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초짜 안무가 만났지만 정말 잘해주고 있는 우리 무용수들에게 고맙다고, 이건 정말 꼭 써주셔야 해요. 꼭 꼭이요(웃음).” 식상한 저 마지막 질문에 몇 번의 다짐을 받고서야 인터뷰가 끝났다. 정현옥, 발레리노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그가 국립발레단의 창작 발레 프로젝트 ‘컨버댄스(CONVERDANCE)-J씨의 사랑이야기’에 ‘안무가’로 참여했다.

정현옥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코펠리아’에서 코펠리우스 박사 역으로 열연을 펼친 국립발레단의 주축 무용수다. 그런 그가 연습 현장에서 무용수들의 연기를 지켜보고, 음악, 의상을 고민하는 모습이 새롭다. 거기다가 ‘연극과 발레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들고 나타나다니. 그는 연극 ‘33개의 변주곡’을 보면서 “안무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연찮게 ‘컨버댄스’ 공고를 보고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왔다. 평생 몸을 사용하는 무용수이길 꿈꾸지만, 한편으로는 늘 안무를 구상 한다는 정현옥 안무가의 무대가 시작됐다.

안무가 정현옥은 이번 공연에 무용수를 오디션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작품 구상할 때부터 떠오르는 국립발레단 단원들이 있었다. 그야말로 맞춤 캐스팅. 그는 “딱 떠오르는 이미지의 아이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좋다”라며 무용수 칭찬을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잘 따라오는 무용수들을 보고 있으면 안무가로서는 물론이거니와 국립발레단 “선배로서 뿌듯”하다. “사실 이 작품에는 발레 동작이 하나도 없어요. 연기와 감정 표현에 많은 중점을 두고 있죠. 발레 연기랑 연극 연기는 조금 다른데, 아이들이 너무 잘해주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아, 그냥 국립발레단이 아니구나 싶죠(웃음),”

‘컨버댄스’는 국립발레단이 새롭게 시도하는 창작 발레 프로젝트로 오는 5월 20, 21일 양일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선보인다. 이 프로젝트는 새로운 안무가 배출은 물론 새로운 시도를 통해 발레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기대하며 기획됐다. 세 작품이 연이어 공연되는데 그 중 안무가 정현옥의 작품은 ‘J씨의 사랑이야기’다. 이 작품은 20대, 30대, 40대로 파트가 나뉘어 각기 다른 사랑의 색깔이 표현된다. 20대의 사랑은 풋풋함을, 30대의 사랑은 진지함을, 40대의 사랑은 원숙함을 표출한다. 안무가 정현옥은 ‘사랑’의 다양한 색을 담고자 파트를 나누고, 음악도 변주곡을 사용했다. “똑같은 ‘사랑해’라는 말도 언제, 어디서,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잖아요. 보면서 아 맞아, 사랑은 그래, 이렇게 공감하면서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목 ‘J씨의 사랑이야기’는 정현옥 그의 이니셜을 연상시킨다. 그가 경험한 사랑이야기를 풀어 놓는 걸까. “아, 그럴 수도 있죠(웃음). 누가 왜 50대는 안하냐고 묻더라고요. 제가 아직 50대는 아니니까…”

아무래도 작품을 만드니까 무용수 일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는 그는 요즘 ‘역지사지(易地思之)’ 뜻을 실감한다. 무용수일 때는 주어진 것을 분석하고 춤만 추면 됐는데, 이제는 생각을 잘 표현하고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어렵다. “지금까지 좋은 안무가 선생님들을 만났던 것이 다행이에요. 그 분들 생각하면서 하니까 이 정도로라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시간에 쫓기니까 무용수들만 괴롭히게 되더라고요(웃음). 예전 안무가 선생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용은 말이 없다. 모든 것을 몸으로만 전달해야하는 것이 조금 답답하게도 느껴지지만 그 것이 무용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참으로 모순적이다. 오랜 시간 무용을 해 온 발레리노로, 이제는 신진 안무가로 나서는 정현옥 역시 그런 점을 꿰뚫고 있다. 자신도 무용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시끄러운 길을 걷는데 저 멀리 브라운관에 무용하는 CF가 나오고 있는거예요. 안 들리는데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겠는 거 있죠. 엄마하고 아기를 보면 말이 안 통하는 데도 서로 이야기를 알아듣잖아요. 그런 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발레는 아기언어라고 할 수 있죠. 순수한 마음을 다시 일깨워주는 그런 거요.” 그래서 그는 세상 소음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은 분들께 “마음 정화 차원”으로 무용을 권한다. 말없이 몸을 써 모든 것을 표현하는 무용을 본다면 다시 순수한 마음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무용의 매력을 진지하게 풀어놓던 그에게 대단하다는 눈짓을 보냈더니 “참 독특하죠. 희안하죠. 그냥 제 생각이에요”라며 시크하게 말하고, 작품이 기대된다는 말에는 “그래요? 정말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라고 수줍어하며 말을 잇는다. “이번 ‘컨버댄스’는 정말 저도 기대돼요. 안성수 선생님의 ‘스윙타임’, 박화경 선생님의 ‘0 1’, 그리고 제 작품까지 다 다른 색깔이거든요. 관객분들도 함께 와서 재밌고 즐겁게 느끼다 가시길 바라요. ‘J씨의 사랑이야기’ 보면서는 그냥 미소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글_뉴스테이지 김문선 기자, 사진_뉴스테이지 강태영 기자 newsta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