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 배를 이끄는 선장과 같아요. 배가 산으로 가든, 강으로 가든, 뭍으로 가든 배를 책임지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이끄는 사람이 연출가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고 리드하는 역할을 하지요.
작가 예술적으로는 작품을 읽어내고 철학을 담아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삶과 의미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을 담아내는 작가하고 하면 되겠네요. 대단한 철학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난 돈을 많이 벌겠어, 이것도 인생철학이고 의를 지키겠다고 하는 것도 철학이거든요. 자신이 보는 인간 세상을 스텝과 배우들을 통해 담아내야 합니다. 그 점에서 연출가는 작가라고 생각해요.




배우에서 연출가로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영화감독이 꿈이었어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배우가 되고 싶었고요. 배우 생활을 시작했는데, 어렸을 때 꿈이어서 그랬는지 내가 직접 쓰고, 연출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같으면 이렇게 연출할텐데, 이렇게 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은 배우라면 어느 정도 있을 거에요. 그런데 저는 남들보다 좀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내 스타일로, 내 방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배우 생활 10년 정도를 하면서 중간 중간 연출에 도전했습니다. 아마추어적이지만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독일소설을 가지고 학생들과 독일문화원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작품부터 본격적으로 연출가다운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한여름 밤의 꿈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지만 그 중 <한여름 밤의 꿈> <緣 카르마> 최근 <페르귄트>를 들 수 있습니다. 특히 <한여름 밤의 꿈>은 서양 고전을 우리의 전통과 접목을 시도했단 점에서 저에겐 특별합니다. 중국에는 경극이 있고, 일본에는 가부키가 있는데 우리는 탈춤이나 판소리를 빼놓고는 사실 확고하게 자리 잡은 형식이 없어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서양 고전과 우리의 전통을 엮어 완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내용이 보편적이잖아요. 이 작품을 가지고 전통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겠다는 기대감과 흥분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의 전통이 굉장히 독창적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양식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해외 초청 공연을 다니면서 우리나라 관객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각광을 받을 수 있었고요.





1200명의 기립박수 단원들과 함께 고생하고 행복한 순간들은 정말 많습니다. 제일 기뻤을 때는 카이로국제연극제에서 <緣 카르마>로 대상을 받상을 받았을 때 같네요. 처음엔 실감도 나지 않았어요. 오페라 극장에서 앙코르 공연을 하고 1200명이 기립박수가 터졌을 때야 실감이 나더군요. 행복하고 어리둥절 했지요
그때 행복한 순간만 있던 건 아닙니다. 단원의 어린 막내가 갑자기 돌연사로 세상을 떠나 그곳에서 제사를 지냈었죠. 힘든 일과 기쁜 일이 너무 비일비재해요. 그래서 힘들다가도 웃고 떠들고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연극은 등 따뜻하고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면 할 수가 없어요. 조금 바람이 있다면 연극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르바이트 때문에 연습에 방해가 될 정도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프로페셔널 배우들이니까요. 체계적인 지원이 생겨 많은 사람들이 순수하게 연극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합니다.



고전, 그리고 직관과 감성 저는 고전을 좋아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 인간본질의 변하지 않는 원형을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보다는 직관적이고 감성적으로 작품을 선택하죠. 사랑을 논리로 하지 않는 것처럼, 작품도 그렇거든요. 남자가 여인을 사랑하는 것처럼 한 눈에 들어와야 하며 이야기와 테마, 스토리가 사랑처럼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전 중에서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무대에 올리기에 여러 모로 매력적이에요. 일단 사람이 많이 나오고, 그래서 드라마가 다양합니다. 인간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고민을 담고 있어서 참 재미있어요. 요즘엔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요. ‘햄릿’에도 인간과 사회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게 요즘 이야기 하는 권력, 보수와 진보에 대해 첨예하게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아우르고 있거든요.

타 장르 도전 연극 이외에 타 장르에도 욕심도 있습니다. 특히 음악과 무용은 제 연극에 있어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무용 <발레 심청>, 오페라 <천생연분>을 연출을 해보니 연극과 많은 차이를 느끼진 못했어요. 오페라는 대사와 드라마를 가수들이 노래 하면서 연기를 하고, 무용은 말 할 것을 몸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니까요.





풀어내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초창기에는 저도 날카롭고 독선적이면서 예민한 연출가였어요. 하지만 점점 사람들은 만나고 알아가면서 부드러워지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가가 아닐까 합니다.
현장에서 재미있어야 합니다. 재미란 게, 무언가를 알아가고 성취를 해나가는 데서 찾을 수 있더군요. 비극적인 재미든, 희극적인 재미든, 여러 고민들 중 하나라도 풀리는 성취감이 필요한 것이죠. 열 개의 어려운 숙제를 짊어지고 가다가 하나가 풀리면 그 순간 얼마나 재미 있습니까. 함께 하는 배우들은 저와 작업하며 여러 가지 반응을 보여요. 저와 함께 재미있어 할 때도 있고, 끝까지 힘들어할 때도 있고, 끝나고 나서야 재미있어 하는 경우도 있어요. 몇 년이 지나야 재미있구나 하는 사람도 있지요(웃음).




강한 스타일 강점과 약점이 어쩌면 하나일 것 같네요. 전 미술과 음악, 움직임, 새로운 형식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스타일리쉬한 무대에 중점을 많이 둡니다. 저만의 스타일, 극단 여행자의 스타일이 굉장히 강하다는 것이죠. 하지만 스타일이 강한 만큼 내용이 강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젊기 때문에 인간과 삶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더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해요.
연극예술은 경험인 것 같아요. 단점이라기 보단, 앞으로 풀어나갈 숙제인데 인간과 사화, 삶에 대해 더 많은 깊이와 의미들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삶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문제재기를 하고 싶어요.




가장 최근에는 아크람 칸과 줄리엣 비노쉬의를 인상 깊게 봤어요.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철학적으로 세련되게 풀었더군요. 공연을 많이 보는 편이었는데 극단에 올라가는 작품이 많다 보니 최근에는 많이 보지 못했어요. 뮤지컬로 재미있게 본 작품은 <레미제라블>과 <시카고> <빌리 엘리어트> 등입니다.



극단 여행자가 좋은 연극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인간과 사회와 삶, 우리의 전통을 여행자만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10년 후엔 어느 나라 사막에서 연극을 하고 있거나, 아마존 밀림에서 연극을 하고 있거나, 아님 도심 한복판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웃음).

다양한 작품을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상업적으로 웰메이드한 작품들도 좋아해주시고, 그러다 작가주의적인 작품도 봐주시고요. 친구들 중에서도 잘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는 독특한 친구가 있잖아요. 아, 저렇게도 세상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구나, 이런 시선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심지어 전위와 실험연극도 보시고 새로움을 느끼시고요. 항상 무대를 논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건 가슴으로 느끼기도 하죠. 감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작품에 ‘이 작품 논리가 뭐야’라고 하기 보단 인간과 사회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말한다고 봐주시면 됩니다. 항상 똑 같은 것만 먹을 순 없잖아요. 새로운 시도가 있어야 연극이 발전하고 관객들은 다양한 무대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리 : 송지혜(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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