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에서 음악을 맡아 그 파트를 끌어가는 사람이겠죠. 음악적인 부분에 욕심을 갖게 되고 그것을 더 앞세울 수 있는데, 뮤지컬이 각 파트별로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작품에 따라 연습 과정에서 안무나, 드라마 적인 부분 등에 시간을 더 할애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정도를 지키면서 음악적인 것도 살려야 하고, 서로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합리적으로 절충해서 끌고 가야 하는 자리 같아요. 해 보니 절대 쉬운 자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웃음)



지금 서른 여섯인데, 서른 한 살에 공연 쪽 일을 하게 되었으니 다른 분 보단 늦게 시작한 경우지요. 변희석 음악감독님의 학교 후배인데, 재학 중엔 꽤 가깝게 지냈지만 이후엔 서로 연락이 끊겼었어요. 어느 날 전화가 와서 “뮤지컬이라는 거 한번 해 볼래?”하시더라고요. 이게 무슨 봉창인가(웃음), 그랬죠. 그래서 <메노포즈> 지방 공연 피아노 연주자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알타보이즈>에서 건반을 맡았고, <메노포즈> 시즌 2때 정식으로 음악감독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많이 놀랐는데, 음악감독 제의를 하신 뮤지컬해븐의 박용호 대표님께서 “정말 힘든 일이고 어려운 자리지만 분명히 즐거움이 있을 거고, 보람도 있을 거다”라고 하셨어요. 이왕 시작한 거 잘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발력, 키보드 컨덕터 무대 위에서도 실수가 나오잖아요. 그런 것들에 빨리 대처하는 것, 짧은 시간에 해결해서 바로 가져가는 것들, 그런 일들이 적은 편이 아니었거든요. <메노포즈>의 경우 뮤지컬 배우가 아닌 분들도 많이 하셔서 박자 안에 못 들어오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연주자들은 그걸 ‘빡쿵’이라고 하는데, ‘쿵빡’이 뒤집어진 거죠. 그러면 객석에서 알아차리지 못하게, 배우가 최대한 당황하지 않게 어떻게 해서든지 맞춰가야 해요. 배우들 호흡에 굉장히 많이 맞춰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 전문 키보드 컨덕터가 많지 않은데, 음악감독으로서 그 중 한 명이라는 것, 정도가 장점이 되지 않을까요?

독단적 연주자들에게 미안한 부분인데, 어쩔 때는 다소 독단적일 때가 있습니다. 내 판단으로 가는 게 옳은 것인가, 저들의 의견에 맞추는 게 옳은 것인가 기로에 섰던 적이 많았죠. 연습 과정에서 끊임없이 이야기 하며 소통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결정의 결과에 대해 각 연주자들이 번갈아 가며 조금씩 나눠 책임질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결국 제가 다 가져가야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선택의 순간에 독단적일 때도 있습니다. 누구나 싫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진 않지만, 그걸 해야 하는 때, 그게 필요한 때가 분명히 있어요. 그런 것들이 진정성으로 교류가 되기까지 분명히 시간이 필요하며, 그런 시간을 서로 견뎌내면 계속 함께 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메노포즈> 부산 공연 때 건반 세션으로 처음 뮤지컬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건반 세 개를 혼자 연주해야 됐고, 경험은 없고, 시간은 촉박하고, 배우들과 리허설 없이 밴드와 맞춰보고 공연에 들어갔어요. 첫날 공연은 잘했다고 칭찬받았는데, 둘째 날 아주 크게 한 건 했죠.

공연 마지막에 네 명의 배우들이 드레스로 갈아입고 문을 열고 나오며 노래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한 음표를 안 쳤어요. 그 박자에 배우들이 들어와야 하는데 한 박자를 뺀 거죠. 배우들도 당황해서 두 명만 문을 열고 나왔어요. 그래서 두 소절 부르고 다시 들어가서 그 노래를 처음부터 다시 했습니다. 그 다음날 정신이 더 바짝 차려지더라고요.



<씨 왓 아이 워너 씨> 테크닉적으로나 감성적인 부분 모두에서 최고의 음악이에요. 아주 작은 이질감도 없이 드라마, 음악, 대사가 착착 달라붙어 갈 수 있다는 건, 마이클 존 라키우사 한 사람이 작업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목처럼 똑 같은 현상을 보고도 어떤 시각을 갖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관점, 생각을 보여주는 작품인데, 드라마적으로도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궁금증이고, 아이러니잖아요.

연습할 때 배우들이 울기도 하고 많이 힘들어 했었어요. 타악기만 80여 가지가 나오고, 피아노 테크닉도 제가 했던 작품 중에 가장 어려웠어요. 반주, 화성, 말 모두 따로 가는데 그게 미묘하게 너무나 잘 맞춰져서 흐르는 거에요. 정말 유니크 한 작품이죠.


<빌리 엘리어트> 연습 시작할 땐 별 감흥이 없었어요. 오디션 보는 아이들 보면, 잘 하네, 신기하다, 그 정도였는데 막상 연습을 진행해 보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나는 경우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저 뿐만이 아니라 해외, 국내 스텝들도 한참 연습하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눈이 빨개져서 울고 있고.(웃음) 아이들은 누구보다 꿈이 많잖아요. 이 작품 연습하는 아이들도 꿈이 있고요.

아이들 자체로도 어른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잖아요. 그런 아이들이 하루하루 성장하며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보면 울컥 하게 되는데, 단순히 그것 때문이 아니라 그 모습에서 나의 과거, 내 아이의 미래 등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 일어요.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느낄 수 있는 건데 평소에 잘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특별한 거고, 사람이 사람 냄새 나게 사는 것, 그걸 일깨워줘요.



한 작품에 노래가 열 세 곡이다, 하면 넘버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흐름을 가지고 장면에 맞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특정 한 곡을 꼽기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성격이 그렇게 계획적인 편도 못 돼서 일이 정해지면 그 때부터 계획을 세워서 하는 편이지요.(웃음) 주어진 일 이외의 다른 것을 생각하기엔 경험도 적고 얼마나 많고 다양한 작품이 존재하는지 알고 찾는 것엔 아직 역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선별된 작품이 주어졌을 때 적어도 외국 보다 수준이 별로다라는 말을 듣지 않게끔 하는 것이에요. 어떤 사람이 곡을 쓰고 편곡을 했든 지휘자 손에서 얼마든지 재창조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게 달라지기 때문에, 그것에 충실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시작한 이후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만큼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순간 만큼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뽑아내는, 분명히 그런 즐거움이 있는 일인 것 같아요. 공연은 반복해서 같은 장면을 재생할 수도 없고, 영화관 가는 것 보단 돈도 들죠.

하지만 그런 특별한 일들을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볼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정말로 엄청난 즐거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겠지만, 돈이 많다고 모든 게 충족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공연이 그런 갈증을 채워주는 요소들을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 보다 비타민을 더 챙겨먹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이쪽 분야를 생각하는 친구들 중 실용 음악 하는 경우가 많은데, 클래식을 전혀 안 들어요. 악보도 잘 못 읽는 경우도 있고요. 악보는 소통의 수단입니다. 우리나라 음악하는 친구들은 너무 한가지만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듣고, 좋아하는 것만 하죠. 도착점이 저기에 있으면 가는 길이 많잖아요. 길이 없다면 내가 땅을 파서 갈 수도 있고요, 그런 것들을 두루두루 보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또 하나는 정말 많이 꿈 꿀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그 꿈을 구체화하기 위해선 엄청난 지구력과 끈기가 필요해요. 그게 꿈에 대한 대가이죠. 참고 인내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 재능도 중요하고 선택 받은 사람이 있긴 하지만 재능을 앞설 수 있는 게 성실함이고, 성실함을 앞설 수 있는 건 인내심과 지구력인 것 같습니다.


정리: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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