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자 혹은 관리자 작품의 관리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연출 하면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가지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지시 내리는 제왕적 형태의 포지션을 많이 생각 합니다. 물론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저는 오히려 많은 공연 요소들을 교통 정리를 하는 역이 크다고 생각해요. 공연에서 모든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바는 똑같습니다. 공연이 잘 되는 것이죠. 공연이 잘 되기 위해서는 의견이 모아 져야 합니다. 때론 이걸 취하고 저걸 버려야 때도 있고, 어떤 요소는 서로 충돌하기도 해요. 다양한 충돌과 혼란을 일관성 있게 정리해서 공통의 목표인 곳으로 잘 끌고 가는 중재자, 이런 게 더 연출의 몫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배우에서 연출로 대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으로 배우를 하다 연출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있었어요. 95년 즈음, 처음으로 동아리에서 연극을 만들어 연극제에 나갔어요. 그 당시 주인공을 맡았는데 참 열심히 했고, 본선에도 올랐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9개 팀 중 꼴찌를 했어요. 대학 연극제니까 심사평을 직접 들었는데 작품은 다 좋은데 한 배우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평을 들었어요. 이 말이 가슴에 꽂혔지요. 그 때부터 내가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공연이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4년 후에 이번엔 연출로서 똑 같은 대회에 나갔죠. 거기에서 1등을 하고 연출상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연출을 시작했고, 연극 <아트>로 첫 상업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아트>는 우연히 작품을 알게 돼서 라이선스를 따보려고 하다 일개 대학원생이라 거절을 당했죠. 그래서 이지나 선생님이 초연을 하실 때 전 조연출을 하며 인연을 맺었어요. 초연 때 이후에 라이선스가 다른 기획사로 넘어가면서 제가 쓴 대본을 제안했고, 4년 동안 그 작품을 했죠.




인물이 뚜렷한 작품이 좋다 현실적으로 흥행성이 있는가가 크죠(웃음). 할 수 있다면 인물이 부각되는 작품을 좋아해요. 등장인물의 성격, 한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고 뚜렷한 작품. 특히 <썸걸즈>에 등장한 여자들처럼, 텍스트엔 잘 드러나진 않지만 오롯이 꺼내어 볼 수 있는 사람의 숨겨놓은 순간들, 심정들, 경험들이 담겨 있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논리적인 설득 애쓰는 건 하나 있습니다. 절대로 싸우지 말 것. 내가 포기하더라도 싸우지 말 것. 단 뭔가를 얻거나 끌고 가기 위해 최대한 설득을 합니다. 설득하려면 논리적이어야 하고, 기분이 나빠도 웃어야 할 때도 많지요. 논리적으로 설득해서 배우와 스탭을 모시고 가려고 노력을 해요. 설득이 안 되면 포기합니다. 그런데 포기가 아주 늦는 편이에요. 그런데도 할 땐 합니다. 지금까진 많진 않았는데 가끔 있더군요.



균형&연기 항상 균형과 조화를 맞추려고 해요. 예를 들면 뮤지컬은 음악과 드라마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하거든요. 배역에도, 연기 패턴에도, 조명의 강도에도 내가 생각하는 최적의 밸런스를 찾습니다. 연극과 뮤지컬 양쪽을 연출하고, 제 취미나 세대가 영상세대에 가깝다는 것, 이런 것들이 균형감각을 키워주는 것 같아요.
연기에 대해 오래 고민을 해서 그런지 배우들과 연기 자체에 대해 이야기 하는 데는 뚜렷함이 있습니다. 연기자가 연기를 잘 하게끔 하는 데에 욕심이 있거든요.

강점은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균형을 찾다 보면 애매해지고, 연기에 쫓기다 보면 다른 것을 포기 하는 것도 있고.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죠. 요즘 느끼는 가장 큰 약점은 제가 게으르다는 것이에요. 작업을 이성적으로 하려고 애는 많이 쓴는데 직관적인 편이에요. 그 직관이 잘 될 때는 좋지만 잘 먹히지 않을 때면 망하는 거죠(웃음). 연출이 업무량이 엄청나서 정해진 시간에 마치려면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까진 신으로, 흥으로 왔다고 할 수 있어요. 앞으론 그런 게 없어도 연출을 할 수 있도록 좀 더 자기 관리와 부지런함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캬바레 뮤지컬 <카바레>를 인상 깊게 봤었어요. 99년 즈음에 미국에서 샘 맨더스 연출이 했던 버전으로 봤는데 지금까지 본 뮤지컬, 혹은 연극 중에서 해보고 싶고 담고 싶은 작품이었습니다. 첫째는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두터웠어요. 사랑, 우정 등이 다 들어가 있는, 소설로 치면 액션과 멜로가 다 포함된 장편 대하드라마를 본 것 같았죠. 공연의 규모가 아니라 내용의 규모가 상당히 컸고 그 큰 내용이 정해진 러닝타임 안에서 버릴 것 없이 연출되고 공연 된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연출은 스마트 하면서도 장난스럽고, 시니컬 하면서도 진지했고요. 그런 면들이 닮고 싶고 기분 좋게 다가온 작품이었어요.

아트&썸걸즈 제가 한 작품 중에는 <아트>와 <썸걸즈>를 꼽고 싶습니다. <아트>는 텍스트 베이스가 워낙 좋아서 제가 한 일은 오롯이 한국적인 상황과 정서를 살린 것이라면, <썸걸즈>는 뺄 것은 빼고 더할 건 더하는 작업이 이어졌죠. 뚜껑을 열었을 때 만족할만한 결과물이 나온 것 같습니다.




사실 별로 없어요(웃음). 전 관객들 볼 때가 제일 즐거워요. 지금도 별 일 없으면 매일 공연장에 나가지만 <아트> 할 때는 매일 공연장에 나갔습니다. 그때는 사람 손이 모자라서 공연이 끝나면 문도 열어주면서 인사도 했거든요. 나오는 관객들이 뭔가 얻어가는 듯한 눈빛이나 표정들이 인상 깊었어요.






공연을 잘 못 봅니다(웃음). 다른 공연을 할 땐 저도 공연을 하니까요. 공연을 보러 가려면 내 공연을 빼 놓아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매일 공연장에 가니까 특히 보기가 힘들어요. 요즘은 공연 보는 게 두렵기도 해요. 나쁜 공연을 보면 그 자체로 힘들고, 좋은 공연을 보면 배가 아파서 힘들고(웃음).



원래 목표 같은 건 없었어요. 하지만 작품을 하며 상처도 받고, 그러면서 욕심도 생기더군요. 지금은 ‘내용’의 스케일이 큰 작품을 내 마음에 들게 연출을 한 번 할 수 있으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관객들이 정말 관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순수한 의미의 관객이 몇 퍼센트나 될까 싶을 때가 많거든요. 어떤 때는 객석에 평론가들만 와있거나, 어떤 때는 학교에서 시켜서 보기 싫은데 와있는 느낌을 받거든요. 때론 팬클럽만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영화는 말 그대로 즐기러 가서 거기서 즐거움을 얻거나 실망하기도 하지만 공연은 순수한 의미의 관객이 아니라 관계 있는 포지션에서 접하려고 하는 느낌이 들어요. 관객층이 얇아서 생기는 현상 같은데, 어떤 공연은 영화 이상으로 쉽게 소비할 수 있고, 어떤 공연은 내 인생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관객으로 극장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정리: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 플레이DB www.play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