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을 모르는 완벽함, 통념을 깨는 유연함
현악 주자라면 부러지지 않고 휠 줄 알아야


-축하한다. 올해의 에버리 피셔 상은 에머슨 4중주단이 수상했다. 실내악단으로서는 최초의 수상이기도 한데, 소감을 듣고 싶다.

에버리 피셔 상을 받게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실내악단이 영예를 안게 돼 기쁩니다. 다른 실내악단들의 수상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지난 1993년 서울을 방문해 첫 내한공연을 가졌다. 당시의 공연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한국에서는 단 한 차례 공연했습니다. 10년 전 6월(28일)이었죠. 청중들은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따뜻하고 자발적이며 열정적인 반응으로 기억됩니다. 한국인이 작곡한 음악이나 한국 민속음악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미주와 유럽에서 정경화나 정명훈, 김영욱이나 강동석이 성취한 업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의 음악원들에는 재능있는 한국인 음악가들이 넘쳐납니다. 지난 몇 세대 동안 한국, 일본, 중국의 연주가들과 가수들이 서양 고전음악을 철저히 익히고 펼쳐 온 사실은 언제나 제게 감명을 줍니다.

-베토벤 4중주 2번과 쇼스타코비치 4중주 4번, 그리고 하이든의 ‘종달새’(기자가 특히 좋아하는)를 이번 공연에서 연주할 것이다. 각 곡들마다의 감상 포인트는 무엇일까.

하이든의 ‘종달새’는 밝고 쾌활한 작품이죠. 탄력있고 경쾌한 1악장, 느린 악장에서는 제1바이올린에 의해 서정적으로 전개되는 아리아, 흥겹게 뛰노는 미뉴에트와 무궁동적인 피날레로 구성돼 있습니다. 뛰어난 푸가 형식의 작곡을 포함한, 우리 네 명의 악기를 위한 대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 4중주 8번은 1960년 작곡가가 드레스덴을 방문해 1945년 폭격의 참혹한 잔재를 목격한 직후 작곡됐습니다. ‘파시즘과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헌정됐지요. 당시 작곡가는 공산당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점차 나중에는 우울한 상태로 의기소침해 갔습니다. 그가 자살 기도를 했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죠. 아마도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이 겪은 괴로운 생애의 음악적 묘비명으로 삼으려 했었을 겁니다. 이런 작곡의 배경에 대해 많이 알고 있건 적게 알고 있건 간에 이 작품은 거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커다란 슬픔을 표출합니다.
베토벤의 Op.59-2는 두 개의 무뚝뚝한 코드로 시작됩니다. 고음은 5도의 간격으로 도약하지요. 그리고, 침묵이 흐릅니다. 이 1악장에서 간결한 모티브 단위에의 집중감과 그것을 돋보이게 하는 침묵은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실험적인 작곡 중 하나로 이 곡을 자리매김하게 합니다. 느린 악장은 천국의 서정적인 기도입니다. 혹자는 이 부분이 고대의 ‘천체의 음악’ 개념을 묘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천체의 음악을 만들었다는 개념이죠. 피날레는 극적이고 눈부시죠. 화성적인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에머슨의 최근 음반으로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한 하이든의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 이 있다. 어떻게 이 작품을 레코딩하게 되었는가? 연주를 통해서 어떤 점을 부각시켜 표현하고 싶었나?

우리 넷 중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오직 한명 뿐이지만 우리는 모두 하이든이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에서 가져다 준 열렬함과 열정에 깊이 감동 받았습니다. 더 폭 넓게 접근하면 이 작품의 드라마는 예수를 신의 아들의 측면과 인간의 측면, 이렇게 이중적으로 파악한 하이든의 음악적 묘사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속되는 느린 악장에서는 평온함과 고통, 고뇌와 분노가 모두 표현돼 있습니다.
에머슨 4중주단에서는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을 바꿔가며 연주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동일한 작품에서 서로 바꾼 적은 없습니다. 필립 세처가 3곡에서 제1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서주와 피날레 등 나머지에서는 제가 제1바이올린을 연주했습니다.

- 멤버들의 나이가 모두 50을 넘어 완숙기에 접어든 것 같다. 그러나 음반을 들을 때마다 당신들의 해석에서 언제나 젊음을 느낀다. 이러한 풋풋한 해석의 열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들 중 가장 나이 어린 멤버가 지난 주에 50세 생일을 맞았습니다. 당신은 몇 년 전 우리가 모두 40대일 때의 레코딩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군요!
진지하게 얘기하자면 우리는 콘서트와 레코딩 세션에 열과 성을 다해 임합니다. 레코딩 세션 중에 연주해본 것을 재생해 들을 때 우리들 사이에는 호된 비판이 난무합니다. 기술적으로나 음악적 수준 등 모든 면에서 말이죠. 그리고 그것이 곡이 지녀야 할 특별한 성격이 아닌 한 느슨하고 달콤한 접근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자기 만족에 빠지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지요.

-부쉬, 바릴리, 빈 콘체르트하우스 4중주단, 부다페스트, 줄리어 등등 위대한 전통의 현악 4중주단들이 있다. 21세기가 되었건만 많은 실내악 팬들은 이러한 전설의 4중주단이 들려준 음색의 아우라를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소위 ‘역사적인’ 연주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4중주단들의 진정한 아우라의 실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에머슨 4중주단이 그들로부터 계승한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한국의 많은 음악애호가들이 현악 4중주 연주 전통에 조예가 깊다는 점을 알고 기뻤습니다. 줄리어드와 과르네리 4중주단은 우리의 결성 초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두 연주단체입니다. 일부 음악 평론가들은 우리의 역동적인 접근과 리드미컬한 에너지 면에서 줄리어드와 유사성을 찾기도 합니다. 우리는 또한 과르네리 4중주단의 우아한 스타일과 풍려한 사운드를 열망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10~15년동안 부지불식간에 입은 영향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고유의 방식으로 연주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진보하려고 하죠.


-현악 4중주라는 형식에서 나오는 매력은 무엇일까?

현악기 연주가들에게는 커리어를 쌓는 세 가지 주된 방법이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솔로, 그리고 실내악이죠. 이들 중에서 실내악을 하기로 결정한 사람 중 대부분은 4중주단을 선택합니다. 레퍼토리가 광대하고, 그들 중 일부는 서양음악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죠.
4중주단의 매력 중 일부는 서양음악의 대다수가 4성부 화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 기인합니다. 네 현악기의 음색의 유사성이 다성음악적인 패시지를 위한 혼합의 여지를 만들어 주지요. 4중주를 작곡할 때 담화적인 측면이 부각되지요. 즉 각각의 악기가 대화를 하거나 생각을 주고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는 한 악기가 다른 악기를 리드하거나 다른 악기 뒤로 숨는 등 접근의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훌륭한 현악기 연주가가 되려면 누구든지 이런 유연성을 길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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