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올려지는 공연들을 보면 상당히 자극적인 요소들이 많다. 외설과 예술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공연들도 많다. 하지만 오늘 본 말리극장의 <바냐 아저씨>는 정말 자극없는 극이었다.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았다. 상황을 보여주고, 관객 개개인의 판단과 감성에 해석을 맡겼다. 극의 흐름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문밖의 날씨와 귀뚜라미소리, 빗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만으로도 관객들이 몰입을 할 수 있게 하였고, 정말 최소한의 연출로 감정의 미묘한 자극을 이끌어 냈다는 점이 정말 큰 가르침이었다. 극의 시작은 배우들이 각자의 의자를 들고 나오면서 시작된다. 그 의미는 ‘이제부터 연극을 시작하겠다.‘ 라는 서사극적 의도도 있을 것이고, 또 하나 느낀점은 앞으로 시작될 그들 개개인이 느끼는 상실감과 회의감, 그리고 복잡하게 엉켜버린 그들의 관계에 대해 미리 말해주는 듯 하였다. 정말 무미건조하고 밋밋하게 흘러가는 속에서 배우들은 자신의 인물의 상처를 너무나 정확하고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무대와 자막을 동시에 보는 공연은 처음이었지만, 1부가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아 그들의 연기에 몰입하게 될 수 있었다. 등장인물 모두들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그 상처를 치유할 무언가를 갈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꿈은 꾼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이 계속해서 이야기되고, 각 인물들의 환상이 차례로 깨져간다. 1부에서는 각자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 2부에서는 그 각자의 아픔에서 나오는 갈증과 갈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구하나도 안타깝지 않은 인물은 없다. 체홉의 작품은 그렇다. 아니 대다수의 희곡들이 그렇다. 무엇이 옳고, 틀리고가 아닌 착하고, 나쁘고가 아닌 인간이기에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그 사이의 갈등에 대해 독자와 관객들이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체홉의 작품들은 상당히 동양적 정서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좋든 싫든 이 세상을 살아가야하고, 봄날이 있다면 추운 겨울날이 올 것이고, 추운 겨울을 지나면 다시 또 봄날이 오는, 만나면 언젠간 이별해야하는 정말 간단한 자연의 섭리에 대해 말한다. 이 <바냐 아저씨>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과 권태 그리고 상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체홉작품에서 주는 철학을 레프 도진은 인물 한명 한명의 상실된 시간과 그 상처를 섬세하게 해석하였고, 정교하게 표현했다. 극이 진행되는 3시간 내내 큰 자극같은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장 큰 자극이라고 할만한 것은 극 내내 공중에 떠있던 건초더미가 마지막에 내려오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극이 끝나고 난뒤 관객인 나의 감정과 가치관에는 큰 자극이 오게 되었다. 눈물이나 웃음을 강요하는 자극도 없었지만, 극이 끝나고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커튼콜을 4차례나 다시 나올만큼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었다면 관객들의 수준이었다. 굉장히 수준높은 공연이었음에도 사소한 휴대폰 전원을 끄지 않는 행동 때문에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경우가 수차례 있었다. 내한공연을 온 외국 배우들이 한국 관객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부끄러웠다.

작품성이나 공연하는 내내 집중해서 보니라 목이 아플정도 였습니다.
자막부분이 내요이 많이 나올때는 다 읽는데 좀 어려움이 있었던거 빼고는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