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극 100년 재발견 시리즈 중 다섯번째로 1914년에 공연했었던 신파극 ''눈물''을 발굴하여 올리는 무대이다. 당시의 원전을 그대로 무대에 올리는 ''1914 눈물''과 지금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2014 눈물'', 두 작품이 연달아 올라간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물''이라는 작품 자체가 이상협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각색한 연극인데, 당시의 (각색)원본을 찾을 수 없어 ''1914 눈물''에서는 원작을 최대한 반영하면서 당시의 분위기를 고려하여 새로 각색한 내용이라고 한다. 아무리 원작을 반영한다 하더라도 대사나 지문까지는 완전히 재현할 수 없었으리라는 점에서 원본이 아니라는 부분은 아쉽지만, 그래도 당시의 사회상이 반영된 대사들은 남아있을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게다가 연달아 이어지는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다면, 비교해보는 재미 또한 있지 않겠나. (뭐, 나는 ''1914 눈물''만 보고 나왔지만... ㅡ.ㅡ)
이렇게 비교하는 재미와 옛 작품을 다시 보는 재미가 함께 있었을 이 시리즈를 좀 더 빨리 알았다면 다른 작품들도 보고 그랬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또 더해지기도 한다. ㅎㅎ

내용은 매우 신파스러워서, 연출의 말처럼 지금 시대에 비유하자면 아침 드라마 또는 주말 저녁의 흔한 막장 드라마에 딱 어울릴 것 같을 정도이다. 가난한 남자의 부잣집 딸에 대한 의도적인 접근,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고 난 뒤 피는 바람, 새 여자의 모략에 의하여 맨몸으로 쫓겨난 조강지처, 그리고 또다른 남자를 만다는 새 여자, 남자의 감금과 갈취, 뜬금없는 회개와 급전환 등등등, 어느 것 하나 모자라지 않는 딱 현대 막장 드라마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런 ''막장 드라마다운'' 내용이라는 이야기가 그렇게 이 연극에 대하 비판이라고만 볼 수는 없기도 하다. 100년 전의 이야기지만, 현대의 가장 보편적인 통신수단으로 전달되는 이야기 매체에도 어울리는 인물과 내용을 갖추고 있다는 ''호평''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나 싶은 것이다. 어쩌면 이런 막장 스토리라인이야말로 한국 희곡의 진정한 명맥을 잇는 것일지도 모르고(물론 아니라는 것 잘 할고 있다)...

어쨌거나 그래서인지 ''1914 눈물''의 전개 자체는 그렇게 낯설지 않다. 물론 현대극에서 활용한다면, 몇 가지 복선이나 근거를 추가하기는 하였을 것이다. 예를 들어 편지만으로 원래의 부인을 쫓아내기에는 민법의 조항이 무서우니 바람 피웠다는 증거를 더 조작하여 이혼소송으로 끌고 갔을 것이고, 새로 들어온 여자의 아들에 대한 학대 역시 좀더 심리적이고 은밀하며 교묘한 방법으로 이루어졌을 터이다. 뒷채에 감금하였던 부분 역시 정신병원에 감금한다거나 또 다른 바람이나 범죄를 조작하는 식으로 대체되었을 것이고, 악당들의 뜬금없는 회개 역시 어느 정도의 근거를 만들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내용들은 지금에 보아도 그렇게 어색하지 않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다만 이런 부분들이 빠져있으니, 어쩌면 100년 전의 한국 사회에서는 저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이혼이 성립된다거나, 그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저런 식의 감금이 가능했으리라는 정도의 ''신기함''을 느낄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 작품이 갖는 또 하나의 매력은 100년 전 한국어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환도열차''에서 1950년대 서울말의 단어/억양 등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연극 ''1914 눈물''을 보면서는 20세기 초반에는 한국어의 모습이 어땠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억양까지 완벽하게 구현하기는 어려웠으리라는 점과 문어체/구어체의 차이를 어떻게 메꾸었는지 모르겠다는 점 등이 찝찝하게 남아있기는 하다. 하지만 어쨌거나 현대 한국어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그것을 직접 화자의 입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작품에서는 보기 어려울 것이니, 이 작품의 장점이다.

연극 ''1914 눈물''의 특징이자 장점인 진행자(...라고 해야하나, 판소리꾼이라고 해야하나)의 존재 역시 인상적이었다. 마치 예전의 무성영화 시절 인물의 대사를 대신 읊어줄뿐만 아니라 작품의 주요한 배경이나 전재를 말로 전달해주었던 변사처럼, 이 연극 속에서 필요한 꽤 많은 분량의 배경에 대한 설명과 인물 심리에 대한 묘사를 직접 전달해주었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작품의 교훈을 굳이 다시 한 번 설명해주기까지... 물론 현대극이었다면 ''너무 쉽게 가는 것 아닌가'' 또는 ''거 참 말 많네''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렇게 100년 전의 분위기를 물씬 낼 수 있는 수단이 따로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번 작품과는 잘 어울렸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아마 그 분들 역시 이런 식의 연기, 100년 전 톤으로 말해야 하는 대사나 극의 전개가 익숙하지 않았을 터인데도 그렇게 어색해보이지 않게 끌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대단했다. 그 중에서도 부부의 아들을 연기한 그 어린이(청소년인가..?) 배우의 연기가 정말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 소극장에서 보았던 어린 배우들이 대체로 ''그냥 자리를 채워주는구나'' 정도의 연기를 보여주고 말았었는데, 이 분은 후반에 갈수록 진짜 아들로서의 말과 행동을 하더라.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신파적 내용이나 어색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괜찮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에는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 그 어린 배우의 힘이 컸던 것 같다.

이렇게 옛날의 말과 행동을 볼 수 있는 작품을 보는게 더 즐거워지는 것이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번뜩 든다. 어쨌거나 연극의 뿌리든 과거든 뭐든 되짚어보고, 예전에는 어떻게 하고들 살았는지를 확인해보는 것 자체를 꽤 의미 있는 일 아닌가. 게다가 재미까지 있다면 더 좋은 일일 것이고... 이 시리즈, 언제 다시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꽤 두고볼만 할 것 같다.

* 기록...
원작 - 이상협, 연출 - 최용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