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훈 개인전 '가짜왕국'
철 슬러지로 만든 17개 금속조각
진짜 가짜 섞인 사회 고발
사비나미술관 7월19일까지

성동훈 작가가 철 슬러지와 전투기 부품 등으로 만든 ‘코뿔소와 가짜왕국’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사비나미술관)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용광로에서 철이 녹다가 남은 찌꺼기를 보는 순간 쇠도 아니고 그렇다고 액체도 아닌 묘한 물성에 끌렸다.”

주로 금속과 공업용 특수시멘트를 다뤄온 성동훈(48) 조각가는 새로운 소재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돈키호테’ 시리즈로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변화가 필요했다. 마침 지난해 타이완의 동호철강 파운데이션의 예술가 지원대상으로 선정돼 동호철강의 공장을 견학할 기회를 얻었다.

제철소에서 나오는 다양한 금속제품을 봤지만 딱히 끌리지는 않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공장을 돌던 중 눈에 띄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철 슬러지였다. 철 슬러지는 철제품을 생산한 뒤 용광로에 남아 있는 찌꺼기이자 잔해물. 현무암처럼 표면에 거칠고 형태 역시 제멋대로여서 얼핏 보면 기암괴석처럼 보였다. 절단과 용접 등의 가공이 어려워 조각의 재료로 적합치 않은 그것이 바로 그가 찾던 새로운 재료였다. 동호철강에서 50t의 철 슬러지를 받았다.

오는 7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성 작가의 개인전 ‘가짜왕국’은 철 슬러지 등을 주재료로 한 17개의 금속조각품을 볼 수 있는 전시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성 작가는 전시제목에 대해 “점차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든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의미에서 정한 것”이라며 “진위가 뒤섞여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현실, 모순과 위장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를 고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코뿔소의 가짜왕국’은 전시의도를 가장 잘 설명하는 작품이다. 코뿔소의 몸통은 철 슬러지를 용접해 만들었고 머리는 청화백자 구슬로 장식했다. 추락한 전투기 부품으로 코뿔소 몸통에 올라탄 사람의 형상을 제작했고,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모조품을 상징하는 플라스틱 구슬을 이용했다. 각기 다른 형질의 재료가 뒤섞여 하나의 왕국을 표현했지만 그 왕국은 허위의 세계다.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것들이 모여 진짜인 양 모양새를 취하고 있어서다.

작품 가운데는 성 작가가 남다른 고통을 느끼며 만든 작품도 나왔다. ‘검은 통곡’이다. 역시 철 슬러지로 만든, 거꾸로 매달린 상어 한 마리의 표면에는 노란 리본이 그려진 도자기 구슬 304개가 박혀 있다. 성 작가는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 소식을 타이완에서 들었다. 종일 눈물이 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작품이다”고 밝혔다. 목소리에 살짝 습기가 묻어났다. 02-736-4371.

성동훈 작가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검은 통곡’(사진=사비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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