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시크한 가장 보통의 존재 <언니네이발관 이석원>

언제였던가. 지난해 10회를 맞은 쌈지 사운드 페스티발의 첫 회였으니 아마도 1999년 늦여름 그 언저리였으리라. 성균관대 운동장을 가득 메운 청춘들처럼 파랗고 싱싱한 나뭇잎들이 계절을 온몸으로 알려주는 그 시절.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은 우왁스러운 청년들이 슬램(콘서트 관객들이 서로 몸을 격렬하게 부딪치는 행위)과 모씽(슬램보다 과격하게 손과 발길질이 포함)을 하느라 땀에 절어 있을 때,
‘언니네이발관’을 만난 건 그때였다. 
 

약간 헐렁한 정장을 입은 그 이상한 이름의 밴드 보컬은 밴드라기보다는 양복쟁이 회사원에 가까웠다. 패션이라곤 손끝만치도 신경 쓰지 않은듯한. 게다가 자폐증이 의심될 정도로 관객을 외면하는 눈빛과 무심한 표정이라니. 앞서 나온 인디밴드들- 지금은 인디보다는 메이저 그룹에 들어가는 펑크록 밴드 노브레인, 귀곡 메탈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레이니선' 등 기괴하고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라인업에서 언니네이발관의 존재는 그 반대의 모습으로 단연 튀었다.


 그 무심한 표정의 보컬 이석원씨는 덤덤한 태도로 냉정하고 차가운 노랫말을 말랑말랑한 멜로디에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 아름답고 소심한 미성으로 말이다. 뭐 저런 밴드가 다 있지 싶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연주가 모두 끝나지도 않았는데 인사도 없이 쌩! 무대 뒤로 사라져버리더라. 요즘 같으면 원더걸스의 소희처럼 ‘무심한 듯 시크’ 쯤으로 넉넉히 봐줄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무대매너는 어디 갔다 버렸냐고 비난 받기 일쑤.
그날 들은 노래는 언니네이발관 1집 앨범 '비둘기는 하늘의 쥐'에 들어있는 ‘미움의 제국’이란 노래로 이 무대는 그들에게 있어서도 거의 데뷔나 마찬가지였다. 보컬인 이석원씨는 밴드 초반에는 실제로 회사원이었으니, 당시 받은 느낌이 전혀 근거 없진 않은 모양이다.
보컬 이석원이 일본 포르노 영화제목에서 따왔다는 밴드이름은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언니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이름대로 포지셔닝해왔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7~8년전 나는 언니네이발관 홈페이지에 올라간 그의 일기를 나의 일기에 베껴온 적이 있다. 마치 나자신이 아닐까 싶을 만큼 싱크로율이 높았던 놀랍도록 솔직한 순간의 고백을 마치 내 기억처럼 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 그가 얼마 전 노란 커버의 에세이집 <보통의 존재>로 한달 만에 6쇄를 팔아 치우며 떠오르는 신인작가로 소위 떴다. “15년 동안 음악을 하면서 재미있다, 즐겁다, 행복하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중략) 글쓰기는 힘들면서도 너무 재미있는 겁니다. 제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약간 바람이 난 것 같아요”(무비위크 인터뷰)라는 그는 서른아홉에 입은 작가라는 새로운 옷이 잘 맞고도 신이 나나 보다.
우리(?) 역시 미안하지만, 앞으로 이석원의 나이 탐험을 담은 당신의 글들이 음악보다 더 기대되기 시작했으니 그리 미안할 필요는 없겠다.
글이나 노래나 뭐가 됐건 조근조근 고백하는 듯한 그의 나레이션을 접할 수만 있다면 나야 땡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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