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놉시스에 있는 내용을 배우들이 참 맛깔나게 연기를 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냥 자연스럽게.
하지만 뭔가가 더 있을 것 같았던 내용은 뼛가루가 든 택배 상자가 배달되고, 큰아들이 귀가하면서 종료한다.
뭔가 쫌 아쉬운...........
그 와중에도 연극 속 할머니의 대사와 울엄마가 늘 하던 말이 겹치면서 눈물 한 방울 또르르 ㅠ.ㅠ
다행히 암전이어서 눈물 닦을 시간도 있었다...


조금은 허무하게, 밍숭맹숭하게 연극이 끝났다. 뭐 결말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삶이 정말 저렇게 흘러갈까???
나라면??? 책을 읽어도, 연극을 봐도...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경우는 현실 속에서 있을 법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인 것 같다...

좋은 연극, 참 잘 봤다. 작가와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수고스러움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낭독공연 때 상상한 무대 모습과 실제 작품은 더욱 더 짙어졌다. 배우들간의 호흡과 오가는 감정의 간격이 거의 흡사하다. 이는 연출, 작가 그리고 배우들이 낭독공연도 본 공연 못지않게 집중해서 연습하고 참여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배우들의 감정 집중에 대한 깊이가 낭독공연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놀라웠다. 낭독공연에서 이미 배우들은 각자의 배역에 빠져있었다. 울고 또 울었다. 올해 가을 그리고 겨울, <택배왔어요!> 만이 나를 울렸고 지금도 울리고 있다. 잊혀졌고 또 잊혀져가는 것들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글을 남기는 것이다. 말들을 부유하다 사라지고 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리를 잡는다는 진리를 믿는다. <택배왔어요!>와 같은 시대상을 반영한 씁쓸한 작품은 두고두고 회자되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이미경 작가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작품을 보았다. 나를 기억하시고 인사를 받아주셨고 내가 올린 글도 보았다고 하셨다. 너무 감사했다. 사실, 그 글은 작가님이 보셨으면 하는 한 가지 이유로 올렸었는데 봐 주셨다니 너무 기뻤다.

무대는 원바닥보다 한 단을 높인 둘째 아들의 집 거실이다. 거실은 부엌과 연결되어 있고 왼쪽(관객석에서)에는 화장실로 가는 문이 있다. 그 문은 관객에게는 보이지 않게 거실의 벽과 겹쳐져 있고 무대 왼쪽 끝에 신발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현관이 있다. 현관을 나서면 거의 죽어가는 나무가 심어진 화분이 있다. 이는 둘째 아들 민후가 유기견의 뼛가루라고 생각하고 화분에 할머니의 뼛가루를 묻을 때 사용된다. 그 화분 옆에는 극의 마지막에 깨지게 되는 작은 항아리가 놓여 있다. 그 항아리는 할머니의 죽음을 예고하며 깨진다. 극에 파묻힌 관객은 깨진 항아리를 보며 이길화할머니의 죽음을 예상하게 된다. 무대 위의 작은 소품도 의미 없는 것이 없다. 극의 마지막에 무대 천장에서 모래와 비슷한 것이 미세하게 계속 떨어져 쌓이고 또 쌓인다. 모래시계에서 떨어지는 모래처럼 아주 조금씩 꾸준히 바닥으로 떨어져 모래더미가 되었다. 나는 그 모래더미가 죽은 할머니 같았다. 내가 느낀 그녀는 죽어서도 아들걱정에 집을 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방안에 들어서지 못하고 현관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이미 낭독공연을 봤던 터라, 택배상자의 등장에서부터 그 안에 있을 이길화 할머니역 배우가 걱정됐다. 며느리 송미란이 빨리 택배를 열어야 이길화 할머니가 편히 숨을 쉴 수 있을 텐데 걱정을 했다. 겨우 택배상자에서 나온 할머니는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익살스러운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음악을 만든 작곡자가 궁금했다. 할머니의 감정을 느끼면서 이 작곡을 했다면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소파와 부엌 근처를 오가며 어깨를 들썩이는 이길화는 슬프게 보였다.

‘불쌍한 내 새끼.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무서워서 떨었을까?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 집에 왔으니, 이제 따뜻할 거야.’ 납치가 됐다가 무사히 돌아온 첫째 아들 시후를 안으며 송미란은 흐느낀다. 집은 따뜻하다. 부모가 있는 집은 더 그렇다. 우리네 인생에서 ‘모든 것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가 부모 말고는 있을까. 송미란은 아들 정승일보다 시어머니 이길화에 대한 안쓰러움을 보인다. 깊어 보인다는 것이지 깊다는 말은 아니다. 이길화 할머니와 혈연이 아닌 며느리(daughter in law) 송미란은 극 중에서 시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진심 어린(?) 변명으로 자신의 행동에 이유를 붙인다. 법적인 딸은, 딸이 아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두 다리 사이에서 놓은 아들도, 아들이 아니었다.

정승일의 노모에 대한 감정의 깊지 않음은 낭독공연에서의 모습처럼 여전하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형에게 뺐긴 탓만으로 보기에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도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강아지의 설사보다 덜 걱정이 될까. 내가 아직도 ‘진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우리 외할머니의 경우가 우리 가족에만 해당되는 상황이라고 치부하고 싶은 걸까. 팽배한 현실이 어느 정도이던 나는 아직은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연극을 포함한 텍스트로 표현된 창작물에서 극적인 상황 연출을 위해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우리 사람들의 ‘보편적 인간미’보다는 캐릭터의 분명함 때문이라고, 첫째 시후가 납치 됐을 때 보이는 그의 상실감에 더 큰 임팩트를 두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엄마는 분실노인센터에 있어.’ 어머니의 죽음을 부정하며 자신의 죄책감을 곱게 접어버리는 아들의 모습에도 죽은 할머니는 아들걱정만 역력하다. ‘민후야, 우리 아들 잘 부탁해. 승일이 늙어도 같이 있어줘.’

최근에 본 <결혼의 여신>이라는 드라마에서 아버지(백일섭)가 딸(남상미)의 이혼을 무릎을 꿇고 빌면서 이혼을 하지 말라고 애원하는 장면이 있었다. 자식의 이혼을 막고 싶은 아버지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드라마에서 아버지는 딸에게 네가 이혼하면 내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사느냐며,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이혼은 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 이미 <택배왔어요!>의 내용은 알고 있었기에, 공연을 기다리며 외할머니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공연 날, 공연 보기전과 공연 본 후 외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자식들의 이혼도 몇 차례 겪으셨고 자식을 먼저 앞세우시기도 했던 외할머니는 내 전화를 받으시더니. 이게 꿈인가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 전화번호를 10분에 걸쳐 받아 적으셨고, 그 다음날 그 다다음날도 전화 오신다. 행여나 손녀딸이 자신을 귀찮아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스런 목소리는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20대 때는 사소한 일에도 그리 잘 흘려지던 눈물이 굵직굵직한 일들을 겪은 후로 잘 흐르지 않는다. 나이에 맞게 느낄 수 있는 슬픔과 감동이 있다는 진리가 몸소 체험되는 요즘이다. 또래 친구들의 결혼, 출산, 육아 그리고 이혼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은 눈물보다는 부러움과 두려움 그 즈음의 감정이 나를 멈칫하게 만든다. 그러나 부모님,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친척들과 먼저 앞서가신 조부모님과 먼저 세상을 떠난 친척들을 생각 할 때면 마음이 아프기 전에 눈물부터 흐른다. 정승일도 송미란도 그냥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성실한 사람들이다. 이길화할머니와 연관된 그들은 천하에 몹쓸 인간답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도 모두 어떤 특정한 이와 우리를 연결 시켰을 때 인간답지 못한 사람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특히, 그 연결된 이가 정승일과 송미란처럼 부모님이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지 않을까. 이해안되는 인간사에 분노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 분노를 받을만한 일을 억지로 꾸며낸 사람들은 찾기 힘들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어떤 한 지인은, 자신의 삶이 아이를 낳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했다. 남편은 없어도 괜찮지만 아이 없이는 못 산다고 했다. 그녀의 결혼식에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맹세한 영원한 사랑의 약속은 자식의 등장과 바뀐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지인은 자신이 태어나 가장 잘 한 일은 자식을 낳은 일이라고 했다. 자신한테서 이 아름다운 아이가 어떻게 태어났을지 의문이라며 슬픈 눈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면, 그들이 말한 새로운 세상에 나는 과연 입문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들며 나는 그들에 비해 너무나도 어린 아이로 보인다. 결혼한 이들은 내가 그들의 고민에 나름 의견을 말할 때마다, ‘너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몰라’ 라는 말로 내 입을 막는다. 이 작품에 대한 내 감정의 표현도 사실 그들이 수 없이 말한 그 말로 내 손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내가 흘린 이길화할머니에 대한 눈물은 그다지 슬프지 않아서 흘린 것 같다. 정말 그녀의 상황과 심정이 공감된 자식있는 엄마의 입장이라면 정말 슬퍼서 눈물을 흘릴 수 없었을지 모르겠다.

송미란과 분실노인센터 직원의 통화중 직원이 무대 중앙으로 등장한다. 무대 중앙의 거실 벽이 열리며 등장하는 그는 나에게는 시선이 분산되어 좋은 효과를 주지 못했다. 할머니와 센터 사장도 한 두 차례 뚫린 벽을 통해 무대에 등장한다. 이 또한 내 생각에는 없는 편이 나았다. 거실 벽 뒤에서 조명만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존재는 공간을 초월한 연극의 장점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같은 무대에 다른 공간의 배우들이 존재하는 것도 연극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조금 어수선하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았다.둘째 아들은 낭독공연 때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극에 천진난만함이 잘 묻어나게 연기를 해줬다. 낭독공연과 다르게 분노실인센터 직원과 택배아저씨를 두 명의 배우로 표현한 것도 참 좋았다.

마지막으로 뭐라 하며 이 글을 마쳐야 할까. 대학로 연극을 올해 가을부터 처음 접하는 나는, 짧은 기간 많은 배우들과 작가들 그리고 연출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2013년 초겨울은 몇 명의 배우들와 작가들, 연출들의 이름만을 내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를 잡게 한 시간이다. 이미경 작가님의 돌직구 화법이 좋다. 연극만이 할 수 있는 대사로 배우들을 배역에 흡수시켰고 그 배우들이 관객의 마음을 이리 저리 움직인다. 그 파동 속에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울고 웃었다.

"택배 왔어요!" (작:이미경 연출:장우재 출연:김곽경희, 김용준, 김정민, 강병구, 신현용, 황성현, 백승환, 고광준 제작:한국공연예술센터 극장: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별점:★★★★☆) 2013 봄 작가, 겨울 무대 네번째 작품이다. 네작품 중에서 가장 좋았다. "그게 아닌데" 의 이미경 작가님의 작품이다. 어느 가정집으로 새벽에 커다란 택배가 배달되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인 노인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가 집이다" 의 장우재 연출님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김용준 배우님과 김정민 배우님의 연기와 앙상블도 좋았다. 피아노 음악과 섬세한 효과음향도 극의 메세지를 잘 전달하고 있다. 하루에 세편 관람하느라고 힘들었지만 지루하지 않게 집중하고 관람 할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소개글에서 어느정도 내용은 감지되었지만 너무 슬프고 화가나고 그런 소재였던 것 같았다. 이 세상이 이렇게밖에 안되나 하고.. 주인공 아버지와 그 아들의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영화보는 것 같은 느낌이였고 제일 인상깊었어요!! 소극장치고 좌석도깔끔하고 넓은 편이라 좋았습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