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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씨어터 1] 블루스퀘어를 통해 본 한국형 뮤지컬 전용관

작성일2012.01.03 조회수12305

2011년 뮤지컬계 이슈를 정리하다 보면 빠지지 않는 항목이 하나 있다. 바로 '뮤지컬 전용극장'이라는 단어다. 2007년 잠실 롯데월드 부지에 지어진 샤롯데시어터, 2008년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관한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이 뮤지컬 전용극장을 표방했다. 그러다가 2011년 디큐브시어터와 블루스퀘어가 생겼고 내년 상반기에는 (가칭)CJ 아트센터가 개관 예정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뮤지컬 전용극장이 다시 화제로 떠오른 이유가 있다면 지난 10년간 뮤지컬 업계의 숙원사업처럼 여겨졌던 전용극장 건립이 두 극장으로 인해 한층 가시화되었고, 게다가 한해 총매출 1위 자리를 놓고 다투고있는 두 작품인 <맘마미아>와 <조로>가 두 전용극장의 개관작들이라는 점에서 2011년은 '뮤지컬 전용극장이 실제로 뮤지컬 시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첫해'로 남을 것이다. 아마도 향후 전용극장이 아니고서 매출의 상위에 랭크되는 작품이 나오기는 점점 어려워질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산업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는 서구의 대표적인 뮤지컬 극장 밀집구역인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앤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조금 다른 의미로 쓰고 있기도 하다. 뮤지컬 전용극장의 사전적 의미는 아마도 ‘연중 내내 뮤지컬만 상연하는 극장’일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곳의 뮤지컬 전용극장에 입성하는 개별 작품은 얼마나 오래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처럼 3~6개월 정도 공연하면 되는 것인가? 다소 뜬금없이 보일 수 있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잠시 미루고 연말 영화관으로 가보도록 하자.

지난주 매우 특별한 영화 한편이 우리 극장가에 등장했다. 다름아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런던 웨스트엔드 초연 25주년을 기념해 로열 앨버트홀에서 열린 특별 공연 실황이다. 이 뮤지컬은 1986년 10월 9일 허 머제스티(Her Majesty) 극장에서 초연된 이래 같은 장소에서 여전히 공연중이다. 이 정도 되면 뮤지컬 전용극장, 아니 ‘오페라의 유령 전용극장’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그곳에서 뮤지컬 전용극장이라는 의미는 ‘특정 장르, 뮤지컬만 연달아 올리는 극장’ - 즉 '오페라하우스의 뮤지컬버전'을 넘어서서 한 공연이 흥행에 성공하면 붙박이처럼 영원히 갈 수도 있는 시스템이 되어있는 극장이라는 뜻이다. 극장주는 공연 투자자이기도 하기에 모처럼 흥행이 잘되는 신작을 관객들에게 아껴서 보여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시스템이 아닌 '장르적인 의미에서만 뮤지컬 전용극장'이라면 극장의 사용자이자 고객인 프러덕션/제작사의 입장에서 현재 공연이 아무리 흥행한다고 해도 그 극장에서 연장은 대부분 불가능하고 다음 작품에 극장을 내줘야 할것이다. 일년에 여러편이 이미 대관되어 있는 라인업 중에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극장이란 마치 홈런을 때린 4번 타자 뒤에 5번타자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환호성 속에 홈베이스를 밟은 4번타자가 다시 타석에 서는 불공정한 룰이 통하는 곳이다. 흥행하는 쇼비즈니스에는 신사의 룰이 필요한게 아니라 오히려 적자생존의 정글에 가까운 듯 하다.

가령 뮤지컬 <42번가>에서 극중극인 ‘프리티 레이디’가 예정보다 빨리 브로드웨이에 입성하게 되는 행운을 갖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앞에서 공연중인 다른 작품이 매출 부진으로 조기 종연이라는 불행을 겪기 때문이다. 뮤지컬 <프로듀서스>에서 사기꾼 제작자 맥스가 엉망으로 만든 작품이라면 개막날이 폐막날이 될 수도 있는 곳이다. 따라서 브로드웨이 입성을 기다리고 전국 각지에서 트라이아웃을 벌이고 있는 작품들 중에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가진 프로덕션이 그 극장을 이어받게 된다. 때로는 무섭고 비인간적이지만 그래서 그곳이 꿈의 공간으로 오랫동안 존재해오는 것이다. 실제로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 한 시즌 전에 모든 극장 스케줄이 날짜별로 빼곡히 나오는 일은 단언컨대 거의 불가능하다. 오히려 지금 올라간 작품이 빨리 내려가기를 기도하면서 시애틀, 보스턴, 시카고 등지에서 그 지역 배우들과 함께 트라이아웃을 하고 있는 작품들이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다. 그러다 운이 좋아 투자까지 받으면 마운드에 오른다. 그곳의 극장가를 걷다보면 조기 폐막후 극장이 수개월간 문이 닫혀있는 광경도 비일비재하다. 그 이유는 극장 자체가 투자자이고 공연 이외에 특별한 서비스 상업시설도 없기에 차라리 문을 걸어 잠그는게 관리비 손실을 줄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매주 흥행추이가 프로듀서들이 합의한 하한선 밑으로 내려가면 조기 폐막이라는 결단을 내리는 시스템이 있다. 관객이 거의 없고 파리만 날리는 프러덕션인데도 투자가 아닌 단순 대관료 수입 때문에 조기 종연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는 서로에게 불행할 수 있기에.

그런 점에서 한국에 진정한 의미에서 ‘영미권의 정글 쇼비즈니스’의 속성에 충실한 뮤지컬 전용극장이 과연 있을까? 자! 여기까지 한국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다소 과격한 주장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겠다. 2007년 샤롯데 시어터가 최초의 뮤지컬 전용극장으로 개관하며 <라이온 킹>을 선택하고 오픈런을 공지했을때 마음속으로 새로 생긴 이 멋진 극장이 세기의 명작과 함께 영원하기를 바랬다. 마치 아이다와 라다메스처럼... 다른 제작사들이 대관 기회를 달라고 아우성이거나 말거나.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라이온 킹>은 흥행에 실패했고, 그 이후에는 여느 다목적 극장 대관 시스템과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한 장르에 집중하고 평균 대관 기간이 3~6개월 정도로 길어졌다는 것 뿐. 사실 대극장 초연의 경우 3개월은 초기 투자비를 회수하기에는 짧다. 결국 ‘뮤지컬 전용극장’에서 초연후 다시 다른 극장으로 옮기는 과도기적 현상이 일어났다. 향후 더 많은 전용극장이 생겨야만 이러한 적체현상이 개선될 수 있을것이다.

돌이켜보면 뮤지컬 전용극장의 이슈가 우리 업계에 등장하게 된 계기는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2001년 12월 2일에 엘지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오페라의 유령> 한국 라이선스 공연이었다.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기간인 7개월 동안 공연되었고 흑자를 냈다. 뮤지컬 전용극장이 흥행의 지름길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은 상태에서 뉴욕, 런던은 물론 일본 극단 시키의 전용극장들도 그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증거자료로 등장했다. 하지만 쇼비지니스의 환경이 전혀 다른 우리나라에서 해외 사례들과의 지나친 비교는 ‘뮤지컬 전용극장’에 대해 불필요한 환상을 심어줄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현실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고 장밋빛 환상도 주지 않기 때문에.

지난 11월 4일, 뮤지컬 <조로>의 개막과 동시에 개관식을 가진 블루스퀘어의 뮤지컬 전용관을 둘러보며 한국형 전용극장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한달 뒤 지인을 만나러 백스테이지에 놀러갔다가 건물의 거의 모든 공간을 둘러볼 수 있었다. 겉에서 보이는 것보다 공연 인력들이 활동할 수 있는 각종 부대공간이 많았다. 내년에 화제작들로 빼곡히 가득찬 라인업의 영향인지 공간에도 긍정적인 엔돌핀이 돌고 있었다. 하긴 이곳은 서울의 중삼부이자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으며 평소에도 활기에 넘치는 이태원 지역이 아닌가?

5년전 서울시가 내놓은 블루스퀘어의 걸립 계획 당시를 돌이켜보면 여러 전용극장 계획중 업계 종사자들의 가장 비상한 관심을 끌었었다. 접근성면에서도 뛰어났고 운영주체가 누구보다도 공연을 잘아는 기업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남동 면허시험장이 있던 교통요지에 상전벽해라는 표현처럼 대극장 2개를 포함한 건물이 들어섰다. 하지만 이 경우는 한 세기 전 브로드웨이의 윈터 가든 극장의 소유주가 마굿간과 실내경마장이 있던 부지를 매입해 그 위에 화려하게 세운 것과는 경우가 다르다. 현대 사회에서 도심에 민간기업이 대극장을 건설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브로드웨이 극장 39개중 80% 남짓을 소유한 세 개(슈베르트, 네덜란더, 쥬잠신)의 회사는 땅값이 저렴했던 20세기 초반부터 독점적인 극장 비즈니스를 행사하면서 지금의 극장을 이미 몇세대전에 지었다. 웨스트엔드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땅값이 비싼 서울에서 민간 회사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뮤지컬 전용극장을 건립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대극장을 기준으로 순수 건축비만 500억원 이상, 도심이나 강남처럼 접근성이 좋은 지역의 부지매입비는 600억 이상이 소요되는데 기업이 수익성만 추구한다면 이 비용을 들여서 극장을 짓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현장의 제작자들은 서울에 뮤지컬 전용극장을 신설하기 위해서는 부지를 가지고 있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혹은 기업의 사회 환원 논리가 요구된다고 이야기해왔다. 일본 극단 시키가 공공지인 교토의 신칸센 역사 안에 전용극장을 건설한 사례는 철도 부지를 관으로부터 무상 임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업이 가진 공연예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철학이 없다면 한국에서 앞으로 이런 방식으로 뮤지컬 전용극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미션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한국형 뮤지컬 전용극장의 해답은 극장 그 자체로서만 수익을 남기기보다는 부근의 쇼핑, 레저 등의 부동산 개발과 그에 따른 시너지 효과에 기대를 걸어야만 한다. 이와 유사한 선례가 2003년 브로드웨이에 있다. 오래전에 화재로 폐허가 된 단독건물인 빌트모어 극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고급 콘도 미니엄식 아파트를 지어 그 안에 극장을 다시 집어넣고 비영리 극단 MTC가 운영권을 가지고 있다. 2008년에 재개관한 헨리 밀러 극장 역시 원래 700석 규모의 단독 건물이었지만, ‘뱅크 오브 아메리카’사가 부지를 매입해 초고층 오피스 빌딩을 지어 그 안에 다시 1000석 규모의 뮤지컬 전용극장을 신축했다. 또한 비영리 극단인 라운드어바웃 극단에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20년간 운영권을 넘겼다. 즉, 극장 운영비는 사무실 임대료로 충당하고 같은 기존 상업 극장주들이 아닌 비영리 극단에 운영권을 줌으로써 회사의 이미지를 살렸다.

쇼비즈니스의 최전선은 결국 극장이며 창작자와 연희자, 그리고 관객이 최종적으로 만나는 곳도 극장이다. 올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뮤지컬 세편(지킬 앤 하이드, 맘마미아, 조로)이 모두 '전용극장'에서 그 과실을 맛보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열기를 타고 2011년 우리나라의 뮤지컬 산업은 라이선스 대작들의 활약과 창작 열기를 바탕으로 큰 매출 증대를 이루었다. 앞으로 국가가 치열한 무역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문화산업의 발전에 사활을 걸어야 하고, 그 중에서도 타 분야에도 영향력을 미치는 전망있는 뮤지컬 산업에 지속적으로 지원을 해야한다. 극장을 운영하는 민간기업에게도 관에서 실질적인 재정적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며 나아가 극장과 콘텐츠는 마치 닭과 달걀과 같은 관계라는 것에 대한 인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극장의 설립 주체들 역시 장기적인 안목으로 극장 설립과 콘텐츠 확보에 대한 비용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말고, 두 가지 이슈를 효율적으로 대처하며 미래지향적인 운영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글/ 뮤지컬 칼럼니스트 조용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