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훨씬 좋은 극이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작품의 주제와 텍스트 자체가 꽤나 흥미로웠어요 다만 공연의 만듦새와는 별개로 물리적 또는 맥락적으로 폭력이 깃든 씬이 이어질 때 객석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종종 들려 왠지 외딴 섬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네요 ㅜㅜ...... 모두가 아프지 않아도 되는 내일이 오길 바라며

마치 [매드맥스]시리즈나 코맥 맥카시의 소설 [더 로드]에서 만날 법한 세기말 사회상을 배경으로 한 연극 <구름을 타고 가는 소녀들>은 말랑말랑한 제목과는 달리 디스토피아적인 세상 속에서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어요. 밟히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더 밟히는 악순환 속에서 밟히기보다는 밟고 살기 위해 양심과 자비는 송두리째 버려야 하는 삶이 주는 냉혹함은 극에 가끔씩 등장하던 웃음을 더 차갑게 느껴지게 합니다.

칼날같이 곤두서있는 극의 흐름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렇게 잡혀와서 먹고 피 뽑히고 먹고 피 뽑히는 무한 반복의 종착지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묶어놨던 올가미를 풀어줘도 머뭇대다 떠나지 못하고 남는 인간의 절망적 선택이 가장 뇌리에 남더라고요. 저런 극단적인 배경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알 수 없는 미래보다는 오늘의 일용할 양식에 더 크게 사로잡히는 경우를 종종 접합니다. 돌아온 바람은 그들을 보며 냉소를 날렸을지. 더 절망했을지. 잘 모르겠어요.&#8203;

나루터처럼 느껴지는 세트는 마치 그들의 삶 자체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빤히 들여다보이는 물처럼 일상이 흘러가지만 그곳을 떠나기 위해선 배가 필요한데 그들에게 있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드럼통 뿐이거든요. 강 건너로 떠나겠다는 용기를 낸다 하더라도 배 없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강을 건너려는 무모함은 그저 헛된 망상입니다. 여러모로 무대에서 풀어가기 어려운 소재였는데~ 배우들의 파워 넘치는 연기 덕분에 집중하며 보게 된 시간이었어요.

마지막에 바람은 자신의 남편과 불륜으로 임신까지 한 맹추를 데리고 떠나지만 그들이 딱히 멀쩡한 공동체로 살아가지는 않았을 거 같습니다. 이미 그런 온유함은 사라진 시대를 헤쳐왔기에 노력했어도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세상이 험해지고 삶이 각박해질수록 ''휴머니즘''이라는 단어는 뜬구름처럼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연극 <구름을 타고 가는 소녀들>은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지고 생각이 많아지게 만든 작품이네요.

<구름을 타고 가는 소녀들>이라는 비현실적인 제목에서 당장 떠오르는 이미지는 시적 허용으로 희망, 행복한 장면이 떠오르지만, 연극에서 보여주는 그녀들이 발을 디딘 현실은 아주 참혹하다.

한때 소녀였던 그녀들은 이름 대신 번개, 버들이, 후뚜루마뚜루, 맹추, 예쁜이 등으로 불리며 인간이길 포기해야만 견딜 수 있는 상황에서 괴물이 되어간다. 그들이 살던 강변은 동요 속 고향과 달리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모래를 삶아 먹어야 하는 지경에 홍수로 온 가족이 죽고 홀로 살아남는 비참한 현실이다. 언뜻 전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당장 전세사기를 비롯해 자살을 하는 일가족 사례는 드문 일이 아니다.

인간을 인간 이하로 취급해야만 살아 남는 상황에서 버들 남편이 의사 가운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은 의료 공백으로 힘 싸움을 벌이는 이익 집단이 된 의료계를 겨냥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감상이다. 이야기 구조를 좀처럼 파악하기 힘든 낯선 방식의 연극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가. 연극 한 편 보는 게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라면 그렇기도 하지만, 뭔가 찝찝한 듯 해석의 여지를 두루 열어놓은 작품은 관습적인 관람을 하지 말라는 의도일 것으로 봤다.

비현실적인 구조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사실 현실에서 보면 더 이상하고 묘하고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너무 많다. 장영란 배우가 부르는 노래가 더욱 처연하다. 한때 구름을 타듯 순수했던 시절의 소녀는 예쁜이의 죽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남은 그들도 곧 화장터 굴뚝을 타고 연기로, 구름으로 피어 오를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저주하며 비가 내린다.*

배우들의 찰진 연기와 연출의 고급진 상상력이 돋보이는 공연입니다.
권지숙 배우의 연기 매력적입니다.

글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