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던, 그랬던 것이어었다!”
박진감 넘치던 변사의 서술이 애달프게 변한다. 여기저기 탄식과 웃음이 터져 나온다. 지금은 모단 걸들과 모단 뽀이들이 유행을 선두하는 1930년대가 아니다. 2012년 메트로폴리탄 서울 한 가운데의 풍경. 향수라고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신선한 무대, <청춘의 십자로> 공연장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무성 영화가 음악, 노래와 함께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한 <청춘의 십자로>가 지난 달 26일부터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구 서울역사, 문화역서울 284에서 공연 중이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필름을 복원하여 만든 이 작품은 1934년 안종화 감독이 남긴 무성 영화로, 당대 최고의 스타 배우로 기록되는 이원용, 신일선, 김연실 등이 출연해 신파 멜로에 활극, 코미디가 가미되었다.


영화 '청춘의 십자로' 중 한 장면
데릴사위로 7년 간 열심히 일했지만 배신당한 순박한 시골 청년 영복이 경성으로 올라와 만난 여인 계순, 오빠를 찾아온 영복의 동생 영옥과 여자들을 농락하는 장개철 등 얽히고 설킨 청춘들의 사랑과 역경, 시련과 복수의 파노라마가 긴박하게 펼쳐진다.

이 영화를 색다른 작품으로 탈바꿈시키는 건 변사와 배우의 등장이다. 개성 만점 변사 조희봉은 맛깔스럽고 찰진 대사로 무성 영화의 빈 공간을 재미나게 채워주고, 구성진 노랫가락과 함께 강필석, 김대종, 양준모, 임문희, 정명은 등 스타 뮤지컬 배우들이 번갈아 출연해 십자로 엇갈리다 다시 만나는 아찔한 청춘의 모습을 스크린 앞에서 보여준다.


변사 조희봉
영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가족의 탄생’, ‘만추’의 김태용 감독이 연출하고, 작사, 작곡, 편곡의 박천휘, 음악감독 변희석 등 스텝진들도 화려하다.

무엇보다 공연장 입구 간판부터 공연장 안에서 찹쌀떡을 파는 모던 보이, 모던 걸, 그리고 이제는 역사의 한 부분이 되어 멋진 향수를 뿜어내고 있는 구 서울역사 등 모든 요소들이 한 작품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흥미롭고도 즐겁다.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중장년층에게도 재밌는 공감 요소가 많은 이 작품은, 역사적인 의의 뿐 아니라 탄탄한 스텝과 배우들을 바탕으로 한 장르의 융합, 색다른 시도가 낳은 좋은 결과라는 것에 큰 박수를 보낸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청춘의 십자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