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어디에서였더라, 분명 어디에선가 들어본 듯하다. 머리칼을 잡아당기는 현의 끊김의 연속. 서서히 격정으로 몰아가는 피아노 선율. 어디서였더라?

서서히 안개가 걷힌다. 안개 속에서 금발의 한 소녀가 서 있다. 넉넉지 못한 집에 태어난 소녀의 꿈은 피아니스트. 소녀에겐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음악학교 오디션,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의 부산함으로 연주에 집중하지 못하고, 끝내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는다. 숙성한 처녀가 된 소녀는 자신의 꿈을 망친 심사위원이었던 피아니스트의 페이지 터너가 된다. 물론 의도적인 접근이다. 무대에서 심리적 불안을 겪던 피아니스트에게 평온을 선물하며 호감을 산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도록! 결정적인 무대에서 자취를 감춰 복수하기 위해! 2007년 가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페이지 터너>였다.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첼리스트 송영훈이 등장하고서 첼로의 가냘프면서도 가느다란 음으로 시작하는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트리오 2번’을 연주할 때부터 머릿속 가득 물음표를 그렸다. 4악장 도입부가 되어서야 영상이 그려졌고, 영화의 한 장면을 건져냈다. 재기에 첫 번째 성공을 거두는 무대에 연주한 곡이었다! 당시에는 난해하기만 했던 곡이 영상이 아닌 공연으로 만나자 울림으로 다가온다. ‘악보를 넘기는 사람이 연주 전체를 망칠 수 있다’는 호로비츠의 말을 떠올리며 김선욱의 악보를 넘기는 페이지 터너에게도 눈길이 자주 갔다.

<7인의 음악인> 공연은 봄부터 고대하던 공연이었다. 피아니스트 정명훈 김선욱, 바이올리니스트 이유라 김수연, 첼리스트 양성원, 송영훈, 비올리스트 최은식이 모였다. 그야말로 별 일곱의 모임이었다. 한자리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흡족했다.

‘피아노 트리오 2번’ 다음으로 귓속을 뚫고 가슴에 이른 곡은 연탄법으로 연주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4번과 5번. 한 대의 피아노 앞에 정명훈과 김선욱이 나란히 앉는다. 정명훈의 오른팔과 김선욱의 왼팔이 교차한다. 전혀 보헤미안처럼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보헤미아을 유영하는 듯했다. 중간중간 급하게 악보를 직접 넘기는 그들의 손을 보는 순간이 유일하게 그들의 손을 제대로 보는 시간이었다.

같은 곡은 같은 피아노로 같은 시간에 연주하는데도 그들의 연주 모습은 대조적이었다. 연주의 감응을 몸으로도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선욱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온몸으로 표현하는데, 정명훈은 묵묵함으로 일관하였다. 움직이는 건 손가락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다정해 보이기도 반면에 엄숙함과 발람함의 충돌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정명훈의 그윽한 태도는 60여 년 만에 고국인 러시아에 귀국하여 차이코프스키홀에서 감은 눈으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하던 피아니스트 호로비츠를 그려보게 했다.

이 외에도 앵콜로 들려준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가 기억난다. 7인의 연주에 맞게 편곡한 리베르 탱고도 두고두고 끄집어낼 수 있겠다. 아, 오늘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7인의 음악인들>의 마지막 공연을 장식하는데…… 또 관람하고 싶어지는 건 공연의 후유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