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 이익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갈대같은 사람들의

매정한 인심에 발린 타이먼은 결국 인간에 대한 지독한

회의와 절망에 빠져 세상을 등진다. 돈에 울고 웃는 건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를 바 없나 보다.



근데 솔직히 타이먼도 뭐 잘한 건 없다.

앞뒤 가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돈을 뿌린 건 그의 잘못.

그건 자선이 아니라 자기 만족과 과시일 뿐이다.

물론 그게 죄는 아니지만 그의 무분별한 허비가 비참한

말로를 자초한 감도 없지 않다. 그가 악한 의도로 주변

사람들에게 과도한 물질을 베푼 건 아니지만 분명한 건

그게 결코 현명한 처사는 아니었다는 사실-

결국 돈을 비롯한 물질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순 없다는 걸

타이먼의 안 좋은 뒤끝을 통해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극중 상황은 다소 과장되고 극단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우린 이 작품의 본질을 극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


Eurasia Shakespeare Theatre Company

(ESTC) 유라시아 셰익스피어 극단과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언젠가 이 극단의 작품을 관람한 적이 있다.

그 때도 같은 이유였다. 그 동안 국내 무대에서

올려지지 않은 작품이었기에 지금 아니면 보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급히 관람했었는데 그닥..;

아무리 작품이 훌륭하고 기획의도가 좋아도

그것이 무대에 올려져 관객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그건 '좋은' 공연은 아니다.

아무리 원작이 훌륭한다 한들 그것을 무대에서

관객에게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의미없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훌륭한

원작과 의미있는 기획도 배우의 열연이 뒷받침

해주지 않으면 좋은 공연을 만들어낼 수 없다.

솔직히 당황스럽다. 대사 꼬이고 버벅거리는 건

예사로운 애교로 봐야할 만큼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은 전혀 가다듬어지지 못한 수준이었다.

(주인공을 비롯한 몇몇 배우는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들의 호연만으론 도저히

전체적 부실을 상쇄할 수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 [아테네의 타이먼]은 ESTC가

추구하는 유의미한 기획의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초등학생들

학예회도 그들 나름으로선 최선의 노력을 다해

준비해서 보여지는 게 예의고 도리다.

냉정하고 싹퉁머리 없는 코멘트지만,

앞으로 이어질 공연 또한 이런 식이라면

제아무리 무대에 올려지지 않은 셰익스피어

희곡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 해도

결코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원작 희곡이 주는 감동을 가슴에 품고

고이 간직하는 게 낫지 이런 식으로 격하게

실망하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