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금희씨, 베토벤을 만나다>

나는 7살 때부터 7년간 피아노를 쳤다. 그 때는 멋모르고 항상 장래희망이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일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고된 예술의 세계를 깨달았고 깨끗이 포기했다. 7년 동안 남들처럼 체르니 모차르트 베토벤을 거쳐 쇼팽 에튀드와 왈츠까지도 배웠었던 나였기 때문에 나의 나름대로 클래식과 피아노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다. 뉴에이지나 편곡한 노래들은 아무래도 거부감이 들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꼭 클래식에 대해서 자세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 강의의 이름을 보자마자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난 수강신청을 했고 클래식 공연 감상문이 시험에 들어간다는 얘기에 내심 좋아했었다. 클래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비싼 표 값으로 그냥은 잘 못 가던 나였기 때문이다. 연주자의 유명도, 프로그램 내용까지 모두 심사숙고를 해서 10월 30일 대한민국 국제음악제를 예매를 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29일날 나는 갑자기 고열이 나서 신종플루 확진을 받고 귀가조치 되었다. 그렇게 돈도 돌려받지 못하고 가고 싶었던 공연도 놓치게 되었다. 이번에는 꼭 가야지 하는 생각을 안고 다시 공연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제목이 참 마음에 드는 공연을 찾았다. ‘친절한 금희씨, 베토벤을 만나다’ 내가 피아노를 배우면서 쳐 본 음악이 몇 곡 없지만 그 중에서 난 베토벤과 쇼팽을 제일 좋아했기 때문에 맨 앞에서 두 번째 줄이라는 황금같은 자리를 예약했다.
사실 도착해서 팜플렛을 본 순간 조금 실망했다. 프로그램은 비창 월광을 비롯해 가곡 아델라이데 그대를 사랑해 등 베토벤의 유명한 곡이 모두 담겨있었다. 유명한 곡만 담겨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대부분 사람들이 아는 대중적인 베토벤의 곡 말고도 숨겨져있는 보물같은 곡을 음악회에서 얻길 바랬다. 그리고 본 공연이 시작되었고 평소 잘 알려진 곡이라 그리고 내가 쳤었던 곡이라 편하게 들었다. 이러면 안 되지만 사실 틀리는지 안 틀리는지 손도 유심히 보고 아주 집중해서 연주를 들었다. 서양음악사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보여주신 다른 실황무대도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내가 특히 반한 두 무대가 있다. 리스트의 곡을 아주 힘차고 멋있게 치던 그 피아니스트의 무대와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의 무대이다. 이렇게 비교를 하면 안 되겠지만 그 영상을 보지 않았더라면 난 바이올린 연주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니 아주 감탄을 했을 것이다. 조금 약해 보이는 이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듣고 있으니 파가니니 변주곡(?)을 여유있는 표정까지 지으며 아주 힘차고 멋있게 연주하던 장영주가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던 것이 사실이다. 비올리스트의 무대도 있었는데 비올라는 바이올린보다 약간 큰 크기에 바이올린보다도 조금 무거운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이 프로그램에는 클래식도 연주했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베토벤 곡을 약간 변형해서 재즈풍으로도 연주를 했다. 정통 클래식을 원하던 나에게는 물론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이 음악회의 제목에 ‘친절한 금희씨’가 들어가는 이유는 아나운서 이금희 씨가 베토벤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게는 베토벤이 정말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모르는 부분까지 자세하게 소소한 일상들을 들려줄지 알았는데 사실일지 의문이 가는 사랑이야기만 들려주었다. 하지만 진실이라면 베토벤에게도 놓친 사랑이 많았고 놓쳤기 때문에 더욱 성숙하고 웅장하고 무거운 곡들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장 부러웠던 것은 여기 출연했던 피아니스트 두 명과 바이올리니스트 두 명은 가족이다. 각각 부부이고 피아니스트 한 명과 바이올리니스트 한 명이 형제인 것이다. 이것을 듣고 흥미롭기도 했고 정말 부럽기도 했다. 나는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아서 전문적으로 칠 수는 없지만 내가 치면서 내 스스로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은 가지고 있다. 나도 음악을 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어 우리가 좋아하는 곡들을 연습하고 연주하면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에 앵콜의 순서가 왔을 때 피아니스트 부부는 함께 연탄곡을 쳤는데 부부라서 그런지 호흡도 더 잘 맞고 정말 행복해 보였다. 내가 원하는 삶이 바로 각종 콩쿠르에서 일 등하는 삶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곡을 만들고 연주하며 사는 삶이었는데 말이다. 이들은 가족모임 때도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통할 것이고 시간만 맞으면 언제든지 함께 연주회를 열 수도 있으니 얼마나 큰 행복일지 모른다.
나에겐 다소 실망스러운 음악회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음악이라는 이름아래 베토벤의 음악이라는 이름아래 관객들은 모두 숨죽여 들었고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었다. 오늘 진정으로 음악을 인생으로 하는 음악가들을 보게 되어서 참 좋고 다음에는 정말 내가 원하던 오케스트라의 공연에 또 한 번 갈 것이다.

아니운서 이금희 씨의 중간중간의 곡 설명과 연주자와의 인터뷰로 지루함과 무지를 이겨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을 할 수 있었다. 때마침 서울 공연의 수익은 기부된다고 하니 연주자 뿐 아니라 청중도 따뜻함을 전할 수 있어 뜻 깊었다. 비록 보호자 동반 없이 온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두 명의 소녀들로 조금의 산만함은 있었지만 어렸을 적부터 좋은 감상을 하는 아이들을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던 연주회였다. 내년에는 모차르트의 공연으로 찾아온다니 기대되었다. 아무쪼록 베토벤의 사랑이 음악으로 완성되었다고 본인 또한 믿고, 행복해 하였기를 바란다.

클래식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너무 무거운 분위기일거라 생각했어요
음악들으면서 자야지 했는데, ㅋㅋ
그런데...웬걸요 째즈풍의 운명과 엘리제를 위하여는 무겁움보담
가볍고 즐겁고 흥겨울 정도로 감흥이 있었습니다.
애들생각이 절로 나더라구요. 같이 와서 보고싶다...^^
저런 클래식이라면. 애들도 지겨워하지 않고 즐겁게 감상할거라 생각되었습니다.
내년 모짜르트도 기회가 되면 꼭 보고 싶어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