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달의 저편>(2003년), <안데르센 프로젝트>(2007년)를 인상 깊게 관람했던 관객이라면 놓쳐서는 안될 또 한 편의 무대가 온다. 다양한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현대 이미지 연극의 대가로 꼽히는 로베르 르빠주의 또다른 작품이 한국을 찾기 때문이다.

<안데르센 프로젝트> 이후 8년 만에 로베르 르빠주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바늘과 아편>이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1991년 초연 작으로, 사랑을 잃은 세 남자(프랑스 영화감독이자 극작가 장 콕토, 미국의 유명 재즈 트럼피터 마일즈 데이비스, 캐나다 출신 배우이자 연출가 본인 로베르)가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에 의존하며 점차 그것에 중독되어 가는 아이러니를 그린 작품이다.

작품은 장 콕토와 마일즈 데이비스가 활동하던 1949년과 로베르가 활동하는 1989년이 교차한다. 장 콕토와 마일즈 데이비스의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녹음하기 위해 파리에 머무는 로베르는 헤어진 연인을 잊기 위해 애쓰지만 소용이 없고, 그의 감정적 고통은 각각 아편과 헤로인에 의존하던 장 콕토와 데이비스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뼈아픈 이별'을 겪은 후 만들었다는 작품인 만큼 로베르의 실제 감정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진다.

로베르 르빠주의 작품답게 <바늘과 아편> 역시 기계장치 사용을 중심으로 한 이미지 연극으로 풀어낸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초연은 한 명의 배우가 세 캐릭터를 모두 소화하는 1인극 형식이었으며 로베르는 희곡, 연출을 맡아 캐나다 공연예술계 최고 영예의 상이라 불리는 샤머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초연 후 20년 만에 리바이벌 공연을 계획한 데에는 초연 무대에도 올랐으며 이번 공연에서 장 콕토와 로베르 역을 맡은 배우 마크 라브래쉬의 권유가 큰 작용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로베르는 리바이벌 공연을 위해 희곡을 다시 썼으며, 초연 당시 그림자로 처리했던 흑인 캐릭터 마일즈 데이비스를 배우 웰슬리 로버트슨 3세의 연기로 풀어낸 것 역시 변화된 부분이다.

로베르가 "확실히 더 성숙하고 성장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이번 무대에서도, 공중에 매달려 회전하는 거대한 큐빅이 빚어내는 뉴욕과 파리 등의 광경이 환상적으로 펼쳐지는 것은 변함 없을 것이다. 여기에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가 겹쳐지는 초연실적 분위기는 과거 공연에서도 압권이라는 평을 받았다.

캐나다 퀘백 출신의 연출가 로베르 르빠주는 배우, 작가, 연출가, 영화감독 등으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태양의서커스의 <카>와 <토템>을 연출하기도 했다. 극대화된 상상력을 이미지로 풀어내는 데에 탁월하며, 자신이 설립한 극단 엑스마키나(Ex Machina)의 이름처럼 기계장치를 활용한 첨단 기술을 표현에 적극 활용하여 연극계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피터 브룩, 로버트 윌슨, 피나 바우쉬, 레프 도진 등이 수상했던 유럽연극상을 2007년에 수상하기도 했다.

초연 후 20여 년 만에 한국을 찾는 <바늘과 아편>은 9월 17일부터 19일까지 단 세 차례 LG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LG아트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