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퍼즐을 맞춰내는, 이야기꾼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다방면의 요소를 활용해서 하나로 만들어내는 역할이 연출가라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해석적 연출, 창의적 연출, 실험적 연출 등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로 연출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은밀한 의미에서 연출가는 창조자보다는 조합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있는 이야기들을 조합해서 말하는 사람, 세상의 이야기꾼인 거죠.



시옷 발음이 드세서 포기한 배우생활, 조명기사, 그리고 연출 부산의 전형적인 도시 빈민 출신 이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학비가 없어서 대학을 못 가고 방황 할 때 워크샵 단원모집이라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문을 열고 부산의 극단 ‘현장’이라는 곳에서 오디션을 보고 ‘대머리 여가수’의 소방대장 역할로 19세 때 배우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 ‘시옷 발음이 드세다’는 지적을 계속 받다가 결국은 1987년에 조명기사로 전향했죠. 당시에는 아주 잘 나가는 조명기사였습니다. 그리고 2년 넘게 조명기사를 하면서 받은 퇴직금 90만원을 들고 상경해서 서울의 바탕골 소극장에 조명기사로 취직했습니다. 이 시기에 기회를 얻어 1994년 <지상으로부터의 20 미터>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연출가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뙤약볕 이 작품은 지금 이 자리에 저를 있게 해준 작품이죠. 1997년에 집도 날리고 모든 것을 다 잃고 파산 직전에 몰려 있었어요. 빚잔치를 하고 오갈 때 없는 상황에서 1998년 1월에 지금 극단 미추의 손진책 선생님께 찾아갔죠. “연극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더니 선생님이 어떤 작품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시기에 박상륭 소설 ‘뙤약볕’을 하고 싶다고 했죠. 손진책 선생님이 4월에 아리엘 도르프만의 <죽음과 소녀>를 문예회관소극장(현 아르코소극장)에서 하기로 했는데 2주 동안 대관을 했다, 그럼 <뙤약볕> 일주일, <죽음과 소녀>일주일 이렇게 나눠서 올려보자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뙤약볕>을 무대에 올리게 됐고, 이 작품이 같은 해 서울연극제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됐죠. 그리고 한국연극협회에 주는 베스트5 신인연출상, 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을 받았습니다.

<뙤약볕>은 지금 저를 만들어준 토대가 되는 작품이고, 그 때 저를 거두어 주셨던 손진책 선생님의 은혜는 아직도 못 갚고 있습니다. 아직도 손진책 선생님 앞에 가면 기를 못 펴요(웃음). <뙤약볕>외에도 고연옥 작가와 함께했던 고연옥 3부작 시리즈, <웃어라, 무덤아>, <인류최초의 키스>, <발자국 안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기억에 남는 작품들입니다.





아르코소극장 징크스 <웃어라 무덤아>부터 시작된 아르코소극장 징크스가 있습니다. 무대세트를 짓기 전에는 실사 미니어처를 만들면서 수 차례 확인 작업을 거치고 실제 무대를 세우잖아요. 수 십 차례 확인을 거치는데도 이상하게 아르코소극장에만 가면 공연 전 날 세트를 없애는 일을 반복하고 있어요, 꼭 돌발상황이 생깁니다. <웃어라 무덤아>와 <발자국 안에서> 두 작품은 공연 전 날 세트를 없애버렸습니다. 저는 세트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편인데요, 두 작품 모두 무대세트를 세워보니 무대가 꽉 버린 겁니다. 그 전에 수 차례 확인을 했는데도요. 그래서 <웃어라, 무덤아> 같은 경우에는 공연 전날 세트를 없애고, 덧 마루만 한 단씩 깔고 공연을 했죠. 밤새 블로킹을 새로 짰건 물론이고요. 2007년 <발자국 안에서>도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집 세트를 없애고 기둥만 가지고 공연을 했죠. 올 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생각했던 무대설정이 안 나와서 결국 공연 당일 날 아침에 무대를 새로 만들었고요. 그런데 아르코소극장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던 작품으로 상도 많이 받았고, 좋은 평가도 받았습니다.



오늘의 발언대 제 이름으로 올라가게 될 작품들이 지금 현재, 이곳이라고 하는 사회에 던질 수 있는 질문이 되는가, 안 되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적인 작품, 시사성 있는 작품을 선호하는 합니다. 흔히들 동시대성이라고 이야기 합니다만, 세익스피어의 고전을 하더라도 현재 관점에서 고전을 해석하는 관점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어떤 방법으로든 연극이 사회적인 발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가지 원칙 가장 먼저, 서브 텍스트 분석을 치밀하게 합니다. 배우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무대에 보이는 순간에는 그 모든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역할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분석하지 않으면 그 인물이 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서브텍스트 분석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집니다. 그래서 두 번째 원칙이 테이블 리딩을 오래하는 겁니다. 연습의 3분의 1 정도를 테이블 연습으로 진행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치밀한 블로킹을 요구합니다. 동기가 없는 블로킹에 대해서는 용납 못합니다. 네 번째는 공연에 들어가도 매일 연습을 합니다.





나의 연출 스타일 앞서 설명했던 네 가지 원칙이 저의 강점이자 약점입니다. 그래서 가장 최근 작품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는 위 네 가지 원칙을 모두 하지 않았습니다.배우들에게 아웃라인만 던져주고 배우들이 깨우쳐 나가게 유도했습니다. 공연을 지켜보니 여러 가지 득도 있었지만 실도 있더군요. 하나의 작품을 끝내고 나면, 바로 지워버리는 게 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 지우기 직전에 이 작품은 어떤 반응이 나왔다, 어떤 결과나 나왔나 하는 정리 정돈 시간을 갖습니다.

관객들의 반응은 가장 많이 생각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제가 연출한 공연을 객석에서 보는 건 참 힘든 일이지만, 관객들과 제 작품이 소통이 되는지 안 되는지 미세한 반응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인터미션이 있는 공연은 작품과 관객들의 소통 정도를 화장실에 가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화장실 모니터인 거죠. 관객들의 솔직한 반응을 통해서 다음 작품은 단점을 싹 지우고, 장점만을 가져가려고 노력합니다.





<주공행장>
2년 전에 본 극단 미추의 손진책 선생님 작품입니다. ‘아, 역시 손진책 선생님 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작품입니다. 빈 무대를 지향하고 배우가 중심이 되고, 철학적 이야기가 담긴 것이 제가 추구하는 점과 많이 닮아있어서 좋았습니다, 큰 충격을 준 작품이라고 할까요? 출연했던 윤문식 배우에게도 완전히 반해버렸었죠.
<야끼니꾸 드래곤> 일년 전, 일본 신국립극단과 예술의 전당 공동제작했던 작품도 정말 감동적인 연극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서 기쁘면 기쁘고, 화가 나면 나고, 슬프면 슬픈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신파의 장점을 깨달았습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레프도진 같은 (러시아 연출가) 연출가가 되고 싶습니다. 진솔함이 보이는 연극, 거짓말 하지 않는 연극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일시적인 유행이 되지 않는, 연기자가 중심이 되는, 연기자가 모든 것을 보여주는 진실된 연극을 하고 싶습니다.




솔직하게 반응하라
경제 논리로 본다면, 연출자는 공급자입니다. 수요자인 관객은 선택하는 겁니다. 관객에게 무언가를 바란다는 건 있을 수 없지만 우리나라 관객들이 솔직하게 반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우리 관객들은 정말 재미없는 공연이라고 해도 극이 끝날 때까지 끝까지 앉아있습니다. 재미가 없으면 박차고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내 돈 내고 연극 보러 왔는데 이게 뭐야 마음에 안 들어” 하고 가버리시면 됩니다. 관객들에게 어렵더라도 이해해주시고,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건 만드는 사람들의 오만입니다. 솔직하게 반응하십시오, 재미 없으면 없다고, 감동 받았으면 받았다고, 못 견딜 정도로 재미가 없으면 중간에 나가십시오. 그래야 우리 만드는 사람들도 각성할 수 있습니다.




정리: 강윤희 (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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