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밤 산속에서 열린 산중음악회


풍요로운 10월의 첫 휴일, 하늘이 열리는 날 경기도 양평 용문산 야외공연장에서는 동물원과 함께 가는 가을소풍 공연이 열렸다. 이번 공연은 셀 인터내셔널에서 기획한'1일 휴가 콘서트'의 다섯번째 공연으로, '2002 동물원과 함께 가는 가을소풍'과 '미술관 옆 동물원 콘서트'에 이어 세 번째로 마련된 동물원의 공연이기도 하다. 10월 3일과 4일 이틀에 걸쳐 하루 2회, '해지고' 6시 공연과 '달뜨고' 10시 공연으로 나누어 진행된 이번 공연은 지난해에 이어 전회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고, '달뜨고' 공연의 경우에는 늦은 밤에 시작되어 '무제한 콘서트'를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기대를 모았다.
'가을 소풍'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이번 공연에서는 관람객을 위한 여러 가지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우선 단체출발을 위한 버스가 준비되었고, 매회마다 관객들 대부분은 공연 3-4시간 전에 공연장에 도착하여 각자 자유롭게 식사를 하고 주변 산책로나 계곡을 돌아보는 등 여유를 즐겼다. 이른 시간에 도착한 관람객들은 아름드리 나무와 푸른 가을하늘이 어우러진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달뜨고'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늦은 시간에 도착한 관객들은 해가 지고 난 후 공연장 주변을 환히 밝힌 불빛들과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함께 공연장을 찾은 가족이나 친구, 애인과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이번 가을소풍에서는 관람객 전원을 위한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는데 신선한 나물과 고소한 묵이 포함된 식단은 기대 이상으로 푸짐하고 맛있었다.



10월 3일 밤 10시 <동물원과 함께 가는 가을소풍-달뜨고>
늦은 시간에 시작된 공연인 만큼 많은 관람객들은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서로 어깨를 맞대거나 손을 맞잡은 모습이었다. 다정하게 한장의 담요를 나눠 덮은 이들의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여느 콘서트장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이나 친한 친구들이 서로 어울려 즐기거나, 가수의 열성팬들이 한데 무리를 지어 열광하는 장면을 보게 되는 것과는 다르게 부모님과 어린 자녀들이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경우는 물론, 연세 지긋한 어른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이색적이었다.
첫 곡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를 시작으로, '가을의 노래' '유리배' '넌 충분히 아름다운걸' 등 1부 공연은 동물원의 노래 가운데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곡들 위주로 진행되었다. 이날 공연에서는 특별한 순서가 준비되었는데 공연 기획 단계에서 팬들을 대상으로 열린 '예쁜 가사 쓰기 이벤트'에서 1등으로 선정된 글에 동물원 멤버들이 직접 곡을 붙여 들려준 것이었다. 조용히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대신 단조로운 진행으로 인해 조금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했던 1부의 마지막 곡은 모두가 함께 부르는 '널 사랑하겠어'였다.
이날의 게스트인 신예 여성 포크 가수 손지연의 무대에 이어 시작된 2부는 1부에 비해 조금 밝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올해중으로 발매될 동물원의 새 음반에 수록될 곡들 중 일부가 이날 공개되었는데, 얼핏 듣기에도 동물원의 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한 아름답고 감미로운 느낌의 곡 이외에도 전혀 새로운 느낌의 곡들이 포함되어 있어 새 음반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여주었다. '변해가네' '시청앞 지하철역에서'나 '혜화동'과 같은 익숙한 노래들로 이어진 2부 공연을 감상하고 나니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기고 난 후였다. 아쉬움 속에 공연은 막을 내리고, 관람객들은 새벽 공기를 마시며 산책로를 따라 차에 올랐다.

그룹 '동물원'은..
동물원은 1988년 데뷔, 총 11장의 음반을 발표하였으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룹이다. 사춘기적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동물원의 노래를 들으며 자란 세대들은 이제 최소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이상의 나이가 되었다. 대학생 그룹으로 출발해 현재 박기영, 유준열, 배영길 세 멤버만이 함께 활동하고 있는 동물원은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로 다양한 연령층의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다.

다음 소풍을 기약하며
'동물원과 함께 가는 가을소풍'은 동물원의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편안한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을 만한 공연이었다. 깊은 밤 조용한 산속에서 열린 '산중 음악회'는 도시를 떠나온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동물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어린 아이들조차도 부모님의 손을 꼭 잡고는 낯선 아저씨들의 미소와 노래에 화답했다. 공연장 한켠에는 라운지가 마련되어 있어서 관객들은 주최측에서 무료로 제공한 따뜻한 커피와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요즘 많은 가수들의 콘서트는 음악을 감상하기 위한 공연이라기보다는 '이벤트'나 '쇼'에 가까운 분위기로 연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이날 공연은 흔한 팝넘버 한 곡 포함되지 않고 순전히 동물원의 노래들로만 진행되었으며 꾸밈없이 소박한 느낌이드는 세 멤버들의 노래와 연주만으로 채워졌다. 함께 하는 즐거움이 없었더라면 조금은 지루할수도 있었을테지만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 모두 편안하게 음악을 감상하며 함께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과 다정하게 서로의 마음을 전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차갑고 신선한 밤공기 속에서 무대를 환하게 비추는 조명 불빛과 잔잔한 음악이 어우러진 이날 공연은 깊은 밤 까만 어둠을 환히 밝히고, 추운 날씨 속에서도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공연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몇가지 문제점이 노출되어 공연장을 찾은 이들로부터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출발에서부터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대체로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었으나 첫날 1회 공연에서는 중간에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고, 2회 공연 중에도 음향 시스템의 문제로 인해 여러번 잡음이 심하게 들리기도 했다. 특히 '달뜨고' 공연이 새벽 한시경에 끝나고 나서 버스를 타고 출발한 관객들이 서울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두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특별했던 이날 공연의 주제나 주최측의 배려가 무색해진 것 같아 안타까웠다. 내년 가을소풍에서는 정확한 시간 배분과 실수 없는 공연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며, 가급적이면 '달뜨고' 공연에서는 '무제한 콘서트'의 느낌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넉넉하고 여유있는 진행을 기대한다.

동물원 9집 'Secret Nine' 11월 발매예정
동물원의 새로운 9집 음반은 11월중에 발매될 예정이다. 침체된 국내 음반 시장에서 그들은 '소장가치가 있는' 앨범을 선사하기 위해, 판화로 제작된 케이스에 담겨있는 특별한 9999장의 앨범을 온라인을 통해 판매한다고 한다. 특히 이번 음반은 새로 작곡한 곡이 아닌, 그동안 앨범에 수록하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많은 곡들 가운데 묻어두기 아쉬운 곡들을 골라 구성할 계획이다. 이들의 음악은 한결같지만 매번 음반을 발매할 때마다 새로운 변신을 보여주는 만큼, 내년 이맘때 다시 열릴 '동물원과 함께 가는 가을소풍'을 기대하며 이들의 새 음반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출처 :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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