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침잠의 끝은 사라짐, 그리고 잊혀짐이다. 솟을 기미 보이지 않는 하강곡선의 끝, 떠오름을 꿈꾸나 영원히 가라앉는 한 잠수함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살아 있는 오늘이 아무렇지 않은 듯, 그래서 온전히 삶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연극 <고래>의 무대는 북한 잠수정 안이다. 남한으로 내려와 탐색을 마치고 귀환하는 잠수정 안의 조장과 기관장 등은 속초 뭍에서 돌아온 행동대장 일행을 반긴다. 성공적인 임무 수행에 대한 기쁨도 있겠지만, ‘애가 아플 때 먹이면 효과가 직방’이라고 알고 있는 남한의 분유, 그리고 담배, 내의, 파스 등 이들이 챙겨 온 생필품들에 대한 환희가 얼굴에 가득하다.

지난 해 신작희곡페스티벌에 당선되고 올해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젊은 연출가전에서 희곡상을 수상한 연극 <고래>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 안고 있는 이념 논쟁이나, 한민족 한핏줄에 호소하며 평화 통일을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니다. 기쁨과 슬픔, 극한에서의 치열한 고뇌 속에 인간존재에 대한 절박한 몸부림이 잠수함을 채우고 있다.

여자친구에게 줄 선물, 어머니에게 드릴 옷가지, 내 아이 먹일 분유 등 남한에서 몰래 귀한 것을 가져가는 북한 ‘사람’들의 순박한 미소가 먼저 비친다. 하지만 곧 잠수정은 추진 날개가 꽁치 그물에 걸려 멈춰서고, 간첩으로 존재가 발각될 위기에서 이들은 분열한다.

분열은, 조직 내의 파벌 대립으로 이어지는 듯 하나 결국 생을 향한 개개인의 이성, 감정, 본능의 분열이다. “살아 있다는 거, 그 자체가 욕망 아니네?”라고 읊조리는 이들은 벼랑 끝에서 서로를 위해, 자신을 위해 총구를 겨눈다. 하지만 망설임 없이 들어올린 총구 끝, 살고 싶다는 가장 순결한 욕망이 타오름은 어찌할 것인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무대에 선 배우들의 목소리가 잠수정을 움직이고, 총알을 쏘고, 관객들의 사고를 얼얼하게 만든다. 오랜만에 만나는 힘있는 남자 배우들만의 강한 무대가 매력적이다.

그 누구도 확언할 수 없지만 고래 뱃속은 깊고, 어두우며 어떤 외침도 울리기만 할 뿐 밖으로 세어나지 못할 듯하다. 여기 고래와 닮아, 침잠하는 한 잠수정이 있다. 꿈을 외치고 삶을 호소하는 그 안의 치열한 움직임을, 그 누구 하나 알아 차릴 수 없음이 쓸쓸하다.


글: 황선아 기자(인터파크INT suna1@inter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