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접어든 여자들의 심리묘사가 돋보이며, 우리들 주변의 이야기로 녹아드는 느낌이다.


남미정은 ‘나’를 모티브로 한 작품의 ‘나’의 역할을 ‘내’가 연기하는 느낌에 대해,

“내가 연기한다고 하니 할 수 있는 이야기”라 했다.

1인극 페스티벌때 놓친 공연이라 기다리고 있었는데 빠르게 재공연을 한다니 무조건 예매하게 됐네요. 데뷔때부터 찾아보고픈 배우로, 제목과 관련해서 뜬금없이 떠오르는 까마득한 기억 하나, 오구 초연때였나? 그때의 그 귀여운 어르신의 손가락 연기, 햇살 아래서 너무나 예쁜 수현의 모습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40대 미혼, 부모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업이던 동네 슈퍼를 물려받아 2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어떤 여자, 수현의 이야기이다. 밤이 되면 신호등의 불빛에 눈을 깜빡이며 지새우고, 낮에는 부족한 잠을 메우면서 적당한 수준만 되도록 슈퍼를 운영한다. 그냥 쉽게 말해서 특별한 자극도 의지도 의욕도 욕심도 없어서 적당히 살다 언제 죽더라도 별로 아쉬울게 없을 것 같은, 평범함을 넘어 존재도 희미해지는 여자인 셈이다.
그랬던 이 여자의 삶에 매일 2100원씩 주며 담배를 사 가는 남자가 나타나면서, 뭔가 변화가 생긴다. 안 입던 옷과 신발을 꺼내고, 안 하던 화장을 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슈퍼에 새로운 상품을 들여놓고, 그것을 이용한 요리법을 개발하여 알려주기도 하고... 나이 40대 중반에 슈퍼에 찾아온 남자에게 연정을 품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 남자에게 애인이 있다는걸 알고나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 여자의 학원에 등록하여 한국무용을 배우면서까지 그들에게 접근하려고 한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주인공 여자의 입장에서는 별로 훈훈하지 않은, 어찌 보면 상당히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몰려간다. 남자도 잃고 건강도 잃어버린, 그래서 매우 실의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전까지만해도 아무런 자극 없이 그냥 숨을 쉬니까 살아있었던 것 같은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비록 긍정적인 결과는 아니었지만 뭔가 활기를 가질 수 있는 이벤트가 있었다는 것과 그것으로부터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한국무용을 발견했다는 점만으로 극단적 자극을 딛고 다시 삶을 살아가도록 결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거나 무기력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그래서 도리어 그런 충격이 삶의 의미를 알게 해준 것? 그런 느낌이었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여자의 삶은 그 자체로 이미 극적이다. 하지만 이 연극 ''당신의 손''은 그 이상의 감동을 주는데, 아마도 이 작품이 1인극이라는 점 그리고 1인극을 하는 배우의 안과 밖을 딱히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극 속 인물인 수현과 그를 연기하는 배우 남미정이 나뉘지 않고 섞여 있어, 수현의 고민이 배우의 진짜 고민처럼 느껴지고 수현이 의지를 갖는 모습 역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물론 나이가 같더라도 동네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수현과 극단의 리더이자 연출이자 수많은 수상경력을 가진 남미정 배우가 동일하게 보이지는 않고, 그럴리도 없다. 다만 쉽지 않았을 배우로서의 삶을 지금까지 꾸려왔을 그의 노력과 의지가 수현이라는 인물이 마지막에 보여주는 무기력의 극복과 새로운 의지의 충만이라는 형태로 바뀌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극 속에서 수현이 겪은 감정의 기복이나 투병, 실연 같은 형태는 남미정 배우가 지난 몇십년 간 연기를 해오고 작품을 만들면서 겪었을 동일한 감정의 표현으로 보이고, 결국 그것들을 극복해내고 새로운 삶을 계속 영위해나가려는 모습 역시 이 작품을 또 하나의 계기로 삼아 계속 배우와 연출로서의 역할을 해나갈 것을 다짐하는 남미정 씨의 다짐으로 읽힌다.
이 작품 스스로도 그런 것을 의도했을 것 같은 것이 막 올리기 전부터 배우 대기실을 보여주며 공연을 준비 중인 남미정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시작할 때도 후배 배우가 남미정 씨의 경력을 소개하며 의도적으로 배우와 인물의 경계를 흐리는 것 같았다. 작품의 중후반까지도 계속 되는 이런 시도를 보면서 역시 수현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배우 남미정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연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이 작품은 남미정 씨가 거의 혼자 이끌어가는 1인극이 아니던가!! 마치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대사로 내내 작품을 만들어가는 배우, 정말 마치 자전소설을 극화한 것 같은 인상이었다.
사실 이렇게 현실과 극의 공간을 섞는 듯한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작품 속과 밖은 명확하게 구분하여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작품처럼 묘하게 그것을 섞은 듯 하게, 아닌 듯 하게 보여주면서, 작품의 이야기를 현실의 배우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하는 것 같은 모습은 그 배우에 대한 신뢰감과 함께 극에 대하여 몰입하게 해주는 좋은 장치이기도 했다. 항상 그런 시도를 배격해야하는 것은 아니겠꾸나 하는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작품이었던 셈이다.

배우 입장에서도 이런 작품을 만나서 연기할 수 있다는게 참 색다를 것 같은데...
만약 다른 배우가 하는 이 작품의 연기를 보면 그 때는 어떤 느낌을 갖게 될지 궁금해졌다. 그 때에도 이렇게 자전적인 느낌일까, 아니면 또 하나의 평범한 1인극이라는 느낌일까.

* 기록...
배우 - 남미정, (조성현). 작/연출 - 김수희.

"당신의 손" (부제:배우 남미정의 모노드라마 작,연출:김수희 출연:남미정, 조성현 제작:극단 미인 극장:게릴라극장 별점:★★★★☆) 지난번에 너무 재밌게 본 "어디가세요 복구씨" 를 만든 극단 미인의 사람 사는 이야기 연작 2번째 작품이다. 동네 슈퍼를 운영하는 중년의 여자 이야기다. 극장에 들어서면 무대 중앙의 화면에 분장실에서 준비중인 배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공연이 연극이지만 배우가 직접 공연을 만들어 간다는 느낌을 주는 이중적 장치이다. 중간의 무대감독 역할도 이런 구조를 반영한다. 역시 공연내내 본인의 이야기처럼 극을 이끌어가는 남미정 배우님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좋았다. 모노드라마 지만 지루하지 않고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저는 연기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요즘 이런저런 마음의 스트레스로 나만의 힐링캠프에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저런 공연을 검색하던중 제가 제일 존경하는 남미정선생님의 공연이 대학로의 작은 소극장인 게릴라극장에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바로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이번 공연은 배우 남미정의 모노드라마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기대감을 갖게 했습니다만
공연을 관람하고 나니 그 이상의 것이 저를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한 배우가 90분이 넘도록 극을 이끌어 간다는 것은 어느 배우나 할 수 있지만, 90분 내내 관객을 집중시키고 자신의 에너지와 호흡을 관객과 공유한다는 것은 어느 배우나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역시나 달랐습니다.
관객들에게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고였습니다.
지금도 수줍게 등장해 우리들에게 귀한 시간을 연극쟁이인 당신에게 내주어 감사하다는 인삿말로 극을 시작한 그녀의 모습이 뇌리에 깊게 박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지금 머리가 무겁고 마음의 힐링이 필요한 분이라면 그녀를 찾아가세요
당신에게도 손을 내밀어 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