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극은 ‘제2회 대한민국 연극지회 협동공연’으로 ‘대한민국 연극 네트워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올라온 작품이다. 지역 간의 연극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연극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자 시작된 사업이라고 한다. 이 네트워크의 기치가 참 마음에 든다. 여타 분야도 통합이 힘들긴 마찬가지겠지만, 창작을 하는 분야의 통합은 더욱 힘들 것 같다. 창작이란 무에서 창조되는 유형의 것들(무형일수도)이므로 각자의 창작물에 대한 설명과 이해 그리고 소통들을 겪는 모든 과정들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누군가를 믿거나 그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것에 대한 안정감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시기와 질투, 그리고 파국. 이 연극에서는 믿음의 흔들림이 시기와 질투를 만들고 죽음과 후회로 끝을 맞는다. 한때 믿음이었던 감정은 한 끝 차이로 불신이 되어 파국에 이르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 연극이 공연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로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셀로의 데스데모나가 문득 그리워,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오랜만에 펼쳐 들었다. 그리워 찾았던 데스데모나는 텍스트 속에서 내 예전 기억보다 더욱 더 절절하게 자신의 정절을 울부짖고 있었다. 혹시나 오셀로 공연이 있을까하여 검색해보니 공연 중인 각색 작품이 있었다. 신기하고 놀란 마음에 바로 예매를 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연극에서 자주 활용되는 방식이었다. 각색된 오셀로는 연극배우들이 공연연습을 하며 그 배역과 삶을 구분하지 못해, 일상생활에서 작품과 비슷한 갈등과 결과에 이르는 작품이다. 현실과 공연연습, 두 역할의 배우가 자연스럽게 오고가는 지점을 관객이 알아차리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들지 모른다. 이아고가 어떤 음모를 어떻게 음모를 꾸며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를 갈라놓았는가, 가 아니라 데스데모나역의 혜림을 사랑한 카시오역의 성호가 오셀로역의 귀선과 혜림을 파국으로 이끌었는가, 가 이 작품의 주요 관점이다.

원작 오셀로에서,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애초부터 의심하고 있지 않았을까. ‘왜 이렇게 아름답고 부족할 것 없는 여자가 나 같은 남자를 사랑할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지 않았을까.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는 정도는 한참 모자랄 것이 분명하다고 오셀로는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의심하는 것처럼 위태로운 순간이 또 있을까. 극단은 다른 방향의 극단으로 치닫기가 이리도 쉽단 말인가. 오셀로의 데스데모나에 대한 애초의 믿음은 뿌리가 깊지 않았기에 이아고의 미끼를 물었다. 오셀로는 이아고가 움직이는 낚시대의 방향대로 대책없이 움직이다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믿음의 뿌리를 뽑혔다. 카시오는 백인이고 자신은 흑인. 이아오역의 배우 권섭은 젊고, 오델로역의 자신은 늙었다. 혜림은 자신과 있을 때보다 권섭과 더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멀리서 바라보는 그녀는 더욱 아름답고, 그녀의 아름다움은 그를 더 옹졸하게 만든다. 이분법적인 구분이 만든 잘못된 열등감. 열등감은 자신의 문제인데, 그 문제로 인해 귀선은 오셀로처럼 자신만을 원하고 사랑하는 혜림을 죽이게 된다.

흑인장군 오셀로의 데스데모나에 대한 인종적인 열등감을 이 작품에서는, 20살 이상의 나이차로 설정해 놓았다. 나이가 많은 귀선은 주위 사람들에게 인생선배이자 연극선배로서 존중받으면서도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은연중에 주눅이 든다. 참 잔인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종의 열등감이나 나이의 열등감, 이 모두 의지로 선택할 수 없다. 인종은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것이고 나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연히 들게 되는 것이다.

혜림은 그녀가 사랑하는 귀선을 제외하고도 다른 두 명의, 관심을 넘어선 집착을 받고 있다. 카시오역의 성호와 로드리고역의 준현이 바로 그들이다. 그 둘은 그녀를 갖지 못할 바에 망가뜨리고자 한다. 그들이 혜림을 사모한다는 것은 혜림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 성호는 사실 이아고역을 맡고 싶었다. 이아고역은 희곡고전에서도 평면적인 악역에 해당한다고 한다. 평면적이라는 말은 상황과 작품의 흐름에 따라 성격과 행동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작 오셀로에서, 이아고는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를 파국으로 이끄는 주요한 배역이므로 연극배우로서 욕심이 나는 배역이다. 그래서 성호는 이아고역으로 캐스팅된 권섭을 시기한다. 귀선을 움츠러들게 만듣는 권섭의 빛나는 젊음을 계략의 무기로 삼아 성호는 귀선에게서 혜림에 대한 불신을 이끌어 낸다. 치기어린 열정을 지닌 어린 배우 준현의 혜림에 향한 연정을 이용해 성호는 체계적인 계획을 세운다. 그는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품고 있던 혜림을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귀선선배가 차지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긋난 질투심은 모두를 혼란에 빠뜨린 모든 사건들의 시발점이 되었다.

혜림은 귀선만을 사랑한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선택을 인정하지 않는 부모님과도 연을 끊었다. 그녀의 마음은 데스데모나와 일치한하다. 귀선의 질투심으로 자신이 의심받는다는 것을 서서히 느끼지만 혜림은 자신의 진심이 그의 감정을 되돌려 놓으리라 믿는다. 그녀의 그에 대한 감정은 점점 깊어지기만 한다. 그녀의 진심의 깊이는 그의 불신의 깊이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깊어진다. 죽음을 예상하고도 오셀로와 밤을 함께한 데스데모나처럼 담담하게 오셀로의 데스데모나를 연기한다. 그러나 연습 중에 귀선은 그녀를 죽인다. 두 남자의 계략에 빠진 혜림은 그녀 뱃속에 있는 두 사람의 아이와 함께 죽는다. 귀선의 불신은 그를 두 명을 죽인 살인자로 만들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들에게 나는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믿음을 맹세할 수 있는가. 내 자신의 감정과 행동도 자주 이해를 하지 못하는 우리가 상대의 마음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을까. 단순히 이아고의 계략에 빠진 착한 오셀로의 비극인가. 성호의 질투심에서 유발된 귀선의 불신으로 인해서 생긴 예상된 비극인가. 애초부터 자신의 여자를 믿지 못한 것은 오셀로가 아닌가. 불신의 씨앗을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는 애초에 귀선이 아닌가.

이 작품에서 조연출역을 맡은 여배우의 역할도 주목해야 한다. 연극과 사랑에 빠진지 얼마 되지 않은 연기지망생 조연출역을 맡은 여배우는 이 비극적인 오셀로의 연습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고향인 지방으로 내려가는 상황에서 이 극의 마지막 대사이자 자신의 마지막 대사에 나는 놀랐다. ‘저 아이를 가졌어요. 이 모든 상황을 봤지만, 연극을 그만두지는 않을 거예요.’ 이 마지막 대사는 내게 크나큰 울림을 주었다. 이 대사의 고전 오셀로와 각색된 오셀로를 뒤엎을 만큼이었다.

‘그래서, 잤어?’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현실에서도 나의 파트너가 내가 아닌 다른 상대를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많은 이들은 이 질문을 하곤 한다. 그 순간에 그들에게는 상대의 감정보다 ‘잤는지’의 유무가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한 명 이상의 이성과 만나는 사람들을 두고 더러는 ‘더럽다’ 라는 말로 그들을 일컫는다. 사람의 몸이 본능에 움직이는 결과 일뿐일지도 모르는 것이 과연 우리의 몸을 더럽히는 것일까. 관념적인 표현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보고는 싶다. 오셀로는 데스데모나가 자신을 속이고 다른 이를 마음에 품고 있다고 오해한다. 그 오해의 중심에는 그녀의 몸이 다른 남자로 인해 더럽혀 졌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하지 않나 싶다.

내 감정의 표류도 어쩌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나는 상대를 전적으로 믿을 수 있을까. 오셀로의 열등감은 모든 것을 비교한 후 줄 세우는 사회가 만들어준 것이다. 인간은 믿고 믿어지길 바라지만 믿을 수 없고 믿어지지 못하는 상황에 억울해 한다. 이것이 인간인가. 나약하고 또 나약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믿음’ 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상대에 대한 믿음과 불신, 모두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선문답식의 대답이 나도 창피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