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는 오래전에 보아서 알았지만, 루와 릴케가 실제라는건 공연 몇분전에 알았네요.
약간의 배경지식만 있다면 실제와 상상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작품이란걸 느낄수 있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네요 ^^ 메모광 체홉이라니 ㅎㅎ

등장인물 3명의 캐릭터가 모두 입체적이고 흥미로워서 즐거운 관람이었습니다!

러시아 풍경 시놉시스를 보고, 미리 안톤체홉과 릴케, 루 살로메에 대해 알아보고 갔다. 안톤체홉의 경우 연극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분의 작품을 읽었다거나 연극을 본 기억이 없어서, 미리 그 분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고 갔고,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갈매기만 읽어보고 갔다. 릴케는 장미꽃 가시에 찔려 죽어간 낭만적인 시인으로만 기억했고, 루 살로메에 대해서는 사실 전혀 몰랐기에 두 사람의 관계나 삶에 대해서도 미리 읽었다.

그리고 극을 접했을 때 너무 놀랐다.
내가 알아보고 간 작가들의 길다면 길었던 삶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사 속에 풀어내고 있었다. 어색하지 않게 작가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인물이었는지 장황하게 설명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알 수 있었다.

안톤 체홉의 대사와 행동들을 보면 이 극을 썼을 작가님의 모습과도 겹쳐보였고, 작품을 창작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의 모습과도 겹쳐보였고, 넓게는 창작하는 모든 예술가들과도 겹쳐보였다. 다시는 극을 쓰지 않겠다고 불 태워버리겠다 하면서도 창작할만한 소재를 발견하면 다시 메모장을 꺼내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달과 6펜스''의 찰리 스트릭랜드가 떠올랐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던 사람.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어쩌면 작가도 창작을 하는 사람들도 때로는 그 일이 너무 지긋지긋하고 힘들고, 다 때려치고 싶어져도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빠져죽을 것 같은 사람들이기에 계속 하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극에서는 그 고통이 내게도 조금은 전해지고 공감이 되어 마음이 아프기까지 했다.

마음 한 켠에서는 고마웠다. 갈매기 초연이 실패하고, 극을 올리지 않겠다 결심했지만 다시 극을 올리게 된 것처럼 포기하고 싶은 상황 속에서도 무대 위에 서고,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매일 어떤 극을 볼지 설레하며 선택할 수 있으니까.

텍스트가 너무 좋았기에 작은 극장 무대에 화려한 무대 장치나 소품이 없어도 좋았다. 배우들이 던지는 대사들이 무대를 꽉 채웠으니 그 대사를 곱씹어보고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마지막에 이르러 체홉이 바라보는 숲을 함께 보니 러시아풍경이 보였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극이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겠지만 미리 알고 보면 느끼는 부분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유럽여행을 가서 멋스러운 작품들과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미리 알고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 재밌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러시아 풍경을 보기 전에 안톤체홉, 릴케, 루 살로메의 일생을 미리 살짝 알아보고 간다면 더 재밌게 극을 관람할 수 있는 것 같다.

"러시아풍경" (작:이희준 연출:김운기 출연:최원석, 김도희, 맹주영 제작:극단 작예모 극장:제작:대학로 연우소극장 별점:★★☆☆☆) 겨울의 춥고 긴 밤이 러시아의 대문호들이 탄생하게 된 하나의 요인라는 말이 생각나는 요즘, 러시아의 문학과 음악을 좋아하는 한사람으로서 제목부터 관심이 생겼다. 내용은 "갈매기" 초연의 실패로 절망에 빠진 체홉에게 루 살로메와의 이별의 아픔을 겪는 릴케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얘기이다. 동시대를 살았지만 직접 만나지는 않았던 인물들의 만남을 상상만으로 이런 글을 쓴 작가님의 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잘 안되는 내용이었다. 오히려 처음 알게 된 그 당시에 많은 남자들의 관심을 받았던 ''루 살로메'' 의 일대기가 궁금하다. 그래도 첫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갈매기" 의 일부를 공연하는 것은 볼만하였다.

예술가의 창작, 그 이면에 깃든 그들의 삶. 시대의 역작이 된 영감이 순간이 어쩌면 이렇게 찾아오지 않았을까? 창작의 창작의 창작을 부르는 또 다른 창작.. 예술을 대하는 작가의 마음에는 경의와 존경이 묻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