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과 조합 연출가는 조율을 통해 조합을 만들어냅니다. 스태프, 배우들과 소통하면서 깎을 건 깎고, 확장할 것들을 확장하면서 조각가와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무대, 의상, 조명, 메이크업, 배우 등 모든 스태프들에게 작품 콘셉트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듣기를 원합니다. 스태프들에게 작품과 관련된 이미지를 던져준 후에,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구하고 그들의 생각들을 조율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하면서 마지막에는 주도권을 가지고 조합을 이뤄냅니다.



배우에서 연출로 1982년 광주시립극단을 시작으로 20년 넘는 배우생활을 하면서 연출가 선생님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출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폭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연출 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연출의 해석에 따라 역할, 작품의 색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내가 작품을 바라보는 해석이 담긴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기면서 대학원 때부터 본격적으로 연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무용 <나비소리>,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시작으로 연출 일을 시작했습니다.




창조 혹은 재해석, 재창조 창작뮤지컬을 선호하는 편이고, 주로 창작뮤지컬을 작업해왔습니다. 라이선스 뮤지컬을 할 때도 그대로 하지 않습니다. 텍스트, 스코어만 가져와서 우리들의 노하우로 재해석하고 재창작하는 작업을 합니다. 카피하듯이 그대로 따라 하는 작업방식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앞으로도 그런 작업은 하지 않을 겁니다. 창작은 ‘우리를 통해서 만들어졌다’는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모래로 성을 쌓는 것처럼 어렵고, 잘 모아지지 않는 과정도 있지만 값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 알맹이 ‘사랑’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미학적인 비주얼, 다양한 메소드(Method)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심오한 철학보다는 작품 컨셉트에 맞는 정신을 담으려고 합니다. 내적인 알맹이를 갖춘 내용으로, 컨셉트에 의해서 컨셉이 확장되는 그런 작품을 하려고 합니다. 배우를 포함한 모든 스태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 컨셉트를 강압적으로 투사하거나 끄집어내려 하지 않고 컨셉을 유지하면서 그들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발산되도록 대화를 나누는 것 입니다. 가끔, 컨셉트를 유지하기 위해 이것저것 숙제를 내줄 때가 많은데 그래서 생긴 별명이 바로 ‘교장선생님’ 입니다(웃음). 작업을 하면서 작품을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는 이 작품을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집중하는 편 입니다. 그리고 음악적 완성도를 중시합니다. 뮤지컬 작품을 할 때에는 배우들에게 디테일 한 요구를 많이 하는 편 입니다.



배우와 연출사이 ‘연출가가 된 배우’라는 것이 제 강점이자 약점인 것 같습니다. 20년 넘는 배우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들 덕분에 배우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연출로서 큰 장점이지만 간혹 안 봐도 될 것, 몰라도 될 것들이 보일 때는 배우들 뿐만 아니라 저도 힘들어지기 때문에 약점으로 느낄 때도 있습니다.



부끄럽건, 자랑스럽건 제가 관여한 모든 작품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 가운데 제 뮤지컬 입봉작이라고 할 수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제 인생의 작품으로 꼽고 싶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느라 준비과정은 정말 힘들었지만, 사랑의 날카로운 부분, 영혼성 등 제가 생각했던 작품의 컨셉트들이 무대적으로 잘 해석됐던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예술성에 좋은 영향을 좋던 <모차르트!>도 굉장히 소중한 작품입니다.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이 녀석” 이라는 말을 가끔씩 사용합니다. 잘못했거나, 기대했던 만큼 잘 안 나오거나,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을 때 저 말을 쓰곤 했는데 배우들이 무대에서 종종 써먹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피맛골 연가> 박은태 배우, <모차르트!> 배우들이 에드립으로 “이 녀석” 이라고 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웃음).




로맨틱 낭만 발레의 진수를 보여줬던 국립발레단의 <지젤>, 사실적이면서 연극적 표현방식으로 마음에 와 닿았던 <야끼니꾸 드레곤>, 연극적인 무게감과 대중성을 잘 접목한 <칼로막베스>등이 기억에 납니다. 고선웅 작가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작품성, 대중성이 확보된 롱런 하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앞으로 1~2년은 연출에 더 집중적으로 올인 해서 제가 만족할 수 있는 작품성, 대중성, 스타일을 뽑아낼 수 있는 작품을 목표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대중들이 외면하면 진정한 평가는 불가능합니다. 관객과 더불어서 관객들을 리드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들겠습니다. 혹평, 호평, 환호 그 모든 것들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뮤지컬, 공연을 아껴주시는 관객들을 위해서라도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작품 만들겠습니다.


정리 :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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