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회를 가본다는 것이 얼마만일까.

2월경에 빈소년합창단이 수원에서 공연을 가진 이후로는 처음 가봤고, 그나마도 악기를 연주하기 위한 음악회는 아니었으니, 음악회, 아니 정확히는 악기 연주회에 가본지는 벌써 4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클래식기타리스트가 나온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 동생의 질투 반, 부러움 반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떠난 발걸음은 7시 30분경이 되어서 호암 아트홀에 도착해 있었다. 로비에 들어서자 꽤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매표석에는 '전석 매진'이라는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네 자를 당당하게 새겨놓고, 뿌듯해 하는 듯 했다. 600명 남짓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홀이기에 그다지 멀다는 느낌 없이 무대를 볼 수 있었는데, 가장 이상한 점은 불을 완전히 끄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보통의 음악회를 가면 연주가 시작되기 전, 관객의 집중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 객석을 어둡게 암전시킨 상태에서 연주를 하는데, 이건 왠일인지 불이 꺼지는 듯하다가 멈춰버린다. 켜진 것도 아니고 꺼진 것도 아닌, 책을 읽으라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정도의 상태에서 '역사적인 제 1회 서울 스프링 실내악 페스티벌'(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님의 인사말씀 중에서)은 시작되었다.



가장 처음 나온 연주자는 남성분들(김영호, 파스칼 드봐이용). 두 분이서 어깨동무를 하고 나오시는데 새삼 지금까지 봤던 연주회 분위기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는 두 분이 같은 의자에 앉으셨다! (그 좁은 의자에 둘이서!)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젓가락 행진곡이니 뭐니 친다고 한 피아노 의자에 두 명이 앉아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은 봤어도, 설마하니 세계적인 거장들이 모여있는 이러한 음악회에서 그런 모습을 볼 줄 누가 알았을까. 두 분은 마치 우리가 젓가락 행진곡을 치듯이 '연탄곡'을 치기 시작했다. 때로는 악보에 있는지도, 아니 어떻게 표현했는지도 모를 파격이 들어있었고, 때로는 마치 우리나라의 괭과리 두 명(상쇠와 부쇠)가 주고받는 듯한 '기브 앤 테이크' 과정이 있는 가운데 곡은 빠르게 전개되어 갔다.



두 번째 곡은 비올라(폴 뉴바우어)의 독주였는데 마치 중국 영화에 나오는 음악을 듣는 듯했다. 서양의 악기로 중국의 음악풍을 듣는 그 이질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어울렸다. 평소 영화에서 나오는 음악들이 비올라로 켠 곡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로 잘 어울러지는 곡이었다.

다음은 오보에(장-루이 카페잘리)와 가야금(김지현)과 첼로(양성원)가 등장했다. 지금까지 등장한 연주자들이 맨손 내지는 작은 현악기만을 들고 나오다가, 갑자기 어마어마한 거포들을 메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자 일순 웃음이 나올 뻔 했다. 뭐랄까. 부대에서 소총수들이 퇴장하고 난 후 박격포 사수들이 나오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재미있었다. 곡은 상당히 길었고, 가야금 병창이니만큼, 우리나라 특유의 '꺽임'으로 노래를 부르는 부분도 있었다. 오보에의 연주로 시작된 곡(오보에를 불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커지는 연주자의 목! 깜짝 놀랐다. 흡사 펠리칸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오보에는 정말 불기 어려운 악기인가 보다)은 시종일관 세 악기가 함께 어울어진다기 보다는 마치 가야금과 첼로가 맞받아친다는 색깔이 강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감동은 첼로였다. 사실 지금까지의 나는 '현악기' 하면 '바이올린'만 떠올릴 정도로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반성한다. 현악기에는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앞서 비올라도 그랬지만, 첼로의 그 넉넉함이란! 마치 전 악기를 아우르는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랄까. 현악기의 연주기법은 그저 활로 켜는 것 뿐이라는 나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서, 때로는 활을 놓고 마치 하프나 기타를 연주하듯 손가락으로 퉁기기도 하고, 때로는 활을 켜는게 아니라 줄을 때려서 소리를 내기도 하고, 또 때로는 마치 우리나라의 장구처럼 자신의 몸을 치는 타악기로 둔갑하기도 했다! 마치 우리 전통의 가락인 창이나 판소리를 듣는 느낌이랄까. 첼로소리는 장구로 추임새를 넣어주는 그것과도 같았으며, 심지어 오보에 소리까지도 순간 피리 소리를 듣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혔다. 정말 멋진 곡이었다! 곡이 끝난 후에도 사람들의 박수 소리는 끊이질 않았고, 한 쪽에서는 아직 공연이 다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앵콜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 다음 곡에는 바이올린(강동석, 박재홍)과 첼로(조영창), 하모니움(한동일, 피아니스트)이 등장했는데, 곡이 시작하기 전 스탭들이 올라가 부단하게 피아노를 밀어내고 풍금 비슷하게 생긴 악기를 낑낑대며 끌고 오는 모습을 보며 '참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공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적이지 않은가. 하모니움은 우리가 초등학교 때 음악시간에 사용하던 풍금을 생각하면 그 외형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소리는 그보다 훨씬 부드럽고, 옅은 편이다. 네 명의 연주자들이 연주를 하고 있지만, 소리를 마치 세 명이 연주를 하는 듯이 들리는 것 같았다. 말 그대로 '하모니'를 위한 악기랄까. 절대 앞으로 혼자 튀는 법이 없이 조용히 전부를 감싸주는 악기였다. 정말 멋진 악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가 끝난 후에는 깜짝 생일파티가 있었다. 바이올린 연주자이며 이번 페스티벌의 감독이기도 한 강동석님의 생일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오늘 출연하기로 되어 있는 많은 연주자들이 한꺼번에 무대로 튀어나오며(튀어나온다는 표현이 제일 적절한 것 같다) '생일 축하합니다' 곡을 각자의 악기로 연주하며 '오늘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의 생일입니다'라고 관객들에게 외치고 관객들의 호응을 불러냈다. 순식간에 그 홀은 생일축하파티장으로 돌변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이 함께 '생일 축하합니다' 곡을 불렀고, 연주자들과 함께 신나게 웃을 수 있었다. 정말 이색적인 광경이었다.



다음 곡은 여덟대의 첼로 앙상블과 소프라노(김수정)의 무대였다. 첼로가 저런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구나 하는 느낌에 다시 한 번 첼로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국내에는 공포영화 제목으로나 쓰였지만, 좀 더 첼로 자체를 널리 알리는 데 쓰였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의 두 코너의 메인은 역시 클래식 기타(알바로 피에리)였다. 클래식 기타는 동생이 평소 집에서 많이 치고 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이기도 해서 꽤 많이 봐왔는데, 우와! 역시 잘 쳤다. 손가락이 어떻게 그렇게 돌아갈 수 있는지! 왼손으로는 마치 주먹을 쥔 듯한 상태로 사선으로 내리긋는 부분이 있었는데, 순간 기타가 타악기인 줄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아무튼, 대단했다! 관심이 있다면, 알바로 피에리씨의 앞으로 남은 공연에 꼭 가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나름대로 유머 감각도 있는 모양인데, 곡과 곡 사이에 무슨 말씀을 하시자 사람들이 웃었다. 하지만, 나는 영어실력이 딸리는 관계로 알아들은 부분이 얼마 없다. ㅡㅡ;(영어 공부 해둘껄.)



그 다음은 바이올린(츠기오 토쿠나가)과 첼로(양성원), 클라리넷(로망 귀요), 바순(김용원), 트럼펫(유병엽), 피아노(파스칼 드봐이용)의 무려 여섯 악기가 어우러지는 무대였다. 이 블로그에서 소개할 때 츠기오 토쿠나가씨의 얼굴이 참 무섭다고(...) 표현했는데, 왠걸. 엄청 지적으로 멋있게 생기셨다. 안경까지 쓰시고. 사진도 그렇게 찍으시지는! 첼로는 앞서 가야금 병창에서도 봤던 그 분이 나왔고, 무엇보다 신기했던 건 바순! 그렇게 큰 악기였단 말인가! 처음 알았다... 아아. 무식이 들통났다. 일자로 곧게 뻗은 관악기중에 그렇게 큰 악기가 사실은 정말로 금시초문이었다. 곡은 빠른 듯하다가도 다음 악장에서 일순 느려지고 또 빨라지기를 반복하며 끝을 맺었다. 여기서 또 알아낸 것은 바이올린도 손가락으로 퉁기며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 정말... 이놈의 편협함은... 빨리 내어다 버리던가 해야지 원. 색다른 모습이었다. 그 근엄하고 진지한 얼굴로 조그마한 바이올린을 퉁기는 모습이란! 궁금하면 한 번 보시라! 앵콜 곡도 하나 있었지만, 어디선가 들어봤음직 하면서도 제목은 모르는 곡이었다. 꼭 물어보고 싶었지만, 끝나고나니 사람에 치어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쉬워라.



전체적으로 정말 '동서양과 남미의 만남'이라는 주제가 살아있는 공연이었다.

중국의 작곡가와 우리나라의 작곡가가 만든 곡들도 함께 연주되었다는 사실이 그러했고,

서양과 국내의 내로라하는 연주가들이 함께 연주한 것이 그러했고,

곡의 내용이 그러했다.

하지만, 가장 큰 실내악의 장점이란, 역시 관객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연주가들이 악기로만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연주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던 것 같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연주회였다.



서울 실내악페스티벌 소개글 보기 : http://blog.naver.com/sfaclove/90003815127

...제 블로그 홍보용으로 썼던 글인데, 재활용 할 줄은 몰랐네요.
서울문화재단의 서울 스프링 실내악 페스티벌을 주제로
블로그를 꾸미고 있습니다. 한 번씩 와서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