 말 때문이다. 이 모든 광경을 액자구성처럼 주영와 일권이 검열하듯 지켜보고 있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탈북경험의 재현이 탈북청소년들이 겪어야 했던 실제가 아니라 주영의 시선으로 한번 걸러진 보고내용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영과 일권은 한결들의 경험을 지켜보는 바깥에 계속해서 머무른다. 3막 무렵, 파도를 넘는 장면을 다시 연상시키듯 이번에는 남한에서 고층빌딩의 고도에 매달려 빌딩풍에 맞서는 기괴한 장면이 연출된다. 이 고층빌딩에는 진짜 남한산 변기가 있다. 가장 높은 층에 있는 남한산 변기를 차지하기 위해 빌딩풍에 맞서야 하는 이 장면은 주영의 시선으로 본다면 탈북청소년들이 겪어야 했던 심리적 불안감을 상징했을 테지만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어떤 상징이 아니라 정말 문자 그대로, 한국에서 누가 타인과 경쟁을 하기 위해 실제로 빌딩 벽에 매달려있겠는가? 이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바다를 건넜다’는 탈북의 이미지와는 다른 듯하다.─ 그 의미는 보편적이었기 때문에─이 장면이 한국의 현실을 풍자한 것이 아니라, 탈북청소년들이 겪어야 했던 구체적인 현실이라고?─ 작품은 이전에 그럴 수 있겠다고 막연히 수긍하고 지나쳐버린 것들에 대해 한 번 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요컨대 분명 탈북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지만, 이 빌딩풍 광경이 정말 그들에 대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탈북과정에서 심리적 외상이 있을 것이다’, ‘탈북청소년들은 이런 식으로 한국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피상적 인식과 기정사실화에 불과한지 작품은 되묻는다. 마지막, 남한을 비데로 풍자하는 한결의 과장된 비아냥은 주영이 탈북민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 판단을 완성하기 위한 슬픈 거짓말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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