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여자' 스토리의 원조, <십이야>

"사랑하는 나의 님이여 어디를 가시나요? 발길을 멈추고 진정한 사랑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세요. 높게도 낮게도 부를 수 있는 사랑의 노래를."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 <성균관 스캔들>의 박민영, <미남이시네요>의 박신혜의 공통점은? 바로 각 드라마에서 남장여자를 연기했다는 것. 그런데 이 남장여자 캐릭터는 셰익스피어가 1599년경 발표한 <십이야>에 먼저 등장했다. 셰익스피어는 이 희곡에서 남장여자와 쌍둥이남매라는 소재를 활용해 오늘날의 여느 드라마 못지 않게 복잡하고 유쾌한 삼각관계를 펼친다.

쌍둥이 남매 세바스찬과 비올라는 표류 끝에 서로 떨어져 낯선 땅에 도착한다. 남장을 하고 올시노 공작의 하인이 된 비올라는 공작을 짝사랑하게 되고, 공작이 사랑하는 올리비아는 비올라가 남자인 줄 알고 그녀를 사모한다. 그런데 마침 비올라의 쌍둥이 남매 세바스찬이 등장하자, 올리비아는 비올라가 아닌 세바스찬에게 청혼을 하게 된다. 결국 두 쌍의 행복한 커플이 탄생하며 끝나는 이 희곡은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오직 '사랑'에 초점을 두고 있다.

헬레나 본햄 카터·리차드 그랜트가 출연한 영화 <십이야>(1998년)

극단 숲은 해외명작시리즈의 열 두 번째 작품으로 <십이야>를 무대에 올렸다. 간결하고 모던한 무대, 라이브 밴드의 음악이 만나 풋풋한 사랑을 재현한다. 공연은 23일까지 대학로 스타시티 예술공간 SM에서 볼 수 있다.

‘살’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면, <베니스의 상인>

"약속대로 1파운드의 살을 가져가되, 피는 단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중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은 사랑과 자비, 복수 등 인간의 다양한 감정에 대한 통찰을 담아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이 희곡의 주인공은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로, 그는 사랑하는 여인 포샤에게 청혼하러 가는 친구 바사니오를 위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자신의 살 1파운드를 담보로 돈을 빌린다. 그런데 이 돈을 여비 삼아 떠난 바사니오가 돌아오지 않자 그는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이 때 남장을 하고 돌아온 포샤가 재판관이 되어 기지 넘치는 판결을 내려 안토니오를 위기에서 구하고, 샤일록을 제외한 모든 주인공들은 행복을 되찾게 된다.

특히 셰익스피어는 이 희곡에서 당시 냉혹하고 욕심 많은 인종으로 취급받던 유대인을 좀 더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멸시당하던 샤일록의 분노와 그가 재산과 딸을 모두 잃게 된 후 느끼는 비참한 감정은 사회적 악인으로 간주되던 유대인들의 애환을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샤일록의 비극성은 알 파치노·제레미 아이언스 등이 출연했던 영화 <베니스의 상인>(2005년)에도 생생히 그려졌다.

<야키니쿠 드래곤>의 정의신 연출은 이 작품을 각색해 <노래하는 샤일록>이라는 제목으로 4월 5일부터 20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그는 운하가 흐르는 무대 위로 샤일록과 안토니오·포샤 등을 불러내 그들의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펼쳐 보일 예정이다.

나도 이 숲에 가고 싶다, <한여름밤의 꿈>

"광인이나 연인이나 시인은 모두 상상력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는 사람들이라오"

변심한 연인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마법의 물약이 있다면? 셰익스피어가 남긴 희곡 중 가장 유명한 작품 <한여름밤의 꿈>은 서로 얽히고 얽힌 애정전선에 놓인 네 남녀가 신비로운 마법의 숲에서 보내는 한여름밤의 이야기를 담았다. 요정과 인간, 꿈과 현실이 뒤섞인 세계를 그린 이 작품은 그간 수많은 영화와 연극, 드라마 등에서 다뤄져 왔다.

이 희극의 주인공은 젊은 연인 허미아와 라이샌더, 그리고 허미아의 정혼자인 드미트리우스와 그를 맹렬히 사랑하는 헬레나다.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로부터 도망쳐 마법의 숲에 당도한 허미아·라이샌더와 이들을 뒤쫓아온 드미트리우스·헬레나는 우여곡절 끝에 요정의 도움으로 합동결혼식을 치르게 된다. 네 남녀의 사각관계와 함께 오베론 왕과 요정들의 여왕이 벌이는 소소한 복수극이 맞물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연극 <워 호스>의 연출가 톰 모리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형극단 '핸드스프릿 퍼펫 컴퍼니'와 손잡고 지난해 3월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당시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낸 이 작품은 내달 4월 26일부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국내 관객들을 만난다. 아프리카의 전통문화와 명연출가 톰 모리스의 상상력이 만나 어떤 무대를 빚어낼지 기대를 모은다.

'차도녀'를 길들이는 현명한 방법은? <말괄량이 길들이기>

"이제 보니 당신은 참으로 상냥해. 소문에는 억척스럽고 뚱하고 무뚝뚝하다는데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야. 알고 보니 쾌활하고 명랑하며 대단히 예의 바르고, 게다가 말씨는 얌전해. 더구나 봄철의 꽃처럼 예쁘지."

고집불통에 소문난 말괄량이, 사납고 수다스러운 여자를 아내로 삼는 방법은 무엇일까.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제목 그대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괄량이 같은 여자를 다스려 정숙한 아내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희곡의 남자주인공 베트루치오는 파두아의 부자 뱁티스터의 맏딸 카트리나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온갖 변덕과 기행으로 미치광이처럼 굴어 카트리나를 꼼짝 못하게 만든다.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 그는 누구의 아내가 가장 얌전한지 시험해보는 친구들과의 내기에서 이겨 파두아의 유명인사가 되기까지 한다. 기 센 카트리나가 얌전한 여자로 탈바꿈하기까지의 시끌벅적한 소동이 웃음을 자아낸다.


<키스 미 케이트>
1940년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희곡은 1948년 브로드웨이에서 <키스 미 케이트>라는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이혼 1주년을 맞은 뮤지컬 제작자와 여배우가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무대에 올리는 과정에서 다시 사랑에 빠진다는 극중극 형식의 뮤지컬 <키스 미 케이트>는 2000년 토니상 5개 부문을 석권하며 큰 인기를 끌었고, 국내에서는 최정원·남경주·아이비 등의 출연 아래 2010년 공연됐다.

아, 남자의 어리석음이여! <헛소동>

"질투로 뿔이 돋친 남편 같은 것은 안 만났으면 좋겠어요."

<오셀로>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질투극으로 꼽히는 <헛소동>에는 주위 사람의 음모에 속아 약혼녀를 의심하다가 급기야는 파혼까지 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다행히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그는 곧 잘못을 뉘우치는데, 그 과정에서 여자의 순결을 중시하는 남자들의 가부장적 사고방식과 어리석음이 낱낱이 드러나며 통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또 다른 남녀가 커플로 맺어지는 과정도 유쾌한 웃음을 더한다. 1993년 키아누 리브스·엠마 톰슨·덴젤 워싱톤 등이 출연한 동명영화로 소개되기도 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