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과 운영을 모두 지금 한국에서는 작품만 만들면 되는 연출가와 작품과 단체 운영을 같이 하는 연출가, 이렇게 두 가지가 있어요. 운영을 같이 하는 연출가라면 제작을 겸한다는 것이겠고, 그렇다면 저는 후자쪽에 속합니다. 연출가는 교육가적인 기능도 해야 되는데, 극단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행정적인 기능과 교육가적인 기능도 겸하면서 내 작품을 만들어 가는 쪽이죠. 연출가가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가에 따라서 작품의 성향이 달라질 수도 있고, 작품의 방향 자체도 결정됩니다. 작품을 통한 사유관, 철학도 좋고 예술관도 좋고, 이들에 부합되는 작품을 선정하는 것도 빠질 수 없는 연출가의 역할이죠.



종합예술의 매력 큰 누나를 따라 명동에 다니면서 음악, 문학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처음부터 연극인이 될 것이다, 연출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문학도, 음악도 다 좋아했는데 연극이 종합예술이라고 얘기들을 하니까 모든 걸 내가 다 가까이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연극을 하게 되었죠. 연극을 한다고 해도 학자가 된다거나,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연극을 하면 배우나 연출 둘 중 하나였으니까, 연기는 하기 싫고(웃음) 자연스럽게 연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끼리 극단처럼 만들어서 하다가 극단 산하에 들어갔고, 학교(서라벌예대)에 들어간 것은 그 이후이지요.



민족연극 기호 정립 형식적으로는 한국의 전통적인 연극 방법을 토대로,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작업, 민족 연극 적립, 민족연극의 기호를 만들겠다는 것이 평생의 큰 화두였습니다.

휴머니즘 연극 연출을 하면서 인본주의의 구현, 휴머니즘이라는 것을 항상 생각합니다. 연극이라는 것은 인간학이고,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해 주고, 그 일부를 보여주고, 시대의 예술이나 철학일 수도 있는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면서 인간이라는 것이 사회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에 연극의 사회적인 효용성, 이것도 연극을 하는데 하나의 방침이에요. 우리의 전통 방법을 통해서 인간애를 구현하고 그러면서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내 연극방법이고 내 연출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의 응용을 기다려 극단 미추에 약 70여 명의 단원들이 있는데 매 작품마다 오디션을 봅니다. 단원들에 대해 다 알긴 하지만, 혹시 선입관을 갖고 있다든가, 그 배우의 잠재된 것을 미쳐 발견하지 못했다든가, 또 본인 스스로 뭔가 모르는 에너지가 어느 순간에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죠. 적어도 수동적이기 보다는 연출력이 있는, 자가발전 할 수 있는, 그런 배우가 좋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는 배우는 매력이 없어요. 시키는 것 이상을 할 때가 기쁨이고 즐거움이겠죠. 물론 작품과 배우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저는 좀 기다리는 편입니다.



인접 예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 애정, 이 모든 것에 대한 열려있는 자세가 연출가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결국 연출가는 인문학적인 바탕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주위에 있는 연출가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보다 훨씬 많이 타 장르를 좋아하고 쫓아다니며 접합니다. 음악작품, 현대 미술, 무용, 컨템퍼러리 아트를 굉장히 즐기고 좋아합니다.

내가 우리 것을 하기 때문에 외국의 것을 더 많이,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국수주의, 그런 건 아니고, 우리나라 전통적인 것 중에서 굉장히 컨템퍼러리 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농담식으로 아직 대표작이 없어 그런 작품을 남기려고 연출한다고 하는데(웃음). 아무래도 데뷔 작품인 <서울 말뚝이>(1974)와 대극장 데뷔작 <한네의 승천>(1975), 그리고 미추 창단공연인 <지킴이>(1987), 또 <오장군의 발톱>(1988)이 기억에 남습니다.

마당놀이라는 장르를 만들었다는 것도 내 연출 작업에서 뺄 수 없는 성과일 수 있겠죠. 당시 마당놀이라는 말이 없었어요. ‘마당극’이라는 말은 있었는데, ‘마당극’하면 탈 쓰고 놀이하는 것, 서양과 동양을 억지로 ‘극’이라는 것으로 갖다 붙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것이 아니면 무어라고 얘기할까 많이 고민하다, 우리의 연극은 ‘놀이’ 정신에 기원이 있기 때문에 마당놀이로 이름을 만들었죠.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했던 작품도 좋았고, 봄페스티벌에서 했던 <카피탈>(‘페스티벌 봄’ 참가작,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의 <카를 마르크스:자본론 제1권>)은 오늘로서 제일 앞서 나가는 연극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후배들을 위한 길 내년에 마당놀이가 30년이 되는데, 체제를 점점 바꿔갈 생각입니다. 새로운 연출, 새로운 연기자가 나와야 하죠. 오래 전부터 인지하고 고민하고 있던 부분입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다른 연출가도 불러오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위해서 충분히 길을 열어줄 열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미추가 워낙 손진책 혼자 북 치고 장구 친다는 이미지가 강해서(웃음) 외부에서도 쉽게 우리 쪽으로 열지 않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후배들이나 새로운 연출가들이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일반 관객들에게 내가 연극을 해서가 아니라, 연극 예술이 참 괜찮은 것이거든요(웃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연극을 통해 좀더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순히 엔터테인먼트로서만이 아니라 그런 것도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도 보고, 좋은 연극을 보라는 것이죠. 우리나라만큼 하루에 몇 백 개의 공연이 오르는 나라가 세계에 몇 안 된단 말이죠. 그런 나라에 살고 있으니 축복 받은 관객들이잖아요. 그 숫자만큼 좋은 연극이 있는가는 다음 문제이고, 그렇기에 좋은 연극을 찾아서 보셨으면 합니다.

연극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지금 많은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이 연예인이라고 그러는데, 단순히 스타 대열에 동참하기 위한 편승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거 잘해서 성공하는 것은 공부 잘해서 성공하는 것 보다 힘들거든요. 지금도 연극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일단 전 말립니다. 꼭 타고난 재주가 있든가, 이거 안 하면 인생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든가, 그랬을 때 하라고요. 왜 연극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자기 확신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목적도, 나름대로 자기관이 교조적이거나 계몽적인 관이 아니더라도 확실할 필요는 있습니다.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어려우면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고 했겠습니까.(웃음)



정리: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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