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뉴욕의 미네타 레인 극장(Minetta Lane Theatre)에서는 한국 공연 <난타>가 <쿠킹>(Cookin’)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막을 올렸다. 2005년 8월 막을 내리기까지 약 1년 5개월 동안 많은 화제를 뿌리고 공연되었던 <쿠킹>에 이어, 지난 2007년에는 <점프>(Jump)가, 2008년 가을에는 <브레이크 아웃>(Break Out)과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Ballerina Who Loves B-Boy)가 연이어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 소개되었다. 또한 지난 9월 27-28일에는 <거울공주 평강이야기>(Mirror Princess Pyeonggang)가 뉴욕 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서울과 뉴욕의 공연계를 이어주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동양의 비-보이들이 선사하는 독특한 공연
<브레이크 아웃>이 9월 23일 뉴욕의 유니온 스퀘어 극장(Union Square Theatre)에서 개막했다. 개막 후 이튿날 찾은 극장에는 한국 관객들만이 아니라 많은 외국 관람객들이 한국에서 건너온 비-보이들이 선보이는 독특한 형식의 공연에 함께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브레이크 아웃>은 교도소 자동차 수리장에서 자유를 열망하던 죄수들이 탈출 후 바깥세상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일탈의 순간들을 시종일관 경쾌한 댄스코미디로 풀어낸다. 우리 정서에 보다 익숙한 유머 코드들이 과연 얼마큼이나 서양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런지 의심했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듯이 파란 눈의 관객들은 한국 관객들보다도 오히려 적극적으로 공연에 참여하며, 작품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 반가움을 더 했다. 다만,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서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네러티브와 반복성 짙은 단순 코미디의 나열이 다소 지루함을 주기도 해 아쉬웠다. <브레이크 아웃>은 애초 예정되었던 공연일자를 1회 연장해 오는 11월 30일까지 유니온 스퀘어 극장에서 공연된다.



뉴욕에서 공연되는 또 다른 우리의 비-보이 작품은 바로 국내에서도 오랜동안 공연되어 온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한 발레리나가 거리의 춤꾼들을 무시하며 대립하지만 결국 이들과 춤꾼으로 동화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10월 1일 프리뷰를 시작, 12월 21까지 뉴욕 37 아츠(37 Arts) 극장에서 공연된다.

지속적인 공감을 얻기에 위해 필요한 것들
1970년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비-보이 문화를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건너온 댄서들을 통해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신선하다. 하지만 이전의 <쿠킹>과 <점프>도 그러했듯이 우리 공연이 뉴욕 공연계에 진출하는 데에는 몇가지 뚜렷한 한계점이 지적된다. 일차적으로 비언어극(non-verbal performance)이 아닌 경우 표현에 있어 언어의 장벽을 넘어 100%를 전달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그러하지만, 정서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독특함과 신선함만으로는 지속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뉴욕의 공연 관객들은 일년 내내 수 없이 쏟아지는 크고, 작은 공연들에 둘러쌓여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우리 작품들이 1회성 관람이 아닌, 진정한 작품성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작품의 완성도를 높힐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곳 시장과 관객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며, 현지 스탭과의 긴밀한 파트너십도 유지되어야 한다. 앞으로 선보일 보다 많은 작품들을 위해서도 현재 해외진출을 활발하게 시도하는 작품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한국에서 건너 온 신선한 작품”이 아니라 “잘 만들어진 작품”을 선보이는 게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첫 선 보인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지난 9월 27-28일에는 한국종합예술학교의 창작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가 뉴욕 크레인 극장(Kraine Theatre)에서 공연되었다. 뉴욕 공연에 이어 10월 3일-4일 LA에서의 공연도 이어졌는데, 이번 공연은 한국예술종합학교와 LA한국문화원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추진되었다.

첫 공연이 열린 토요일 오후,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작은 극장 앞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한국에서 건너온 공연들의 해외공연은 자칫 우리들만의 잔치로 끝나기가 쉽다. 하지만 <거울공주 평강이야기>가 공연된 99석의 작은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한국 사람들만큼이나 외국 관객들의 숫자도 뒤지지 않아 내심 뿌듯함을 느낄 정도였다. 배우들의 목소리와 동작만으로 전체 공연을 끌어가는 톡특한 형식의 아카펠라 뮤지컬에 관객들의 호응도 높았다. 다만, 소재 자체가다분히 “한국적”이기에 우리 문화와 기존 설화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관객들에게 과연 얼마나 이 작품의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는 다소 의문이 들었다. 또한, 부분적인 대사가 자막기를 통해 영문대사로 전달된 부분의 진행이 매끄럽지 않았던 점도 작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틀에 걸친 단발 공연이었기에 몇가지 점에서 세심한 배려가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비언어극이 아닌 우리의 창작뮤지컬이 장기적인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반가운 시도였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