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5개월째인 친구를 위해 클래식 콘서트를 찾다가 때마침 서울시립의 공연이 눈에 띄어 별생각없이 예매를 했다. 주로 재즈공연장만 찾다 보니 클래식..게다가 오케스트라는 정말 오랫만이었다. 은근히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또 기대도 되고.. 암튼.. 가벼운 마음으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엘 도착.. 몸이 무거운 친구 덕분에 안타깝게도 공연시간에 몇분 늦어버려서.. 첫곡은 밖에서 들어야만 했다. 첫곡은 setlist와 달리.. 유일하게 아는 '볼레로'가 나왔다. 밖에서 듣는데도 어찌나 감동스럽던지..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15분 정도 지나자 첫곡이 끝나고 겨우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후에 흘러나온 '라발스'와 '치간느', '다프니스와 클로에'..사실 볼레로만큼의 감동은 없었지만.. 어찌됐든 정말 아름다운 곡들이었다.
프랑스작곡가 라벨.. 사실 이 공연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음악가이다.. 요즘의 그의 다른 곡들을 찾아서 듣는다. 아는 사람의 공연을 찾는 게 일반적인 경우겠지만.. 이번 공연을 계기로 아름다운 음악과 음악가를 알게 된 것만 해도 나에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처럼 마에스트로정명훈님은 편안하고 인정넘치는 음악을 전해주시는군요

지휘/정명훈
바이올린/스베틀린 루세브
연주/서울시립교향악단

<프로그램>
라 발스
찌간느
볼레로
다프니스와 클로에


드뷔시와 라벨. 이 두 프랑스 현대 작곡가의 음악은 늘 나에게 수면제와 같다. 보통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이 수면음악의 대표적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험결과(임상대상은 본인임) 드뷔시와 라벨의 곡이 더 수면 효과에 좋은 걸로 밝혀졌다. 아마도 선이 불분명하면서 뭔가 좀 흐트러진 흐리멍텅한 느낌의 음악이 좌뇌의 불필요한 기억들을 없애는데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는 개인적인 소견이다. 하지만, 약간 고전적인 라벨 음악들보다는 역시 정통 인상파 작곡가인 드뷔시의 작품들이 한 수 위라는 것은 부인할 수 밖에 없음.

한불수교 120주년 기념이라는 정치성이 좀 가미된 음악회라 객석의 상당수는 관련 인사들로 채워진 것 같았다. 120년전 이면 1800년대 후반, 흥선대원군, 고종때부터 교류가 시작된 거 같은데... 와... 프랑스와 수교를 맺은지 오래되었구나. 역시 올해는 서울시향을 본격적으로 감독하시면서 한국과 프랑스 국경을 수시로 넘나드시는 한불수교 기념 문화축제를 대표하시는 우리 정명훈씨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라벨의 밤 답게 프로그램의 선두주자로는 스페인의 무곡을 뜻하는 볼레로를 세웠다. 알다시피 지난 정명훈&서울시향의 광복절 기념 음악회에도 한 번 시범을 보인 적이 있고 라벨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곡이기도 하다. 플룻의 약한 음으로 시작하여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 트럼펫, 트럼본 그리고 투티로 번져가는 격렬한 리듬속에 그 야시시한 볼레로의 마법으로 조금씩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두번째 작품 찌간느는 라디오 프랑스필의 악장인 루세브가 바이올린 협연으로 연주했다. 서두의 솔로 부분은 마치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싸늘한 분위기로 시작되지만, 곡이 흐르면서 분위기는 사라사테의 찌고이네르 바이젠 풍으로 흐른다. 어찌보면 라벨 작품들의 특유의 색채보다는 독일 낭만음악풍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루세브의 연주는 극적인 드라마틱한 모습은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빠른 연주 속에 스타카토와 보잉을 여러번 넘나드는 테크닉컬한 기교는 훌륭했다.

라 발스. 난 이 곡을 들으면 왠지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에 있는 왈츠와 좀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귀족들이 파티에서 추는 우아한 빈의 왈츠가 아닌 뭔가 불안하고 냉엄한 분위기 속에서 남몰래 숨어서 춤같은 그런 분위기 말이다. 라벨이 접했었던 1차 세계대전(운전병으로 참여했다고 함)이라는 사회적 배경과 냉전으로 이어지는 소련의 사회주의적인 분위기와 어느 정도 연장선에 있을지도...

2부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전곡 연주는 아니었고 발췌곡으로 하다보니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끝냈다. 코러스는 생략. 이 곡은 발레하고 같이 보면서 즐기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요즘 정명훈&서울시향이 베토벤 교향곡에 에너지를 집중해왔던 까닭에 라벨의 관현악곡들을 잘 소화해낼 지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기대 이상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늘 좀 아쉬웠던 목관악기의 음색도 그런데로 괜찮았다. 클래식 매니아들 보다 점잖은 "人士"들이 대거 참석한 공연이다 보니 다른 정명훈씨 공연처럼 열광적이기 분위기보다 그야말로 우아함으로 마무리 했다. 공연 시간도 2시간을 채우지 못해 좀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최근 자주 접할 수 없는 프랑스 음악들을 객석에서 직접 들을 수 있어 좋았던 거 같다.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