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의 음악계는 웅장하고 화려한 오페라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였다고 한다. 세자르 프랑크는 저속해지는 시대의 풍속을 초월해서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을 연구하면서 오르간 연주와 작곡에 몰두했던 프랑스 음악의 순교자처럼 여겨진다. 프랑크의 <피아노 오중주>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열정적인 곡에 속한다. 이성과 감정이 양극단으로 찢어지는 인간의 내면을 직면하게 될 줄 알았지만, 프랑수아 듀몽과 앙상블오푸스가 그려내는 소리의 풍경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조심스러울 수 있을까싶은 시작이었다. 충격을 충격하면 떠오르는 보편적인 파열의 형태처럼 표현하는 게 아니라, 잠깐의 머뭇거림과 충격이후의 절제된 감정만을 무대 위에 남기듯 표현한 점이 인상 깊었다.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풍성한 화음은 으레 이 곡의 연주가 그러하듯 격렬 한복판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게 아니라, 어떤 응축된 에너지에 가까웠다. 음향을 연주자의 집중력만으로 조절하면서 지금 감각되는 소리보다 훨씬 더 큰 격정이 뒤에 감춰져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이상적인 선율의 지속을 위해서 자신이 낼 수 있는 음량의 최대치를 최선을 다해서 온몸으로 지연시키고 있는 현은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연주자들은 오로지 앙상블의 완성을 위해 온몸을 헌신했다. 음을 연주자의 단련된 감각으로 통제하는 것이 음악예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피아노는 한없이 여리고 부드러웠다. 형식미를 강조하듯 단호한 타건 이후 한 순간의 애수어린 고요를 만들며 대조시키는 듀몽의 피아니즘은 지금까지 들어왔던 프랑크의 <피아노 오중주>와는 다른 훨씬 기품 있는 내면성을 갖춘 무엇이었다.

듀몽의 피아노는 시각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연주에서 정제된 힘이 느껴지고 음 하나하나가 정확해서 선율이 마치 소리의 행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쇼송의 <피아노와 바이올린, 현악 사중주를 위한 협주곡>에서 그 진가가 발휘되었다. 연주를 듣고 있지만, 피아노를 치고 있는 사람이 연주를 하면서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이미지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졌다.

프랑스 민족주의를 추구했던 음악가로 분류되는 쇼송에 대해 의례 이야기되듯 연주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방황했던 젊은 날의 갈망과 추구를 향한 예민한 자의식, 서정적인 대조, 향수어린 전통과 음악적 민족주의를 듣게 될 줄 알았다. 이날 쇼송의 협주곡으로 구체화된 개념은 전통을 향한 추구라기보다는 아름다움이었다.

이 곡의 연주는 현악사중주와 피아노 솔로, 바이올린 솔로로 구성되어 있다. 끔찍하게 예민한 감수성으로 무장한 이날의 피아니스트와 앙상블 팀은 세 개의 구도를 힘의 세기로 몰아붙이는 경쟁구도가 아닌 음악적 이상으로 승화시켰다. 백주영의 솔로 바이올린이 슬픔이 배어 있는 서정적 음색으로 곡의 윤곽을 그려나가면 듀몽의 피아노가 관객을 숲길로 인도할 단단한 대지와 수면의 일렁임을 상기시켰다. 대지와 수면 위로 등장해야 할 신전은 콰르텟의 몫이었다. 권혁주와 윤동환의 바이올린, 이한나의 비올라, 김민지의 첼로로 구성된 콰르텟이 바이올린 솔로와 피아노 솔로 사이에서 마치 네 사람이 한 사람의 연주인 것처럼 연주하며 무대에서 펼쳐지는 감수성의 층위를 보다 두텁게 했다. 콰르텟은 거의 경직에 가깝게 의도된 느림과 극단적인 여림의 미학으로 정지 상태를 향해 나아갔다. 그들은 관객을 심연으로 인도하며 죽음을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4악장의 단 한순간의 격정에 이르기까지 숨 막히는 긴장감과 신중함으로 관객들은 언어가 접근할 수 없는 음악의 영역을 체험할 수 있었다.

쇼송의 곡 전반에 걸쳐 투영된 악상에 해당하는 낭만적 아름다움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형성된다면 이 무대에서 현실에 붙잡혀 있는 것은 악기였다. 연주자들이 흡사 악기 그자체가 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이상을 음으로 표현해내는 완급조절에서 감동이 전해졌다. 음악적 테크닉을 수용하고 그것을 이미 자기 것으로 변주시킨 데서 느껴지는 관록과 여유가 연주에서도 전해졌다. 쇼송이 정말로 향하고 싶었던 민족은 이날의 무대가 형상화한 견고한 아름다움과 연주자들 사이에서 당연하게 흐르고 있었던 음악적 이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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