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이강백 선생님은 한국 희곡사에서도 매우 도드라지는 특출난 극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최고의 희곡에, 백수광부 특유의 아름답고 아이디어 가득한 연출,
뛰어난 배우진까지... 이런 어느 구석 하나 빠지는 것 없는 공연은 만나기 힘들지 않나 생각합니다.
봄은 지나가고, 떠나간 아들들은 돌아오지 않고, 억압적이었던 아버지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고...
그렇지만 또 새로운 생명이 소녀의 뱃속에서 자라고
<봄날>의 세계는 이어져 나가겠죠.
많은 정치적 함의와 인생 본질의 탐구가 들어있어
곱씹을 수록 울림이 남다른 작품입니다.

무대 한켠에 은은한 불빛 머금은 낡은 초가&nbsp;한 채가 서 있다.
왼쪽으로는 황토빛 비탈을 타고&nbsp;나지막한 언덕이 펼쳐져 있다.
지붕 위에는 박이 하나 덜렁 올라앉아 있고 집 뒤쪽으로&nbsp;헐벗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게 다다.
단순하고 평범한 이 공간에서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연극이 진행되었다.&nbsp;&nbsp;

봄이다.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근질근질한 봄날이다..
세상이 따뜻한 햇살을 받아 사르륵&nbsp;꾸벅꾸벅..&nbsp;
온통 나른한 잠에 취하게 하는 봄날이다.&nbsp;
"봄이 싫어.
나른한게 귀찮기만 하구."
마당에 벌렁 누워서 널부러져 있는 5형제..
누렇게 색 바랜 허름한 옷을 입은 건장한 다섯 젊은이들에게 잔뜩&nbsp;잠이 들러붙어있다.

아버지가 멀리 출타 중인 어느 봄날..&nbsp;
아들들은 일만 잔뜩 시키고 밥도 제대로 안 주는 노랭이 아버지 흉을 보며
뒹굴뒹굴 마당에 누워 투덜대고 있다.
"봄이 되면 배는 고프고 할 일은 많아."
"봄이 몇 번이나 바뀌어야 이 땅이 우리 것이 될까?"
둘째는 계속 흙담 위에 올라앉은 구렁이를 바라보며 걱정을 하고
다섯째는 이도저도 다 귀찮아 잠만 자고싶다고 널부러지고
여섯째는 아버지 몰래 장닭을 잡아먹자고 형제들을 부추기고
천식을 앓아&nbsp;병약한 막내는 며칠째 활활 타오르고 있는 청계산의 산불을 바라보며
왜&nbsp;불을 안 끄나 궁금해하고...

7형제의 첫째인 큰형은 오래 전부터 여섯 동생들을 어머니처럼 자상하게 돌보고
집안 살림을 꾸려가며 아버지의 성정을 잘 알고 거스르지 않는다.
"봄은 한철이다. 여름도 있고 가을도 있다."
첫째는 아버지에게 반기 들자는 동생들의 말에 쉽게 동요하지 않고
그림자처럼 잔잔하게 자리하며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nbsp;
너무도 오랜만에 보는 정통연극...
솔직히 모두가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아닌 저마다의 목소리를 중얼거리는
연극에 흐르는 이 심심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어찌 이해해야 좋을까?&nbsp;
오랫동안 빠르고 역동적이고 떠들썩하고 화려한 뮤지컬에 눈과 마음이 길들여진 탓에
처음엔 잔잔하게&nbsp;풀어가는 텅 비어있고 조용한 연극이 낯설어 뚱하게 앉아있었다.
아..
그런데 극이 흘러가면서 서서히 눈과 마음이 온통&nbsp;무대 위로 쏠리기 시작했다.
차츰 은은히 스며드는 가슴떨림을 느끼게 되었다.&nbsp;
배우들이 하나씩 일어나 봄을 노래한 시인들의 시들을 읊었다.

아버지가 돌아왔다.
"봄날은&nbsp;짧다. 노곤하다고 자빠져 있으면 곡식 때를 놓쳐~"&nbsp;
나른하게 풀어졌던 봄날의 기운이 확 팽팽하게 땅겨지며 긴장이 흐른다.
아들들은 카랑카랑 내질러지는 아버지의 고함소리에 쫓겨 허둥허둥 밭갈러 나가고
아들들이 못마땅해 한바탕 퍼붓고 기세 등등한 아버지 곁에 모든 걸 견뎌내는 첫째가 있다.
특별난 유머나 재미 욱신욱신한 감칠맛나는 대사가&nbsp;아닌 데도
각&nbsp;배우들의&nbsp;물오른 구성진 연기에 눈이 쏠려 점점 극의 묘미에 빠져들었다.
&nbsp;&nbsp;
독선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절대 권력자 아버지는 자식들을 닦달하지만
이미 젊음은 사그라들고&nbsp;점점 시들어가는 자신의 몸이&nbsp;걱정이다.
아버지가 첫째와 함께 회춘의 방법을 찾으러 무당을 찾아갔다 돌아오는 길에
자꾸 고꾸라지는 몸이 서럽다. &nbsp;&nbsp;
팍 쪼그라들고 기운 빠진 야윈 아버지..
든든한 첫째는 그런 아버지를 가뿐히 업고 언덕을 내려온다.
포스터에도 실려있는 유명한 장면..

청계산의 오랜 산불로 백운사마저 불타버려 굶주리고 오갈 데 없는&nbsp;스님들이
그동안 주워길렀던 동녀를 7형제가 사는 집에 잠시 맡기고 떠난다.
호기심 어린 형제들은&nbsp;동녀에게 관심을 보이고 막내는 첫눈에 반해 애틋한 감정이 움튼다. &nbsp;
하지만 젊음을 되찾고싶은 아버지는 온기를 얻으려 동녀를 품고 잠이 들고
은근히 동녀를 사모하게 된 막내는 피를 토하며 울부짖는다.
자신의 회춘을 위해 돈을 아낌없이 쓰고 자식들에게는 인색한 아버지..
너무나 미운 아버지..&#65279;
들썩들썩&nbsp;부글부글.. 봄이 깊어갈수록 아버지를 향한 원망의 마음은 점점 치달아올라
아들들은 꾀를 내어 회춘에 좋다며 아버지를 속여 그&nbsp;눈에 송진을 바르고
아버지가 구들장 밑에 감춰둔&nbsp;항아리 속 돈을 가지고 도망쳐버린다.&nbsp;

돈을 훔쳐 대처로 떠난 다섯 아들들은 뿔뿔이 흩어져 저마다 새로 시작해보지만
그 삶은 여전히 녹록치 못하고 마냥 고달프기만 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 봄날처럼 집 떠난 아들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니, 차마 돌아오지 못하는 것일 수도...... .
"아버님 전상서.."
부치지 못한 편지로 대신하는 아들들의 눈물 어린 독백은 정말&nbsp;가슴&nbsp;시린 명장면이다.&nbsp;&nbsp;
&nbsp;
세월이 흘렀다.
타는 봄이 가고 여름이 오자&nbsp;떠났던 백운사 스님들이 동녀를&nbsp;데리러 왔다.
극 중 유일한 여자출연자인 동녀는 있는 듯 없는 듯&nbsp;무척 상징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고깔과 꽃가지와 동그마니 수그린 그 모습만 드러내던 동녀는
이 연극에서 가장 시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인 듯 보였다.
"스님, 저는 안 가요."&nbsp;&nbsp;
동녀는 막내와 혼인하여 아기를 가졌고 막내는 동녀를 위하여 살구를 따러 나갔다.
첫째는 장을 보러가고 늙은 아버지는 마루에 앉아 빨래를 너는 동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맴맴맴맴.."
봄이 가고 여름이 와도 떠나간 다섯 아들들은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는다.&nbsp;
웃통을 벗고 앙상하고 야윈 몸을 드러낸 채 꺼져가는 끓는 목소리로 아들들을 그리워하는
늙은 아버지의 마지막 대사가 가슴을 울렸다.
"그 놈들 잘들 있는지...가끔 소식이라도 알려줄 것이지...무심한 놈들...
그놈들 죽기 전에 얼굴이나 다시 봤으면..."
희미한 그 목소리는 애끓는 매미소리에 묻혀간다.
&nbsp;&nbsp;
아아.. 참 좋구나.
연극이 끝나고 사람들이 다 일어나 자리를 뜨는 동안에도 쉬이 일어나지 못하고
시적인 아름다운 연극의 감흥에 취해 흐뭇한 마음으로 텅빈 무대를 바라보았다. &nbsp;
1984년 초연 이후로 오랜 세월&nbsp;동안 내로라 하는 숱한 배우들이 거쳐가고
수없이 무대 위에 올려진 이 아름다운 연극 <봄날>의 힘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겠다.&nbsp;&nbsp;
하얀 한지 위에&nbsp;방울방울 떨어져 번져가는 은은한 꽃빛 물감의 자취 같은 연극..
짧지만 여운이 오래 남는 가슴 촉촉한 단편소설을 읽고난 기분이 드는 연극..&nbsp;
기회가 오면 이 아름다운 작품을 꼭 보시기를...

항상 극단 백수광부의 연극들을 참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즌에 새롭게 연출한 연극 봄날도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봤어요~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오현경님이 주연으로 공연을 해서, 더욱 더 재미있게 공연을 봤어요. ^^

그리고 연출자 이성열님의 이름을 들으니 공연에 대한 믿음이 갔습니다.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는 참신한 연극이었어요.

제가 상상한 이상의 감동과 재미를 선사받았어요!!!

요즘들어 연극공연은 대개가 젊은층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더군요.

그런데 이 연극은 중장년층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연극이라 공감도 많이 되고..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도 되서 너무 좋았어요.

특히 주인공인 오현경와 이대연씨는 연극계의 거성이시죠~

이번 연극에서 다시 뵐 수 있다니 너무 반가웠어요 ㅎㅎㅎ

연극 속 깊이있는 인간 내면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어요~^0^*

연극 봄날에는 유명한 연극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시니, 역시 이름값을 하더라구요.
탄탄한 구성과 개성넘치는 캐릭터가 있는 공연이었어요.
이렇게 훌륭한 연극을 공연한다는 사실에 관객으로써 자부심을 느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관해서 심도깊게 다룬 동시에 코믹적 요소까지 적절히 가미한 작품인 것 같아요~
좀처럼 알기 힘든 우리네 인생을 감성적인 연극으로 새롭게 그린 작품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특히 줄거리와 연출이 독특해서 마음에 들구요.
연극 속 주인공들의 삶을 간접적이지만 생생한 감동을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