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 레빈은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영화화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입니다. 화려한 데뷔작인 [죽음전의 키스]나 국제적인 이목을 받은 출세작 [로즈마리의 아기]를 비롯해 [슬리버][스텝포드 와이프]등 그가 그려낸 냉소적으로 표현한 현대인의 불안정서와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기괴한 작품 분위기는 하나의 장르로 규정 되다 시피 했죠. 그의 작품 대부분은 출판되자 마자 영화 판권이 팔렸고 곧장 영화로 개봉됐으며 [죽음전의 키스]나 [로즈마리의 아기]는 몇 번씩 만들어지곤 했어요. 로만 폴란스키의 [로즈마리의 아기]를 제외하면 아이라 레빈 원작 영화들은 흥행에서나 평단에서나 그리 환영받지 못했는데도 곧잘 만들어지는 걸 보면 소재가 주는 매력이 상당한가 봅니다. 평작이었던 [죽음전의 키스]는 그렇다쳐도 웃음거리만 되었던 [슬리버]나 도통 감을 못 잡는 [스텝포드 와이프]를 보면 소재 낭비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난 주말에 본 연극 [쿠크박사의 정원]은 소설보다 극작에 주력하던 시기에 아이라 레빈이 각본에 연출까지 맡은 1967년작으로 국내엔 1979년에 실험극장에서 초연된 후 30년 만에 올려지는 작품이라고 하네요. 지금이야 극장도 많이 생겼고 마음만 먹으면 몇 년이고 극장 대관을 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극장도 별로 없어서 기껏해서 한 달 공연도 장기 공연 축에 솔할 정도였죠. 그 바람에 짧은 초연 끝에 묻힌 수 많은 작품이 있게 된 것이고요. 초연 당시엔 호평도 받고 인기도 얻었다지만 그렇다해도 30년 동안 한 번도 올려지지 않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아이라 레빈의 시나리오를 다시 올린 안목이 기특하네요. 국내에 아이라 레빈의 인지도는 소설가로서가 아닌 유명 영화의 원작자로서 호감을 얻는 것이고 [로즈마리의 아기]를 제외하면 다른 책들은 번역이 안 됐거나 쉽게 구할 수도 없으니 [쿠크박사의 정원]이 묻혀 있는 건 당연한 보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도 영상화가 된 적은 있었지만 (예매싸이트 해설과 달리)t.v영화였어요. 검색도 잘 안 되는 걸 보니 그의 원작을 망쳐놓은 영화들처럼 별 볼일 없었나 봅니다.

2008년 서울연극제 참가작이기도 한 [쿠크박사의 정원]은 한국 연극계에 이바지를 크게 한 구히서 선생의 칠순 기념 헌정 공연이라고도 하는데 그런 의미있는 타이틀에 맞게 규모도 크게 잡았습니다. 소극장용 작품을 중극장에 맞게 변형시켰고 요즘 관객들을 위해 전체적인 구성을 빠르게 전개되도록 재각색했다고 하죠. 사실 저는 구히서 선생이 누군지는 이번에 알았고 이 작품을 택한 건 아이라 레빈의 작품에 아르코 공연이란 이유때문이었습니다. 구히서 선생은 이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다는데 연극을 보면 전개만 수정했지 대사를 들어보면 초연 대본에서 벗어난 것 같진 않습니다. 그 만큼 번역극 특유의 문어체 대사가 가득합니다. 요즘 연극은 이런 식의 대사투를 듣기 힘든데 그래서 더욱이 [쿠크 박사의 정원]은 정말 옛날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게 의도적인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쿠크박사의 정원]에 담긴 뭔가 어색하고 기계적인 분위기를 고려하면 달라붙는 맛이 전혀 없는 대사가 잘 맞아 떨어집니다.

제목과 같은 '쿠크박사의 정원'은 비유로 사용될 뿐 한 번도 나오진 않습니다. 하룻 동안 일어나는 극의 모든 진행은 쿠크박사의 진료실과 거실에서 진행되요. 5명의 인물이 나오지만 극의 대부분은 쿠크 박사와 그의 제자 지미의 대립에 쏟고 있기 때문에 2인극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지미와 쿠크 박사의 대립과 역학관계는 아르코 극장의 무대를 최대한 이용해서 설계된 쿠크박사의 집 세트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동선이 크지 않고 대부분의 진행이 대사로 설명되기 때문에 휑뎅그렁해 보입니다. 부자연스러운 세트에 비해 배경음악이나 조명설정은 훌륭했습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원만하게 흐르지 못합니다. 공연 시간이 너무 짧아요. 한 95분 정도 하는데 현대관객을 의식한 각색이 설명부족 상태까지 이루어지는 바람에 극 상황이 너무 빨라져 버렸어요. 보통 붕 뜬 게 아니에요. 작품을 타이트하게 몰고 간 이유는 알만합니다.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강한 작품이고 줄거리도 한 개인이 멋대로 판단해서 한 마을을 휘어잡으며 인간의 생까지 쥐락펴락하며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의 행복이라고 외쳐대는 꼴이 군사정권 시절에는 심히 공감가는 이야기였겠지만 요즘엔 고리타분한 진행이 될 수 있을테니까요. 그래서 이번 공연은 정치적인 메시지보단 스릴러에 치중하느라 런닝타임을 줄이며 스릴러로서 충실해지려고 노력한 것 같은데 효과적이진 못했습니다.

시대에 맞는 각색은 때때로 필요합니다. 특히나 해석이 무한한 오래된 작품은 만드는 사람의 개성에 따라 독자적으로 갈리게 되죠. 이번 [쿠크박사의 정원]역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지만 결과물은 몇 년 전 프랭크 오즈판 [스텝포드의 와이프]를 볼 때처럼 앞뒤 연결고리가 잘리거나 그 끝만 겨우 남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바람에 당황스럽고 급작스러운 심리 묘사로 일관합니다. 현대 관객을 의식해 작품을 너무 빠르게 진행시키려는 강박관념에 정작 필요한 세밀한 감정 묘사까지 말아먹고 만 거죠.

한 마디로 시나리오가 부실해요. 웃어야 할 부분이 전혀 아닌데도 어설픈 대사 처리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코미디가 되어 버렸거든요. 지미가 쿠크박사의 음모를 알게 되는 장면이나 쿠크박사의 행동을 저지하려는 지미를 위협하는 쿠크 박사의 움직임, 마지막에 육탄적을 벌이는 지미와 쿠크박사의 결투 등 대부분의 장면에 섬세함이 필요한데 이 작품은 너무 쉽게 넘어가 긴장감이 살질 않습니다. 인물에게 부여될 심리 묘사를 그렇게 짤라 먹으니 지미의 눈치는 서류 몇 장 훑어보고 질문 몇개 내던지는 걸로 다 풀리고 반전으로 등장하는 쿠크박사의 음모도 너무 쉽게 자백되고 있죠. 그러니 쿠크박사의 당위성이 설득력을 잃을 수 밖에요. 리액션도 상당히 어설프고요.

이 작품을 보고 나오면서 든 생각은 시대에 맞는 각색은 필요하지만 제대로 못할 거면 그냥 원작 그대로 살리는 게 본전찾기는 될 것이란 결론이었습니다.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속담이 괜히 있겠어요.

- 티켓팅 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거의 1년 만에 사랑티켓 예매로 본 건데 세상에, 티켓을 발권안해놓고 도리어 관객 탓으로 돌리더군요. 자기네들은 연락 못 받았다면서 사랑티켓이 연락을 하던지 찾아가서 알아보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에 제가 귀를 의심했습니다. 거기다 예매확인서 출력 안해왔다고 책망하다니요. 극단 직원같아 보였는데 자기네들의 미흡한 업무처리에 어쩜 그리도 뻔뻔하고 당당할 수 있는지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쏘아 댈 수도 없었어요. 그렇다고 관극 후에 뒷북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결국 사랑티켓 창구에 가서(사랑티켓 예매자가 저 혼자도 아니었죠.)말하고 티켓을 받았는데 공연시작 정시에 겨우 들어갔습니다. 그것도 제가 예매한 자리도 아니고 아무 남는 자리 발권해서 줬다니까요. 15분 전에 도착해서 15분 동안 티켓을 못 받고 제대로 된 사과도 못받다니 어이가 없었어요. A석 예매하고 급하게 나눠준 VIP티켓도 전혀 기쁘지 않았고요. 보니까 어디서 초대권을 잔뜩 뿌린 것 같은데 정도껏 뿌려야지 허둥지둥 대는 꼴이 안쓰럽더군요.

너무 알려진 내용의 연극이어서 그랬을까.
아님 배우들의 연기가 가슴에 와닿지 않아서 그랬을까.

후반 3분의 1을 위해 앞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더뎠고, 지루했다.
후반 3분의 1 역시 비약이 느껴짐은 나만의 문제였기를...

좀더 쿠크 박사와 지미와의 논쟁이 생동감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

그래서 결론은?
쿠크 박사의 방법밖에 없다는 거 아닌가?ㅋㅋ

머그럭저럭볼만하네요..-_-;;

아내와 함께 주말 관람을 하였습니다.

더운 날씨에 즐기기 좋은 스럴러적인 요소와 함께

연극이 끝난 다음에도 술 한잔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주제를

갖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연 배우의 열연도 돋보였습니다.

자기만의 생각으로 자기자신을 합리화 시켜서 자신이 그 어느 누구 보다도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

자기 자신의 합리화가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필요하겠지만

정도껏이 겠죠

언제나 배우들에게 감사합니다

책.....[로즈메리의 아기]

기분 너무 좋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