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마지막날 그녀와 함께 본 사랑의 발견
너무 재밌고 즐거웠어요

<사랑의 발견>이 마지막으로 공연하는 날.
공교롭게도 이 날은 2009년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영하의 기온. 날씨가 춥기도 했고 또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는다는 쓸쓸함과 기쁨이 함께 하는 시간을 '사랑'을 다루는 연극과 함께 하고 싶었다.

독특한 캐릭터를 사실감있게 연기하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중간 중간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론 그리 감동적인 연극은 되지 못했다.
연극 시작.
빠르게 장면이 바뀌면서 5명의 배우들이 "사랑은 첫눈에 반한다." "사랑은 녹아드는 것이다." "열정적인 사람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조그만 산장 하나 지어놓고 마당에 개 한마리 풀어놓고 싶다" 라고 외치는데
이 외침은 극이 진행되면서 플롯으로 드러난다. 이런 구성은 참신했다.
하지만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영은'이의 아버지에 대한 집착(?)은 잘 와닿지가 않았다.
아버지가 무슨 이유로,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고
영은이가 그로 인해서 인생을 바람처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사실 또한 이해는 할 수 있어도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마지막 '영은'이가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내는 순간이
너무 급작스러웠다.
그렇게 십 년을 바람처럼 살아야할 정도의 응어리가
아버지 또한 영은이를 많이 보고 싶어했다는 한마디에 풀려버리는 것은 결말을 위한 플롯 전개겠지만 전혀 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배우의 눈물은 '아 연기 잘한다'의 수준을 넘지는 못했다.
'사랑은 닭갈비다' '사랑은 ~~다' 는 뭔가 그럴듯한 의미를 담고 있는 대사는 많았지만
그럴듯한 의미는 결국 없었다.
그냥 신파극 한 편을 봤다는 느낌이다.
다만 한 해의 마지막을 좋은 사람과 함께 작은 공간에서
한 편의 연극을 보면서 보냈다는 사실이 의미가 있었다. 또한 94년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동시대에 새내기 시절을 보냈던 본인에게 많은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는 것 역시 의미가 있었다.
아! 벌써 무대위에 올려질 만큼 시간이 지났단 말인가..

별점 4...(작가와 연출이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위해 하나는 비워둠.)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매혹적인 하룻밤이 있어. 저녁마다 여자들과 남자들은 잠이 들지. 그들은 마치 어둠이 추억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밤 속으로 빠져들어.
그것은 추억이네.
남자들은 때로 자신들이 여자들과 가까워진다고 믿지. 그들은 여자들의 얼굴 표정을 바라보네. 그녀들의 어깨를 감싸안으려고 팔을 뻗어. 그들은 저녁마다 상대방의 몸을 향해 돌아누워 서로 옆구리를 맞대고 잠이 드네. 그렇다고 더 깊이 자는 것도 아닐세. 그들은 단지 밤의 노래개에 불과해. 그들을 태어나게 했고, 어디에서나 무엇에나 그림자를 드리우는 보이지 않는 장면의 노예일 따름이야."

-파스칼 키냐르, '로마의 테라스' 中


Cause you had blood on your face, I had blood in my eyes.
But I could swear by your expression
That the pain down in your soul
Was the same as the one down in mine.
That's the pain,
Cuts a straight line down through the heart;
We called it love.
(네 얼굴엔 피가 묻어있엇고, 내 눈엔 피가 묻어있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네 표정을 보니
네 영혼 깊은 곳의 상처는 내 영혼 속의 상처와 같은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그게 바로 그 상처야
심장을 직선으로 관통하며 베는 상처
그것은 사랑.

-Hedwig, 'The origin of love' 中


누구든 가지고 있을 추억 아니면 사랑, 또는 사랑의 추억.
내가 바라보는 누군가는 항상 다른 사람을 바라보게 되지. 알게 모르게 그의 곁에 내가 항상 있음을 또는 있고 싶음을 은근 내비치지만, 끝내 서운한 마음으로 뒷걸음쳐버린, 영영 해결 못하고 만 짝사랑, 혹은 외사랑의 추억.
차라리 너무 뜨거워 활활 불타올라 결국은 시들고, 잿빛에 너덜너덜해져 바람에 흩날리듯 사라져버리는 그런 사랑보다 훨씬 더 우리들의 기억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사랑만이 추억은 아니지.
너무 젊은 나이 뇌출혈로 쓰러진, 코마상태의 내 친구가 지금 저 힘겨운 투쟁을 하는 대상은 죽음이 아닌, 어쩌면 사라져버릴 지 모를 기억들에 대한 공포심일지도 모른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두려운 것은 친구의 죽음이 아니라, 친구와 공유했던 수많은 기억들이 상실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인 게지.

이 연극은 다섯 등장인물의 대학시절부터의 회고를 통해 친구, 연인, 가족, 그리고 선후배 등 그런 다양한 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갈등, 사랑, 반목 그리고 화해 등의 설정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과 대비하여 반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결국 관객은 등장인물의 감정선에 살짝 동승하게 되고, 결국 10년이 지나 모여앉은 한 닭갈비집, 공유된 기억의 주체들 속에 비집고 들어가 자기도 모르게 소주 한 잔 기울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게지.

하지만, 소주 한 잔 기울여 풀어질 듯 했던 나의 자세는 오래가지 않고, 다시금 옷 매무새를 고쳐 앉게 된다. 일곱살 나이 아빠의 뒷모습만을 기억하고, 아버지에 대해 말해달라는 끈질긴 요구에 끝내 함구해 버리는 어머니로 인해 인영은 결국 10년을 방황하며 살게 되는데, 성욱은 그간의 자초지종을 인영에게 설명한다. 아버지가 자신을 그린 그림에 인영은 오열하며 결국 화해하는 모습이 부가되는데, 이는 의도와 맞지 않게 어색한 부분이 있다.

이 연극은 아까 언급한 소위 감정선의 호흡이 관객의 그것과 잘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관객은 쉽게 등장 인물과 동화되어 때로는 영은, 때로는 성욱, 또는 장수,수나,재민에 끊임 없이 감정이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감정선 안에서 일어나는 시시껄껄(?)한 에피소드와 디테일이 합세하여 종반까지 그 긴장된 균형을 유지한다. 그게 이 연극의 미덕이다.

하지만, 자칫 플롯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이라도 관객을 설득해내지 못하면, 그 흐름은 깨지기 쉬운데 그런 면에서, 딸의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입을 닫은 그 어머니의 이유는 '자신과 같은 인생을 살지 말라'는 것으로는 설명이 부족하고, 성욱이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되는 계기에 있어서 개연성이 부족하며, 아버지의 그림을 보고 오열하는 인영에게는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파이란'의 종반부최민식이 장백지의 편지를 읽고 오열하는 장면이 감동적이었던 건 반성과 회한 때문이었다.) 그리고, 관객은 이미 인영의 감정에 흠뻑 동화되어 있다. 그러니, 좀 더 긴 호흡으로 자신의 감정을 좆아간다면, 관객도 무리없이 따라 올 수 있을 것 같다.

극중의 빠른 76의 나이, 손발이 오그라드는 나이 젊은 관객들, 그리고 그 한 켠에 시침떼듯 멀거니 앉아있는 빠른 76보다 나이 많은 나.. 하지만 추억으로 인해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추억은 재산이고 그래서 나이많은 나는 이미 부자인거다.....하하하....

올해 마지막으로 본 연극 '사랑의 발견'
주요배경이 90년대 초중반 나의 대학 시절과 비슷한 시기.
한편으론 따뜻하고 한 편으론 가슴 뭉클하며 지금 나의 이야기와 비슷해서 가슴아픈..
그런 연극이었다.

개개인마다 사랑의 정의가 다르고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연극이었다.
여주인공의 사랑의 닭갈비이고 남자 주인공의 사랑은 설레임과 기다림.

남자 주인공의 사랑이 나의 사랑과 닮았다.
내 사랑은 설레임과 기다림이었는데......
해피엔딩이라 봐야 하지만 그 중간 가슴 아픈 내용은 내가 겪고 있는 아픔과 너무 닮아서..
이 연극을 보고 있는동안 수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그냥 재밌고 따뜻한 연극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각자의 상황에 대입하면 정말 가슴아픈 극이 될수도있고 기쁜 극이 될수도있다는걸 알았다.
나에겐 아픈 연극이지만 말이다.

그만큼 사람의 감정 표현이 잘된 작품이라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것이 누군가 행복하면 다른 한편에선 가슴 아픈 사람이 있을수 있다는 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지지만 세상이 공평하지 않은 것처럼 사랑도 공평하지 않다는걸 빨리 깨닫고 인정해야한다.
또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감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상황과도 잘 맞아떨어져야하는것처럼

솔직히 악역이 없는 작품이다.
남자나 여자나 제임스딘이나, 남여조연이나 현실을 잘 그리고 있다.
각자의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고 살아가는 것뿐이니까.

작가나 연출자, 배우의 의도가 어떠하든간에 관객이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사랑이 다르고 정의가 다르기 &#46468;문에 말이다.

공연후기를 적는 공간에 다소 두서없는 말을 적었지만
그만큼 이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느끼는 사람의 감정이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2009년을 마무리하면서 본 작품으로 인해 나의 2009년을 잘 정리한것 같다.
내년엔 또 다른 작품을 보면서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2009년을 정리하게 해준 극단에 감사한다.

focus9@hanmail.net

공연의 굶주려 있는 어린양에게.. 파타스틱한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세요~!!
꼭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